다시 입원하신 엄마
여든일곱의 엄마는 지난겨울부터 여섯 달 동안 두 곳의 병원을 오가며 고생하시다가, 가까스로 집으로 돌아오셨다.
그리고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다시 입원하셨다.
병실로 찾아뵌 날,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말씀하셨다.
"이렇게 살아서 뭐 하니…. 그냥 안락사나 시켜다오."
그 마음을, 나는 너무나 알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안다'고 말하면 안 되는 건지도 모른다. 그 여섯 달이 엄마에게 어떤 시간이었는지, 나는 곁에서 지켜보았을 뿐이니까.
그래도 나는, 엄마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씀드렸다.
"엄마, 그래도 이렇게라도 살아 있어줘서, 우리가 엄마랑 얘기하고, 엄마 목소리 들을 수 있잖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 말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나…, 너무 이기적인 걸까.
집에 돌아와, 오래전 읽었던 바카라 한 권을 다시 꺼냈다. 기시미 이치로의 『우리는 결국 부모를 떠나보낸다』.
작가는 말한다.
인생을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 몸이 쇠약해지는 일 또한 우리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고. 노화 앞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나이 든다는 것이 곧 젊음에서 멀어지기만 하는 일은 아니라고.
그리고 병으로 몸이 마음처럼 움직여지지 않는 사람이,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아야만 하는 처지에서도 '나는 여전히 가치 있는 존재'라고 믿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간병에는 '왜'가 없습니다. '어떻게'밖에 없습니다." — 기시미 이치로, 『우리는 결국 부모를 떠나보낸다』,
왜 우리 엄마가 이렇게 되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간병의 시간이, 지체 없이 시작될 뿐이다.
바카라의 마지막 조언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비록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해도, 살아 있는 것만으로 가족에게 힘이 된다는 사실을 부모님께 꼭 말로 표현해드리라는 것. 그러면 부모님은 굳이 무언가를 해내지 않아도, 자신이 가족에게 힘이 되는 존재임을 느끼며 자존감을 지킬 수 있다고.
그러니까 그날 병실에서 내가 엄마에게 건넨 말은, 이기적인 말이 아니라 서툴지만, 내가 낼 수 있었던 최선의 대답이었는지도 모른다.
다음에 병실에 갈 때는 조금 더 또박또박 말씀드려야겠다.
"엄마, 엄마가 살아 있어주는 것만으로 우리한테는 힘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