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만들어진 이유

글 따라 마음 따라

인간은 왜 태어났을까?
아니 왜 만들어졌을까?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하지 않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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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여기선 인간이 만들어진 이야기 중.


고대 수메르 문명 점토판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는

'아눈나키 외계인 창조설'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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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아주 먼 옛날에

니비루(Nibiru) 행성에서 온 외계 종족인 '아눈나키'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행성 대기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막대한 양의 황금을

지구에서 채굴하기 위해 왔습니다.


그들도 모든 슬롯가 그렇듯 계급 슬롯였고.

당연히 금을 캐는 힘든 일을 하는 계급은 따로 존재했습니다.


아눈나키의 하급 노동자들이

금을 캐는 힘든 노동을 참지 못해 결국 파업을 일으키게 되자.


그들의 지도자인 엔키(Enki)와 닌후르상[Nin-hursag, 다른 이름 닌마(Ninmah 위대한 여왕이라는 뜻)]이

지구에 원래 있던 영장류(아마 원시 인류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의 유전자를 조작해

하급 노동자를 대신해 금광에서 일할 노예(현생 인류)를 만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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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인간 탄생 이야기 중에서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인간의 탄생은

세상의 축복을 받거나 행복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절대 아니란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도 '막장'이란 이야기를 잘 아실 겁니다.


원래 막장은 탄광의 가장 끝쪽을 말하며, 당연히 굉장히 환경이 좋지 못하고 위험한 곳을 말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의미보다는 인생이 갈 때까지 갔다는 의미로 더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그 사람은 탄광의 막장에서 힘들게 일했다"란 표현보다는

"그 인간은 막장 인생이야."란 표현으로 쓰인다는 거죠.


왜 이런 사족을 붙일까요.

제 글에 나오는 막장이란 뜻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은 태생 자체가

누군가의 고통과 고난을 대신하기 위해,

그것도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일회성 소모품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런 고통도

사실 전혀 낯선 것이 아니라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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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

원래 인간은 고생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니까요.


그러니까

내가 지금 왜 이렇게 힘들까? 괴로울까? 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겁니다.


냉장고나 에어컨이 무언가를 차가운 상태로 만들기 위한 것이어야 하고

전자레인지는 음식을 데우거나 해동하는 데 사용하는 것처럼.


인간은 태생 자체가 고생을 위해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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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남들이 보기에 행복해 보이는 사람도

실은 고통과 고난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물론 그들은 아니라고 할 겁니다.

그 누구보다 행복하다고 말하겠지요.


하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초식 동물이 풀을 먹고

육식 동물이 초식 동물을 먹는 것처럼.


이 세상은 그 목적이 정해져 태어납니다.


초식 동물이 풀을 뜯어 새 풀이 자라날 땅을 만들고

육식 동물이 초식 동물을 잡아먹어 그 개체수를 조절하는 것처럼.


인간은 이 세상에

고난과 고통을 짊어지기 위해 태어난 존재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힘들고 괴롭고 뭔가 허무하고 텅 빈 것 같은 느낌은

사실 너무나 당연한 겁니다.


왜냐.

인간은 태생 자체가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즉,

누군가의 고통을 대신하기 위해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단백질 합성체.


하아...


그렇게 생각하니까.

삶이 고단한 것보다 더 처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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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이유야 어찌 되었든 인간에게는 태어남 자체가 축복일 수도 있습니다.


탄생 이유 자체가 금을 캐는 험한 막장 인생으로 태어났다고 해도.

결국 이 세상에 태어나 빛을 보고 아주 짧지만 행복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불행한 사람도 언제나 괴롭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불행을 느끼려면 행복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계속 낮이 되면 밤의 존재를 모릅니다.

반대로 밤이 계속되면 낮의 존재를 모릅니다.


빛과 그림자.


그건 두 존재를 더욱 선명하게 부각합니다.


불행하다고 느낄 수 있으려면

행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아 내가 지금 불행하구나"하고 느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사람은 아주 조금이라도 행복에 대해 알게 됩니다.


그래야 불행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아주 조금이라도 행복이란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 짧은 행복 뒤에 몰려오는 엄청난 불행에 대해선 운명이기에 그냥 맞이해야 합니다.

피할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아주 짧은 행복이라도 느꼈다면

우린 그것 자체 만으로도 성공한 인생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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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금을 캐기 위해 태어났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금이 귀한 걸,

그걸 캐던 초기 인간들이 알았을까요?


분명히 몰랐을 겁니다.

그저 힘든 노동에 지쳐 잠시 휴식을 취하고 싶었을 것이고

아주 우연히 쉬는 시간이 생겼다면

그 휴식 자체에서 행복을 느꼈을 겁니다.


금보다 더 귀한 휴식.

그리고 휴식이 주는 행복.


그러다 쓰러져 죽으면

한 줌 흙으로 되돌아가는 사이클.


우린 이런 윤회를 무수히 반복하는 겁니다.


인생이 10이라고 할 때

우린 고통이 9라면

행복은 1만큼 느끼게 될 겁니다.


너무 흔한 건 귀하지 않아요.

그러고 보니 인생에 고통이 너무 흔해서

사실 고통은 귀하지 않네요.


귀한 건 행복인데

그 이유는 행복은 쉽게 느낄 수 없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행복을 느끼는 방법이 참 재밌습니다.


그 방법이 뭐냐 하면 이렇습니다.


당장 행복하고 싶다면

그냥 행복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난 지금 행복하다"라고 혼자 선언해 버리면

그냥 이유 없이 행복해집니다.


사실 금을 캐야 하는 인간이

금을 캐는 노동에서 해방되었을 때.

우린 모두 행복했던 겁니다.


그런데 그걸 자꾸 망각하니까.

불행이라는 고난이 찾아오는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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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찾기 위해 멀리 갈 것도 없이.

단지 금을 캐지 않는다는

우리 인간의 창조 목적에서 벗어난 것으로도

우린 이미 엄청 행복한 거였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창문을 열고 바람을 쐽니다.


참 시원하고 상쾌한 바람입니다.


행복합니다.

이런 시원한 바람을 맞을 수 있어서

이런 상쾌한 바람을 무료로 즐길 수 있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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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굳이 멀리에서 힘들게 찾지 않아도

이미 내 곁에 무수히 굴러 다니고 있었습니다.


난 그중 아무거나 하나를 집어 들고

행복해하기만 하면 되는 거였습니다.


참 행복한 세상입니다.

참 행복한 인생입니다.


그리고

이런 시원하고 상쾌한 바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합니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토요일.

망상에 잠겨 잡설을 늘어놓았습니다. ㅎㅎㅎ



...fin...


fotor-ai-202606058243.jpg인공지능으로 만든 가상 이미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