찝찝함과 미안함 사이, 테트리스 주차의 애환
당신이 내 차에 씌워준 주황색 모자
제사인가 생일인가
저주인가 선물인가
당신이 내게 준 마음의 소리
'차주의 무개념에 본때를 보여주리.'
'나는 오늘 선을 넘겠소. 선은 당신이 먼저 넘었으니까.'
블랙박스에 남은 당신은 유령
주황색 모자만 덩그러니
당신은 비석을 세웠지만, 나는 사뿐히 내려앉은 낙엽을 보았다.
한글날 아침 저희 차 위에 주차금지 라바콘이 올려져 있었습니다. 수험생 딸아이를 독서실에서 데리고 오느라 전날 자정이 다 된 시간에 겨우 찾은 한 자리에 주차를 했었습니다.
저는 주차공간이 많이 부족한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고질적인 주차공간 부족 문제로, 평일에는 저녁 8시부터 다음날 오전 10시까지,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24시간 동안 지상주차가 허용되고 있습니다. 입주민들 중 늦게 귀가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예외 없이 지상주차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황색 주차금지 고깔은 단지 곳곳에 놓여 있습니다. 평일 오전 10시가 지나면 경비아저씨께서 노란색 주차금지 스티커를 앞유리에 붙여 놓으십니다. 대부분 출근 차량이기 때문에, 아침 시간에 차들이 빠지고 나면, 10시가 되기 전에 지하주차장으로 이동시켜 놓으면 됩니다.
대개는 저녁 7시 정도면 지하주차장에 자리가 다 찹니다. 지하 주차장에 자리가 없는 것을 확인하면, 지상으로 올라가서 단지 안을 빙빙 돕니다. 겨우 한 자리를 발견하면 테트리스하듯이 주차를 해야 합니다. 협소한 공간의 앞뒤좌우의 사정은 매번 다르지요. 주차를 마쳐도, 사람들의 보행을 방해하지는 않을지 확인하며 찝찝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하루의 마무리가 그렇게 끝나 아쉽습니다. 주변 차가 빠지고 나면, 무개념 운전자가 생뚱맞은 공간에 덩그러니 주차해 놓은 걸로 오해받기 십상입니다.
'상호배려'나 '솔선수범'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규칙만이 주차공간 부족의 유일한 해결바카라일지도 모르습니다. 입주민들이 동호수와 연락처를 적은 스티커를 차에 붙여놓는 이유가 있습니다. 차에 고깔을 올려놓는 대신 문자 한 통으로 불편한 마음을 전했다면 좋았겠습니다. 주차문제가 어쩔 수 없다 해도 보행에 불편을 주어 미안한 마음은 답신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남편은 그래도 차 위에 라바콘을 세워두는 것은 너무하지 않냐며, 아파트 단톡에라도 얘기를 해볼까? 했습니다. 상황을 듣고 있던 딸아이는 챗gpt에서는 재물손괴죄와 모욕죄로 신고는 가능하다는데,라고 거들었습니다.
저는 입장이 달랐습니다. 고질적인 주차문제는 모두가 공감한다 해도,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고, 단 한 명이라도 비난의 화살을 우리에게 돌릴 수 있기에 그 상황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내 마음의 평화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문제 자체에서 손을 떼고 나오고 싶었습니다.
차 위에 올려진 라바콘이 비석 같다며 불쾌해하는 남편의 의견을 카톡으로 여동생에게 얘기했더니, 동생의 반응은 의외였습니다.
"비석이 아니라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으로 생각하고 그냥 잊는 게 나을 듯."
이 말을 듣자마자 우리 부부는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여동생에게 법륜 스님 같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어쩐지 마음이 좀 풀렸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다짐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지상주차를 하게 되더라도 조금 더 세심하게 신경 써야겠다고. 소통의 방법은 다양하니, 환영받지 못할 선물을 몰래 두고 가는 사람은 되지 말자고.
'저 사람이 내 차에 고깔을 올려놓은 사람은 아닐까?'
의심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우리 모두 불편함을 감내하고 사는, 짠함이 있는 이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