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따라 마음 따라
인생이 소풍이라면
그 소풍 중에 일어난 소소한 일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집에만 있으면 사람이 자꾸 게을러집니다.
그래서 칸트는 매일 산바카라을 했나 봅니다.
하도 같은 시간에 산바카라을 해서
동네 사람들이 칸트가 산바카라을 하는 걸 보고
시간을 알 정도로
칸트는 평생 같은 루틴을 지켰습니다.
얼마나 철저하던지
죽기 바로 전날에도
칸트는 산바카라 루틴을 지켰다고 합니다.
참 대단합니다.
그런 이유를 대면서
오늘 전 칸트처럼 밖으로 나갔습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칸트가 했던 가벼운 동네 산바카라이 아니라
짧은 거리지만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한다는 게 차이겠네요.
그렇게 드라이브를 위해
제가 살고 있는 곳 지하 주차장에서 나가는데
엄청 큰 픽업트럭 차가 주차장 입구에서 들어왔습니다.
당연히 차를 세우고 그 큰 차가 먼저 지나가길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그 차가 깜빡이도 안 켜고 제가 멈춰 선 곳으로 갑자기 들어옵니다.
당연히 큰 차가 지나가긴 좁은 길이니까.
누군가 양보를 하는 게 맞는데
깜빡이도 안 켜고 강제로 밀고 들어와 놓고는
차를 비켜 주지 않는다고 눈을 무섭게 흘기네요.
기분은 나빴지만 이런 일 가지고 시비하기 싫어
차를 뒤로 후진했습니다.
그런데 운전석에 앉은 쓰레기는
날 엄청 노려 봅니다.
정말 성질 같아서는
당장 차에서 내려 멱살을 잡고
끌어내리고 싶었지만
... 참았습니다.
왜냐하면
오전부터 시비를 걸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부모님이 모두 돌아간 상실감에
제 자신이 큰 사고를 칠 거 같아서 참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참고선
확실하게 후진까지 해서 길을 터 주었는데도
바로 가지 않고 정말 끝까지 노려 보고 있더군요.
정말 무서운 살기가 나의 온몸에서 꿈틀거리는데
진짜 참기 힘들었습니다.
보아하니 자신이 큰 차에 타고 있고
자기 덩치가 크니까 그런 거 같았습니다.
정말 웃기는 일입니다.
세상 무서운 걸 모르는 것 같은데
한번 제대로 알려 줄까란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 제 상태가
부모님이 3달의 텀을 두고 모두 돌아가셔서
극도로 불안정한 상태인데
저도 모르게 사고를 칠 거 같아.
억지로 참고 또 참았습니다.
그렇게 기분이 상해
대충 동네 한 바퀴를 돌고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집에 다시 돌아오면서 엘리베이터에서
택배 배달하시는 분과 함께 타게 되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추석을 위해 보낸
추석 선물 때문인지 택배가 엄청 많더군요.
그분은 층마다 택배를 내려놓고
확인용 사진을 찍는 일을 하셨는데
나이도 많은 분이 급하게 이동하는데
자꾸 미끄러질까 봐 걱정이 됩니다.
그런데 그분은 엘리베이터 안에 택배 카트를 넣어 놓고는
안을 좁게 만들었다고 계속 미안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분이 택배를 내려야 할 층층마다
문 열림 버튼을 눌러 주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사는 층에 내리며
추석 잘 보내시라고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분도 계속해서 미안하다며
추석 잘 보내라고 답례하시네요.
그게 오늘 오전
저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솔직히 말해
아까 주차장에서의 그 차에 대해
그냥 제가 양보하면 그만입니다.
주차장에서 만난 인간쓰레기.
세상에 그런 인간쓰레기들을
살면서 한 두 번 만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내가 먼저 양보해 주는 게
그런 쓰레기들을 직접 상대해서
피곤해지는 것보다 나으니까요.
하지만 제 마음이 너무 불안정하고
협소해진 건지.
이상하게 아까는 양보를 전혀 하기 싫었습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참 웃긴 일입니다.
저는 매일,
아니 매 순간 관세음보살을 염하며
저를 향한 대자대비심을 끝없이 애원하면서
처음 본 다른 사람에게는
아주 작은 자비심조차 내는 걸 힘들어하다니요.
큰 차에 탄 그 무례한 사람의 외형이
만약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이었다면
전 그때 어떻게 대처했을까요?
당연히 아주 작은 고민조차 없이
백번이고 천 번이고 양보를 했을 겁니다.
아니지
양보뿐만이 아니라
차에서 빠르게 내려 두 손을 모아 합장까지 하며
극진한 예를 갖추고 신심 가득하게 허리를 숙였을 겁니다.
잘못된 분별심.
겉모습에 팔려
사람을 차별합니다.
절에 다니고 부처님의 법을 따르겠다고 다짐한 주제에
하는 짓은 동네 삼류 양아치만도 못한 마음가짐과 행동을 하는 거지요.
그렇게 생각하니
제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아까 상황은 분명
문수보살님이나 보현보살님께서 몸을 변신해
저의 신심이 얼마나 애절한지 시험한 겁니다.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에게는
날 향해 끝없이 크고 넓은 자비심을 원하면서
정작 남들에게는
아주 작은 양보조차 하기 싫어
핑계나 대고 변명만 일삼는 나.
아무리 이율배반적인 삶을 사는 게
사람이고 나 또한 그런 사람 중 하나이지만.
너무나 부끄럽고 창피합니다.
어디 가서 사람들에게 절에 다니네
종교가 불교네 하며 떠드는 것 자체가요.
남에게는 아주 작은 것도 제대로 베풀지 못하면서
언제나 큰 자비심만 구걸하는 나란 존재가 너무 한심합니다.
반성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겉모습에만 시선이 팔려
장중하게 있지 못하고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가
바람에 맥없이 휘둘리는 것 같은
나의 헛된 마음.
사실 저에게 당장 필요한 건.
세상에 인간쓰레기들이 너무 많다고 불평을 할 게 아니라.
나 스스로가 그렇게 욕했던
바로 그 인간쓰레기가
나라는 사실을 직시하는 거였습니다.
조용히 눈을 감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다스립니다.
아무 소용없는 분별심...
그 분별심은 어디서 왔을까?
처음에는
그건 상대가 나에 대해 행한
무례함 때문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더 따지고 보면
제가 느낀 상대의 무례함이라는 것도
내가 그냥 그렇게 느낄 뿐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을 들어가 본 적도 없으면서
왜 그런 식으로 아전인수식의 일방적인 판단을 합니까.
그건 알지도 못하는 상대에게
나에 대해서 상상할 수 조차 없는
무한 배려를 요구한 거와 뭐가 다릅니까.
그게 세상 이치에 맞습니까?
절대 안 맞지요.
나 자신조차도 그렇게 못하면서
알지도 못하고 처음 본 상대에게 요구하는
그 무지함.
그러니 상대가 날 흘겨 보았는지도 모릅니다.
아니지 흘겨본 게 아니라.
그냥 내가 한심해 보였을 겁니다.
그런 생각이 드니까
정말이지 나 자신이 너무 어리석습니다.
이렇게 인과를 하나씩 따지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둘 보이는 것 같습니다.
나의 욕심에만 충실해
남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욕망 덩어리인 나란 존재.
그런 면에서
전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내게 좋은 것만 원하고
조금이라도 불편함을 느끼면
처음 본 알지도 못하는 상대를
이런 식으로 매도하고 욕하고...
참 슬프지만
그게 저라는 그릇의 크기입니다.
그래서 다시 다짐합니다.
앞으로는
의미 없는 변명을 하지 않겠습니다.
억울하다는 허상에 마음이 팔려
쓸데없는 핑계를 대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알량한 자존심을 세우겠다고
무조건적인 자기 합리화도 하지 않겠습니다.
마음은 참 요상해서
한번 닫힌 마음은 송곳 하나 찌를 곳 조차도 없지만
크게 열린 마음은 온 우주를 넣어도 다 채우지 못합니다.
그런 마음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오히려 의미 없이 그 마음에 정처 없이 휩쓸리는 나.
다시 반성해야 합니다.
그 반성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걸
똑바로 깨닫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저의 소풍은 이렇게 흥미롭습니다.
이런저런 일들도 생각해 보면
무척이나 재밌습니다.
어차피 소풍이 모두 끝나는 날.
이런 소소한 것들은
모두 작은 추억으로 남겨지게 되겠죠.
그렇게 저의 소풍은 계속됩니다.
다음은 어떤 일이 저에게 벌어질지 너무 궁금합니다.
그런 면에서 보니.
오늘 일어난 모든 일들은
잠시 소풍 중에 한눈을 팔았던 겁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마음이 상하고
예전에는 이런 것들이 너무 싫었는데
잠시 생각해 보니까.
이젠 느긋하게 소풍 중에도 잠시 멈춰 서서
나의 곁을 지나는 아름다운 풍경을 천천히 음미하며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나 봅니다.
그렇게 나의 소풍은 중단 없이 계속됩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