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멈출 수 있다면

엄마, 조금만 더 있다 가

얼마 전 프랑스 화가 에밀 무니에르의 그림 한 점을 보았다.

제목은 <엄마, 미안해요(Pardon Mama)〉.

엄마 품에 얼굴을 기대고 엄마를 올려다보는 아이를 바라보다가 문득 멈춰 섰다.

나는 저 아이를 보며 엄마에게 안기던 어린 시절이 아니라 엄마를 보내던 병실을 떠올렸다.

그날은

엄마가 나를 안아 주지 못했고,

내가 엄마 손을 붙잡고 놓지 못했던 날이었다.


Emile Munier(에밀 무니에르), Pardon Mama(엄마, 미안해요). 1988

작년 4월 어느 날

지금 이 시간부터 임종 프로세스로 들어간다는 담당 주치의 설명.

아빠가 1년여간 병상에 누워 계시다가 소천하신 후

엄마는 장례를 치르고, 바로 사전 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셨다.


차가운 병실의 공기.

오빠들과 하루 종일 엄마 곁을 지켰다.

수간호사와 담당 교수님이 수시로 와서 상황을 보고 갔다.

눈은 뜨고 있었지만, 엄마는 아무 말씀도 못하셨다.

우리의 말을 듣고 계실 텐데..........

외국에 있는 손자, 손녀들은 할머니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들을 녹음 파일로 보냈다.


용가리 통뼈같이 건강했던 엄마는, 암 발견 후 1년여 만에 우리 곁을 떠나려 하고 계셨다.

엄마도 사랑하는 우리들 곁을 떠나기 싫었으리라.

아니, 이 고통에서 벗어나 하늘나라로 얼른 이사 가고 싶으셨을까?


큰오빠는 5월에 엄마와 제주도에 꽃 보러 가기로 약속했다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작은오빠는 그저 병실을 왔다 갔다 아무 말도 없었지만, 빨간 눈시울은 하루 종일 그대로였다.

사우나를 좋아하던 엄마, 커피와 빵을 좋아하던 엄마.

회와 바다를 좋아하던 엄마, 꽃을 좋아하던 엄마와 많은 곳을 다녔지만

아직도 갈 곳이 참 많은데...... 이리 가시다니.......

지금도 좋은 온천에 여행을 가면 엄마 생각에 가슴이 먹먹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을까?


막상 엄마 임종을 앞두고 있자니, 사방에서 벽이 조금씩 조금씩 내 앞으로 조여 오며 숨이 막힐듯했다.

엄마 귀에 아무리 사랑한다고 얘기해도 반응이 없었다.

손발을 주무르며 고맙다고, 그동안 우리들을 사랑과 정성으로 키워 주셔서 감사했다고,

뽀뽀를 해 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그래도 더 같이 있고 싶었다. 엄마 손을 만지며 품에 안겨 엄마 곁에 더 머물고 싶었다.

엄마를 혼자 차가운 그곳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1년이 훌쩍 지나가는 동안 엄마가 해주셨던 음식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해주셨던 말씀들,

삶의 소소한 지혜들이 엄마 목소리로 재생되어 들리는 듯하다.

엄마를 회상할수록 쏟아부어준 그 사랑에 목이 멘다.


엄마! 엄마! 엄마!


그림 속 아이는 엄마 품에 안겨

"엄마, 미안해요."

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병실에서 엄마 손을 붙잡고 "엄마, 사랑해요."를 수없이 말했다.

그 말이 끝내 엄마에게 닿았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안다.

살아 있는 동안 사랑은 미루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

시간은 멈추지 않지만, 사랑은 지금, 바로 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시간을 멈추고 싶었다.

정확히 말하면 엄마를 잃고 싶지 않았다.

그날 병실에서 처음 깨달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일보다 보내주는 일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엄마는 떠났지만,

엄마가 해주신 음식 속에,

엄마가 남긴 말속에,

엄마가 가르쳐준 삶의 태도 속에 엄마는 여전히 살아 계신다.


시간이 멈춰지는 일은 없었지만 엄마가 내게 준 사랑 또한 멈춰지지 않았다.


#임종 #그리움 #병원 #항암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할머니,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