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백만송이장미 공원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

by김남정

아파트 산바카라길을 걷다 보면 한두 송이 얼굴을 내밀던 장미들이 어느새 줄기마다 탐스러운 꽃을 피운다. 향기 좋은 얼굴로 사람들을 반기는 계절이다. 오월은 늘 짧지만, 장미는 그 짧은 계절을 가장 화려하게 알려주는 꽃 같다.



지난 주말, 남편과 함께 부천 백만 송이 장미원을 다녀왔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인데도 이상하게 늘 "다음에 가야지" 하며 미뤄두었던 곳이다. 아침 장미 향을 느껴보고 싶어 오전 7시 반쯤 집을 나섰다.



장미원 근처에 들어서자 오래된 주택들과 낮은 상가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반듯하게 정리된 신도시 풍경과는 다른 공기가 있었다. 세련되지는 않아도 사람 사는 냄새가 남아 있는 동네였다. 골목은 조금 낡았고 건물 외벽엔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었지만 마음은 더 편안했다.


장미원을 오르다 문득 시선이 오래된 아파트 쪽으로 향했다. 화려한 신축 아파트는 아니었지만, 창문만 열면 백만 송이 장미가 한눈에 내려다보일 것 같은 위치였다. 순간 그 집의 주인이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마다 장미가 피어 있는 풍경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면 어떨까. 계절의 변화를 가장 먼저 창밖으로 만날 수 있는 삶이라니.



봄에는 장미 향이 스며들고, 여름이면 짙은 나무 그늘이 보이고, 비 오는 날이면 젖은 꽃잎 풍경까지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새 아파트의 편리함과는 또 다른 부러움이었다. 편리함만 따지면 지금 사는 신도시 아파트가 훨씬 나을지 몰라도, 오래된 동네만이 가진 정취라는 건 분명 따로 있었다.


image.png▲부천 백만 송이 장미원다양한 장미꽃들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 남편제공


오전 8시가 채 되지 않아 도착했는데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장미 언덕으로 향하고 있었다. 가족 단위 나들이객도 많았고, 친구끼리 사진을 찍으며 웃는 젊은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다만 주차 공간이 넉넉하지 않아 주변을 천천히 몇 바퀴 돌다가 다행히 빈자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장미는 햇빛을 좋아하면서도 통풍이 잘 되는 환경에서 가장 아름답게 피어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침 햇살 아래의 장미들은 더욱 생기 있어 보였다. 붉은색, 분홍색, 노란색, 흰색, 보라색까지 저마다 다른 빛깔과 향기를 품고 있었고, 꽃잎은 벨벳처럼 부드러웠다. 어떤 장미는 진한 향수처럼 향이 짙었고, 어떤 장미는 가까이 다가가야만 은은한 향을 느낄 수 있었다.



부천 백만 송이 장미원은 도당공원 일대에 조성된 시민 휴식 공간으로, 1990년대 후반부터 장미 식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후 부천시는 삭막한 도시 공간에 시민들이 계절의 아름다움을 가까이 느낄 수 있도록 장미를 꾸준히 심고 가꾸며 지금의 장미원을 만들었다고 한다. 백만 송이 장미원이라는 이름처럼 수많은 장미가 언덕과 산바카라길을 가득 채우고 있어 5월이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image.png▲부천 백만 송이 장미원노란 장미꽃 앞에서 포즈를 취했던 날입니다. ⓒ 남편제공


나 역시 이날 노란 장미와 잘 어울릴 것 같아 노란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갔다. 오전 시간임에도 햇살은 꽤 따가웠다. 그래도 장미꽃들은 마치 노란 조명을 받은 배우처럼 태양 아래서 더 환하게 빛났다. 노란 장미 앞에서 쑥스러운 표정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옆을 지나던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 한 분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노란 장미와 참 잘 어울리네요."



뜻밖의 말 한마디에 기분이 노란 장미처럼 환해졌다. 남편도 내가 포즈를 바꿀 때마다 연신 "좋아, 좋아"를 외치며 사진을 찍어 주었다. 장미 앞에서는 사람들의 표정이 백만 송이 장미보다 더 환하게 피어나는 공간이었다.



가장 마음에 남았던 장면은 연로하신 부모님을 휠체어에 모시고 천천히 장미원을 산바카라하던 가족이었다. 서두르지 않고 꽃 한 송이 한 송이마다 이름을 알려주며 향기를 느낄 수 있게 걷는 모습이 참 따뜻해 보였다. 화려한 여행지가 아니어도, 비싼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가족과 함께 같은 꽃을 바라보는 시간만으로 사람은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아이 손을 잡고 나온 가족들도 많았다. 아이들은 꽃보다 더 밝게 웃었고 부모들은 그런 모습을 사진에 담느라 분주했다. 모두의 얼굴에 미소가 있었다. 장미원은 단지 꽃을 보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의 행복한 시간을 피워내는 장소처럼 느껴졌다.



장미원과 연결된 작은 공원도 참 좋았다. 오래된 나무들이 만들어주는 넉넉한 그늘 아래에는 의자가 놓여 있었고 시민들은 잠시 앉아 바람을 즐기고 있었다. 도시 한가운데 있지만 공원 안으로 들어서면 시간의 속도가 조금 느려지는 기분이었다. 멀리 여행을 가지 않아도 가까운 곳에서 충분히 쉬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고마운 날이었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이 아름다운 공간이 무료라는 것이다. 부담 없이 찾아와 꽃향기를 맡고 산바카라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장미원에는 연인도, 가족도, 노부부도, 혼자 나온 사람도 자연스럽게 어울려 있었다. 장미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아름다웠다.



오월은 금세 지나간다. 장미가 가장 아름다운 계절도 길지 않다. 그래서 더 서둘러 가야 한다. 멀리 떠날 계획이 없다면 이번 주말, 집 가까운 도시 속 장미원으로 향해보는 건 어떨까. 백만 송이 장미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건 어쩌면 그곳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웃는 얼굴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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