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보원더우먼도 처음입니다 5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를때

by쫄보 원더우먼


아버지의 영향이었다.

어느 날 문득, 나도 사진 찍는 일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잘 나온 사진 한 장을 골라 누군가에게 건네는 일까지도.

그런데 이상하게 거기서 멈추고 싶지 않았다.


좋아하는 게 하나뿐이면 금세 질려버릴 나 일것 같았다.


두세 가지쯤은 있어야 오늘은 이것, 내일은 저것하며

돌아가며 꺼내 쓸 수 있지 않을까.

또 뭐가 있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러다 아주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어릴 적 미술학원에서, 나는 분명히 행복했다.

하얀 도화지 위에서 수채화 물감은 겹쳐질수록 더 환상적인 색이 되었고,

유화는 덮고 또 덮어서

처음의 실수한 흔적마저 마지막엔 디테일이 되었다.

망친 게 아니라, 쌓인 거였다.


그래, 갤러리에 가보자.


내가 끌어안고 있는 고민들을 누군가는 어떻게 예술로 풀어냈을까.

그 앞에 서면 나는 무엇을 느끼게 될까,

어떤 영감을 얻게 될까.


문제는 아는 게 하나도 없다는 거였다.

"갤러리"는 들어갈 때마다 돈을 내야 하는 걸까?

대체 어디부터 가야 하지. 정말이지 아무것도 몰랐다.


일단 이름이라도 들어본 유명한 곳부터 갔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그리고 호암미술관.

그리고 그 갤러리들을 기준으로 다시 지도를 펼쳐 주변을 검색해 보았더니 —

세상에, 갤러리가 이렇게나 많은 갤러리들이 있다니!


처음이 무섭지, 익숙해지면 대담해진다고 했던가.


그날 이후 나는 일주일에 하루를 비웠다.

오롯이 갤러리만을 위한 하루를.


발품을 팔다 보니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갤러리들이 한남동, 청담·압구정, 삼청동, 인사동처럼

동네마다 옹기종기 모여 있다는 것.


한 곳에 도착하면 그 일대를 어떤 순서로 도는 게 좋은지,

나만의 동선까지 생겼다.


갤러리들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인스타 팔로우며 스레드의 좋아요의 알고리즘을 타고,

더 많은 갤러리들과, 페스타들이 연결이 되며

많은 작품에 노출이 되고, 작가들의 이름이 기억이되며,

작품에 대한 나만의 취향까지 점점 알아가게 되었다.

(모든 작품을 좋아하는건 아니었다!)


그리고 이 일이 반복되면서 알게 된, 더 중요한 사실 하나.


전시장 문을 밀고 들어설 때의 그 설렘.

내가 차마 말로 옮기지 못했던 감정을 대신 그려준 작가들의 작품과 해석들,

나에게 기쁨을 — 때로는 희열까지 — 안겨준다는 것.


2년쯤 흘렀을 때,

나는 전시 오프닝에 초대도 받게 되었다.


완전한 문외한에서,

혼자서도 충분히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일본으로 출장을 갔을 때조차 이 습관은 이어졌다.

짬이 날 때면 어느새 일본의 갤러리들을 찾아 헤매고 있는 나.

운좋게 갤러리에 전시된 작품의 작가님들과 대화를 나눌때면

그렇게 눈을 반짝이며, 작가의 의도와 나의 생각을 나누는것이

설레고 좋았다

그런 반짝거리는 내 모습이(오랜만의), 참 좋았다.


찾았다. 또 하나, 내가 좋아하는 것.


없었던 게 아니었다.

그저 드러나지 않아 몰랐을 뿐.

내게 좋아하는 것이 없는 게 아니었다.



"꿈은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자잘한 감정의 파동으로 시작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파동을 따라가다보면 아주 천천히 자신을 알아간다.

그러니,

지금의 일이 시작이든 끝이든, 혹은 잠시 머무는 지점이든,

그것은 여전히 내 진로의 일부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무엇이든 할수 있는 일부터 찾아 해보는 것은

멋진일이며 가치있는 일이다. "

조용한 회복/ 박재연, 한빛라이프 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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