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만남, 긴 여운

by이디뜨

어르신! 혈압 재 드릴게요.

아이고, 곱다. 오늘 선생님은 참 곱네. 시집갔어?

아니요, 아직이요.

아이고, 곱다 고와.

감사드려요. 그런데 움직이시거나 말씀하시면 정확하게 안 나와요. 잠시만요. 얼른 재 드릴게요.

끝났어요. 이따 식사 맛있게 드세요.


입맛도 없어.

빨리 콱 죽어야지. 질긴 목숨 길긴 왜 이렇게 길어.

가위 가져다 달라고 해도 갖다 주지도 않고.

여기서 나가고 싶어도 1층에 남자들이 딱 지키고 있어.

자기들 법만 있고, 내 법은 없지?


왜요 어르신!

식사 많이 하시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야죠.

이렇게 정정하신데.

그리고 여기 요양센터 좋다고 서울시 대기자만 해도 1,000명이 넘어요.

다들 들어오고 싶어도 바로 못 들어오는데, 빨리 나가시고 싶으세요?

유리창 너머 파란 하늘 아래 배롱꽃나무에 할머니의 시선이 머물렀다.

곱다 고와.

할머니는 다홍빛 배롱꽃에 머물던 시선을 거두고, 이내 4인 병실을 둘러보시며 끄덕였다.

내 자리가 여기서 제일 좋아. 창가라서 꽃도 잘 보이고.

밥도 꽤 맛있어.

조금 전에 "콱 죽어야지" 하실 때의 노여운 눈빛은 어느새 온화한 눈꼬리 속에 자취를 감췄다.


어르신! 저 오늘 여기 마지막이에요. 건강하셔야 해요.

괜찮아. 내일이면 어차피 기억도 못 할걸.

손 줘봐.

아이고, 손도 곱네 고와.


할머니의 얇디얇은 눈꺼풀 속 눈동자가 시선을 맞춰왔다.

인생 별거 없어. 하나만 명심해.

항상 조심해야 돼.

앞도 옆도 뒤도 잘 살펴. 알겠지?

그거면 돼.

네, 명심할게요.


그런데, 내일도 혈압 재 줄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