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동안 집수리 한 남자에게 배운 삶의 태도

박찬용의 <서울의 어느 집>을 읽고

by김남정

며칠 전 지인으로부터 바카라 선물을 받았다. 바카라을 선물 받는다는 건 단순히 물건 하나를 건네받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이 지금의 나에게 건네고 싶은 시간과 마음을 함께 받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상대가 어떤 장면에서 이 바카라을 떠올렸는지, 왜 하필 지금 이 바카라이어야 했는지까지 함께 도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깊게 읽힌다. 그렇게 내게 도착한 바카라이 바로 박찬용의 <서울의 어느 집>(2025년 10월 출간)이었다.


image.png▲<서울의 어느 집>'사소하게 복잡한 집수리 7년' 부제목이 마음에 들었습니다.(지인에게 선물 받은 바카라) ⓒ 에이치비 프레스


'집'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다. 하루의 피로를 녹이고, 주인의 취향이 드러나며, 관계와 삶의 방식이 은근하게 배어드는 장소다. 그래서 집은 한 사람의 삶의 결을 읽는 일과 다르지 않다. 엉겁결에 선물로 내 손에 들어온 이 바카라이 유독 눈에 들어온 이유도 그 지점이었다. 특히 소제목인 '사소하게 복잡한 집수리 7년'이라는 문장이 순간적으로 마음에 박혔다. 단순한 인테리어 기록이 아니라, 삶을 밀고 가는 한 사람의 집요한 태도처럼 읽혔다.


바카라에는 박찬용 에디터가 지금 살고 있는 집(7년 전 준공 50년 된 낡은 공동주택)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담겨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집 꾸미기' 이야기가 아니다. 그 과정 속에는 그의 직업적 고민, 취향의 형성 과정,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함께 얽혀 있다. 집과 삶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흐름처럼 이어진다는 점이 이 바카라의 특징이다.


프롤로그와 1부 '생각'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부분은 집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그의 태도였다. 그는 쉽게 "좋아 보이는 것"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현실의 무게까지 함께 이야기한다.


"이 업계에서 일하며 '나 (뭔가 좋아 보이는) 그거 하고 싶었는데'라고 말만 하고 자신의 편안한 둥지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봤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것의 정의가 다른 건 당연하다. 미련한 나에게 '좋아함'은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나는 필요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았다." - 47p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좋아한다'는 말의 무게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종종 좋아한다는 감정을 너무 가볍게 사용한다. 하지만 정말로 어떤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결국 시간과 돈, 불편함과 선택의 포기를 함께 감내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좋아함이 단순한 취향의 선언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라면, 그것은 결국 말이 아니라 선택으로 증명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의 대가를 치르며 집수리 실행을 해나가는 2부에서는 또 다른 문장이 오래 남았다. "한계는 늘 쓸모 있다"라는 말이었다.


"한계는 늘 쓸모 있다. 나는 몇 년 후 그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 "예술은 제한에서 태어나 자유에 죽는다." 그 말 그대로였다. 나는 내가 맞닥뜨린 수많은 한계 앞에서 잔머리를 굴려가며 집수리를 해나갔다." - 128~129p

이 부분을 읽으며 나의 태도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종종 한계를 마주하면 그것을 '중단의 이유'로 삼았던 것 같다. 시간이 부족하다, 돈이 없다, 조건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멈춰 서 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 바카라은 그 반대로 말한다.


한계는 포기의 이유가 아니라 오히려 더 집요하게 고민하게 만드는 조건이라는 것이다. 제한된 예산과 구조 안에서 절차를 배우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더 정교하게 선택해 나가는 태도다. 그것이야말로 삶과 창작을 오래 지속하게 만드는 힘이란 생각이 들었다. 바카라 속에는 '좋은 것'에 대한 그의 고민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나는 이른바 '좋은 것'이라는 게 무엇인지 늘 궁금했고, 생각할수록 좋은 것이 꼭 값비싼 것만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귀찮은 일들을 거치다 보면 내 경험에도 품질이 좋은 것들을 고를 수 있었다." - 139p


이 문장은 특히 현실적인 공감을 불러왔다.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 올 때가 떠올랐다. 작가처럼 오래된 집을 수리하는 것은 아니었다. 건설사에서 비슷한 구조로 지어진 아파트였지만, 그 공간을 처음 꾸미던 시기에 한정된 예산 안에서 수많은 선택을 해야 했다. 부엌의 환기 방식, 인덕션의 종류, 조명의 밝기, 작은 수납의 효율 같은 문제들이었다.


발품을 팔며 우리 집에 알맞은 제품들을 찾으러 다녔던 시간도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결국 '좋은 집'은 비싼 물건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제한된 조건 안에서 얼마나 오래 고민했는가의 결과라는 것을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작가의 말처럼 귀찮음을 통과한 선택만이 결국 삶의 질을 만들어낸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작가의 일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였다.


"나는 나름 슬롯생활을 하며 '현장 사람들의 노고를 모르면 안 된다'는 삶의 원칙이 생겼다." - 188p


이 문장에는 결과보다 과정을 먼저 바라보려는 작가의 태도가 담겨 있다. 우리는 종종 완성된 공간만 평가한다. 잘 정돈된 집, 매끈한 인테리어, 보기 좋은 결과물만 바라본다. 하지만 그 뒤에는 먼지를 뒤집어쓴 채 하루 종일 현장을 오가는 사람들, 작은 오차를 맞추기 위해 반복해서 손을 움직이는 노동, 눈에 띄지 않는 기술과 시간이 존재한다.


작가는 집수리를 통해 결국 '공간'만 배운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노동을 이해한다. 그것은 단순한 직업윤리를 넘어, 세상을 대하는 감각에 가까워 보였다. 누군가의 수고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태도, 결과 이전에 과정의 시간을 상상하려는 태도 말이다. 어쩌면 좋은 취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존중의 감각이라는 것을 배웠다. 또한 그는 자신의 삶을 꾸밈없이 인정한다.


"기왕 돈 쓸 거면 남과 다른 무언가를 구현하려고 하는 것 아닌가. … 그래서 이 모양으로 사는 것 같지만 그게 나다." - 244p


이 말은 '완성된 자기'가 아니라 '진행 중인 자기'를 받아들이는 태도처럼 읽혔다. 이 부분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떠오른 생각이 있다. 우리의 주거 형태는 대부분 누군가가 이미 완성해 둔 집에 들어와, 그 안을 다시 채우는 방식이다. 구조는 정해져 있고 선택지는 제한되어 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최대한 '좋아 보이는 것'을 찾으려 애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완벽한 선택이 아니라, 그 제한된 구조 안에서 얼마나 자기답게 살아내느냐이다. 집을 꾸민다는 것은 결국 공간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는 태도를 조정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카라의 마지막 부분에 건축가 이희준과 박찬용의 대화 속에 등장하는 '팔라(fala)' 개념(328쪽)도 인상 깊었다. 건축의 요소들이 각자의 목소리를 가지고 존재하기를 바란다는 이 개념은, 집을 단순히 꾸미는 대상이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들이 공존하는 구조로 바라보게 만든다.


기둥은 기둥으로, 창은 창으로, 각자의 역할과 존재 이유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집. 그 안에서 인테리어란 무언가를 숨기는 기술이 아니라, 본래의 성질을 드러내는 방식이라는 점이 새롭게 다가왔다.


바카라을 다 읽고 나니 결국 이 바카라은 집수리 에세이이면서 동시에 '삶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기록처럼 느껴졌다. 7년이라는 시간 동안 반복된 수정과 선택은 단지 집을 바꾼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자신의 취향과 세계를 끝까지 밀고 가는 과정이었다.


좋은 집이란 결국 좋은 취향의 결과가 아니라, 좋은 태도의 축적이라는 것. 그리고 그 태도는 생각보다 훨씬 오래 걸리고, 때로는 불편하며, 그래서 더 진짜에 가까워진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바카라은 인테리어나 집수리에 관심 있는 사람뿐 아니라, '나는 어떤 삶의 태도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도 오래 남는 바카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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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35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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