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 오가는 말

글 따라 마음 따라

by맑고 투명한 날

예전에는 이런 명절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친척들이

같이 모여 만든 음식도 나누어 먹고

용돈도 받고 서로의 일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런 명절이 말입니다.


그런데 나이를 먹다 보니

명절이 되면 피곤합니다.


어릴 땐 주로 듣는 이야기가

학교 성적이 어떠냐

어느 대학에 갈 수 있냐 같은 말들이

대부분이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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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되고 돈을 벌 시기가 되었을 때는

다니는 온라인 게임의 월급은 얼마냐

거긴 오래 다닐 수 있는 곳이냐

결혼은 언제 할 거냐 같은

말들이 오고 가기 시작합니다.


친척들의 자식들.

그중에서도 나와 나이가 비슷한 자녀와

여러 가지를 직접 비교를 하면서


내가 그들보다 잘 나가면 질투를

내가 그들보다 못 나가면 조롱을 합니다.


그땐 솔직히 몰랐습니다.

그런 말들의 속뜻이 뭔지요.


그래도 그때는 친척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는 게

단순히 좋다고만 생각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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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내가 나이를 먹어도 결혼을 하지 않고

나와 같은 나이 대의 평균적인 생활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을 가지고

나보다 더 걱정하고 부모님과 설전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피곤합니다.

그것도 몹시 피곤합니다.


점점 친척들이 명절에 오는 게

너무나 부담스럽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런 마음 가짐을 가져서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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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가세가 IMF 때 완전 기울면서

명절 때는 말할 것도 없고

평상시에도 우리 집 문턱이 닳도록

정말 시도 때도 없이 방문하던

그 수많은 친척들이.


심지어 우리와 8촌을 넘어 거의 남이었던

아니 진짜 법적으로 완전 남인 친척들이

전부 일제히 발길을 끊었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 집은 고요함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원하던 것이 이루어졌으니

기뻐해야 하는게 맞는데


그 이유가 가세가 기울어 그런 것이니

전혀 기쁘지가 않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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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사람 사는 곳은 북적거려야 합니다.


그런데 이번 추석은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셔서 그런지

더욱 썰렁해졌습니다.


사람이 많으면 피곤하고

그들이 나에게 하던 독설에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막상 아무도 왕래하지 않고

연락조차 뜸하니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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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오늘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쪽에서 갑자기 저에게 화를 냅니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지도

시간이 꽤 흘렀으니

이젠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거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내가 그분에게

도와달라고 한 적도 없고

뭔가를 요구한 적도 없는데

뜬금없이 연락을 해 한다는 말이


정신을 차리라니...


그분은 한바탕 훈계를 하고 난 뒤

그냥 전화를 끊어 버립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전 한동안 멍했습니다.


제가 나이가 어린것도 아니고

이런 말을 들어야 할 정도로

인생을 잘못 산 건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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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갑자기 이런 말을 나에게 했을까요?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다 나이를 먹어서 그렇겠죠.

나도 그렇고 그분도 그렇고.


맞습니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명절이 점점 명절 같지 않고

즐겁지도 않고 재밌지도 않습니다.


그냥 피곤합니다.


어쩌다 보니 대학 후배들은

줄줄이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나이를 먹도록

결혼을 하지 않은 난

당연히 자식이 없으니

할아버지가 될 일도 영원히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가

뭔가 세상을 잘못 살았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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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느낌이 드는 걸까요.


갑작스럽게 걸려온

그 전화 때문에 억울한 건지.


나 자신이 참...


모르겠습니다.


추석에 오가는 말은

될 수 있으면 따뜻하고 희망차야 하는데

제가 상대방에게 하는 말이 그렇지 못하나 봅니다.


반성해야겠지요.

어차피 상대는 반성하지 않을 테니까요.


추석 연휴가 끝나가는 이 시점에

무료했던 시간이

누군가의 전화 한 통으로 정신이 번쩍 듭니다.


얼마 남지 않은 추석 연휴지만

모두 행복한 시간 되시길 기원합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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