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콘서트장에 데려갔더니

무해하고 찬란한 일탈

by이디뜨

그 사람에게도 가슴 두근 거리는 소년 시절이 있었다는 걸 왜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긴 세월 지켜본 남편은 감성보다는 이성에, 이상보다는 현실에 손을 드는 나와 정반대의 사람이었다. 그런 그도 무장해제 되는 순간이 종종 있었다. 물놀이를 가면 아이들보다 물에서 잘 놀고, 놀이동산에 가도 퍼레이드 구경을 가족 누구보다 즐기는 모습 속에 드러나는 '소년미'를 간과하지 말았어야 했다.

"언제 끝나? 데리러 갈게."

남편은 아내나 아이들이 몇 년에 한 번씩 가곤 했던 콘서트나 공연이 끝나면 데리러 와서는, 만면에 미소를 띠고 물어보곤 했다.

"어이구. 재밌었어? 그런 게 뭐가 재밌다고."

"재밌었지. 같이 보자니까."

"나는 별로. 시간 아깝다."

사투리 억양 때문에 때론 화내는 것처럼 보일 만큼 완강한 그였다.




큰딸이 부추겨서 남편과 처음으로 콘서트에 간 날, C시 예술의 전당 2층 객석에 앉은 남편은 공연 시작 전의 활기와 그곳에 섞인 자신의 모습이 어색한 듯 연신 엉덩이를 들썩이거나 좌우로 두리번거렸다. 이 당연한 활기를, 설렘 가득한 순간을 왜 이제야 마주하게 했을까. 잠시 뒤 무대 위의 조명이 꺼지고 웅성거리던 소리가 잦아들자, 남편은 '저 무대에서 정말 그 가수가 나오는 걸까?' 하는 표정으로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순간 팟! 하고 붉은 노란빛 조명이 켜지며 고전적인 재즈풍 거리로 변한 무대 위로 한 줄기 빛이 쏟아졌다. 드럼과 기타, 베이스, 코러스까지, 밴드의 전주가 심장을 두드리는 가운데, 하얀색 슈트를 입고 중절모를 쓴 이문세 가수가 스탠딩 마이크 앞에서 리듬을 타며 노래를 시작했다. 30년의 세월을 비켜 간 듯한 멋진 모습으로 등장한 이문세 가수는, 익숙하고도 따뜻한 목소리로 공연장을 순식간에 휘감았다.


'아주 멀지 않았던 날에 그대가 곁에 있던 날엔

햇살 가득 거리에 푸른 잎 무성하고 이 세상 모든 게 기뻤었지.

아주 멀지 않았던 날에 그날도 오늘 같던 하늘

함박눈 갑자기 내려 온 세상 덮어도 이 세상 모든 게 따뜻했지.'




관객들의 환호와 기쁨의 박수 속에 첫 곡 '애수'가 시작되었다. 나는 무대를 보던 내 시선을 돌려 옆 자리의 남편을 바라보았다. 몸을 앞으로 반쯤 기울인 남편은 합장하듯 두 손을 모은 채 미동도 없이 무대 위의 가수를 응시했다. 남편의 까만 눈엔 보일 듯 말 듯 이슬이 맺혀 있었다. 우는지 웃는지 알 수 없는 표정 속에 그의 시간도 멈춘 듯했다. 노래가 흐를수록 남편의 표정에는 만 가지 감정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믿기 힘든 표정에서 나오는 감정은 십 대 때의 감성이 몽글몽글 올라오는 당황스러움이었고, 돌아보니 너무 멀리 와 버린 세월에 대한 회상이었다. 가장의 무게를 버텨내느라 감춰두었던 감성이 언 땅을 비집고 올라온 새싹처럼 돋아나고 있었다.

첫 곡이 끝나고 한곡 한곡 익숙한 곡들이 흘러나오자, 남편도 차츰 그 분위기에 섞여 들어가 손가락을 까딱이거나 박수도 치고, 마침내 나직하게 따라 부르기도 하였다.




공연의 막바지, '붉은 노을'의 전주가 터져 나오자 믿지 못할 광경이 펼쳐졌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자, 남편 역시 공연 초반의 어색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붉은 조명 아래에서 팔을 들어 박수를 치고 몸을 흔들며 떼창에 동참하더니 어느새 앙코르를 외치며 즐기는 남편의 모습은, 지금까지 마주해 본 적 없는 모습이었다.


여운 가득한 콘서트의 열기를 안고 차에 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창 밖으로 스치는 밤 풍경을 바라보며 내 마음속 플레이리스트 첫 번째 트랙에 이문세의 '애수'를 깊게 저장했다. 무채색 같던 덤덤한 날들 속에 콘서트 날의 기억이 무지개처럼 드리워졌다. 삶의 무게에 가려져 있던 남편의 눈물과 웃음을 찾아준 그날의 첫곡 '애수'의 전주가 흐르던 순간은, 음악이라는 거울을 통해 지나온 인생을 마주할 수 있었던 마법의 시간이었다.


'힘들지만 만나면 기뻤었지 세월 지나 슬플 줄 알면서

밤늦도록 추운 거리를 걸어도 언제나 손을 잡고 있었지.

이젠 모두 지나간 시절에 아직도 그리운 그 모습

따스하던 너의 손 내음이 그리우면 가끔씩 빈손을 바라보네.'


마음속에 또렷이 새겨진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나는 남편의 생일 선물을 골랐다. 한 달 뒤, 어느 콘서트홀 객석에서 젊은 날 들었던 익숙한 노래를 따라 부를 남편을 기대하며.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
우린 아직 이별이 뭔지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