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월차 - 읽기 자동화 ,낭독

by제시카

7개월차 캐서린은 아직 듣기와 말하기는 어느 정도 되는 상태였지만 눈으로 글을 읽으려고 하지는 않았다. 예를 들면 식당에 가서 영어 메뉴판을 주며 “뭐 먹을래?”라고 물어보면 “엄마가 맛있는 걸로 골라줘. 바닐라 쉐이크.” 이렇게 자기가 원하는 것만 말하고 메뉴판을 읽어보려고 하지 않았다. 아이와 함께 다니면서 메뉴판이나 영어로 된 안내문을 읽어야 하는 순간이 종종 있었지만 늘 자연스럽게 지나갔다. 읽어야 할 이유를 모르는 사람처럼.

아직 눈에 영어라는 글자가 들어오지 않는 느낌이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마치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 전 유치원생이었을 때의 그 느낌과 비슷했다. 듣고 말하기는 잘하는데 글자를 못 읽던 시절. 식당에서 내가 종종 장난을 치곤 했다. 계란말이를 시켜달라고 하면 “여긴 계란말이 없어.”라고 했다. 벽에 크게 걸린 ‘계란말이 2000원’을 읽지 못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장난이었다. 그런데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는 달랐다. 어느 날 “계란말이 써져 있는데? 엄마 왜 거짓말해?”라고 했다. 그때 처음으로 아이가 글을 읽는다는 걸 확실히 느꼈다. 글자를 보는 게 아니라 읽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발리에 와서는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학교 수업에서 바카라은 읽고 있는 걸까? 어떻게 수업을 따라가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집에서는 한국에서부터 해오던 브릭스 리딩으로 천천히 한 챕터씩 공부하고 있었다. 브릭스 200 단계. 듣고, 더듬더듬 읽고, 독해 문제도 풀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영어를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공부로서의 읽기’였다. 지나가다 보이는 영어 간판이나 메뉴판은 여전히 읽지 않는 것 같은 느낌. 읽을 수 있는데 읽지 않는 건지, 아직 자동으로 들어오지 않는 건지 헷갈렸다.

공부로 읽는 것과 살아가며 읽는 것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 국제학교 입학시험도 결국 읽고 푸는 문제로만 아이를 평가했다. 인터뷰는 없었다. 갑자기 아이가 글을 읽어야 하는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걱정에 잠이 오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한국어 공부하듯 매일 한 페이지, 10분 정도 영어 글을 소리 내어 읽게 하는 것뿐이다. busy는 ‘부지’가 아니라 ‘비지’라고 읽어야 한다는 걸 이해시키는 데도 한참이 걸린다. 영어는 한국어처럼 소리와 글자가 딱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도 답답하고 나도 답답하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매일 연습하는 거라고, 나는 아이를 다독인다.

글을 소리 내어 읽다 보면 아이가 단어와 뜻을 연결하는 순간들이 있다. “컨…츄…리… 컨츄리? 아, 나라라는 뜻이지.” 그 작은 연결의 순간이 보인다. 생각해보면 이 방법은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매주 낭독 숙제를 내주면서 시작됐다. “자연스럽게 읽어야 해요.” 그런데 우리 아이는 “ㄱ…가…바…방…” 이렇게 읽었다. 선생님은 자연스러워질 때까지 반복해서 읽으라고 했다. 매일 10분, 이야기글을 여러 번 읽고, 선생님 앞에서 검사받았다. 6개월쯤 지나자 읽는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고, 그 뒤로는 학교에서 따로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 경험이 나를 버티게 한다. 그래서 지금도 매일 영어를 낭독한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한 걸까. 이미 한 번 경험해본 길인데도, 왜 영어 앞에서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기분이 드는 걸까.

어쩌면 아이는 못 읽는 게 아니라 굳이 읽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건지도 모른다. 엄마가 대신 읽어주고, 대신 골라주고, 대신 주문해주는 환경에서 아이는 영어를 해독할 이유가 없었다.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만들어준 편리함이었는지도 모른다. 읽기란 능력 이전에 필요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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