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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편 7화] 검은 비가 쏟아지던 날

by쫄보 원더우먼


검은 비가 쏟아지던 날



며칠 전, 여행을 다녀온 친구가 응급실 사진을 올렸다. 무슨 일인가 물었더니, 예전에 내가 겪었던 바로 그 망막박리로 응급실에 가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그 소식에, 오래전 그날이 떠올랐다.


1년간의 미국 연수를 명받고, 초등학생 두 아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향했던 때였다. 남편이 사흘간의 휴가를 내어 동행해 주었다.


남편이 떠나기 전까지 끝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이민 가방 여덟 개를 끌고 공항에서 밴을 렌트하고, 미리 알아둔 아파트에 가서 열쇠를 받고, 다음 날엔 운전면허 시험을 보고, 중고차를 사고, 픽업트럭을 빌려 여기저기서 산 중고 가구를 실어 나르고…. 그 무리한 일정을 숨 가쁘게 소화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검은 비가 내리듯 점들이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여보, 지금 밖에 비 와요?"


남편은 무슨 소리냐고 되물었다. 너무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나는 그저 눈을 좀 쉬어주기로 했다. 그런데 저녁이 되자, 한쪽 눈이 반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일까. 너무 피곤했나. 무지했던 그때의 나는, 한숨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 줄 알고 누웠다. 그러다 문득, 확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이리저리 수소문을 하니, 망막박리일 수 있으니 당장 응급실로 가라는 것이었다.


미국 대학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하필 미국 보험이 시작되기도 전, 보험 하나 없이. 결국 응급으로 수술을 받았다.


망막이 떨어져 시신경 바로 직전까지 와 있었다고, 두 시간만 늦었어도 실명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데, 어찌나 아찔하던지.


그 일로 1년의 연수 일정은 많이 바뀌었다. 다행히 나를 미국으로 초대해 주셨던 분이, 당신 친구가 망막이 다섯 번이나 떨어졌다며 절대 무리하지 말라고 배려해 주신 덕분에, 매일 출근은 하되 에너지를 아껴 쓰며 일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아찔했던 순간을 지나, 나는 가끔 생각한다. 왜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났을까.


너무 혹독하게 나를 밀어붙였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로서도, 전문인으로서도, 그 무엇 하나 놓쳐선 안 된다는 강박. 그 강박이 내 몸을 그 지경까지 몰고 갔던 것이다.


그래도 좋은 점이 하나 있다. 그날의 경험 덕분에, 눈앞에 비문증이며 검은 점이 떠다닐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주위에 일러주기가 쉬워졌다는 것. 실제로 내 경험담을 기억하고 있던 두 분이, 그 증상이 나타나자마자 곧장 응급실로 달려가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망막 수술을 받은 사람은 백내장도 빨리 온다더니, 나도 예외 없이 생각보다 빨리 와버렸다.


눈 수술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알았다. 아름다운 색과 풍경과 그림을, 어느 순간 더는 보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 경험을 안고서, 나는 과감하게 일주일에 한 번을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으로 삼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지난 2년간 나에게 그 시간을 선물해 왔다.


잃어본 사람만이 아는, '귀한' 나를 위한 배려랄까.


친구의 망막 수술 소식에 그 모든 기억이 떠오른 김에, 한 가지를 꼭 적어두고 싶다.


몸의 모든 부분은 나이를 먹는다. 혹사한 몸일수록, 노화도 질병도 더 빨리 찾아올 것이다. 그러니 오십 대 중반을 지나는 우리는, 반드시 몸이 건네는 말을 무시하지 말고 가만히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박완서 작가는 산문집 《호미》에서, 몸과 나의 관계가 나이 들수록 달라진다고 했다. 젊을 땐 더없이 편한 동무 같던 몸이, 세월이 흐를수록 조금씩 거리를 두더니, 노년에 이르러서는 도리어 내가 받들어 모셔야 하는 존재가 되더라는 것이다.

""젊었을 적의 내 몸은 나하고 가장 친하고 만만한 벗이더니 나이들면서 차차 내몸은 나에게 삐치기 시작했고, 늘그막의 내 몸은 내가 한 평생 모시고 길들여온 나의 가장 무서운 상전이 되었다 "

- 출처: 호미, 박완서(2014) 열림원


한근태 작가도 《몸이 먼저다》에서 비슷한 경고를 건넨다. 내가 몸을 살뜰히 챙기면 몸도 나를 지켜주지만, 그냥 내버려 두면 언젠가 호되게 되돌려준다는 것. 그는 그 점이 가장 두렵다고 적었다"몸은 관리하지 않고 방치하는 것은 무바카라임한 일이다. 직무유기다. 몸을 돌보면, 몸도 당신을 돌본다. 하지만 몸을 돌보지 않으면 몸이 반란을 일으킨다. 나는 그게 가장 두렵다

출처: 몸이 먼저다 (한근태, 미래의창 출판)"


나는 이 말들을 오래 잊지 않으려 한다.


오늘도, 내 몸이 하는 말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