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온라인 게임인에게 남긴 질문
요즘 멘토링 자리에 가면 빠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AI 이야기다. 예전에 한나절 걸리던 보고서 초안이 이제 한 시간이면 나오고, 회의록 정리는 회의가 끝나기도 전에 끝난다고 한다. 목소리마다 자부심이 묻어 있다. 축하한다고 말한 뒤에 내가 묻는 질문은 하나다.
그럼 이제 남는 그 시간에는 뭘 하세요.
대부분 잠시 말이 없다. 그러다 비슷하게 답한다. 밀린 다른 일을 한다고. 다른 답이 나오는 경우는 별로 없다.
조직 이론에 제임스 마치라는 학자가 있다. 평생 조직이 어떻게 배우는가를 연구했는데 그가 1991년에 쓴 짧은 논문 하나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 요지는 단순하다. 조직이 하는 일은 결국 둘뿐이라는 것.
이미 아는 것을 다듬고 빠르게 하는 활용, 그리고 아직 모르는 것을 시도하고 실패하는 탐색.
조직의 운명은 이 둘의 배분이 정한다.
나는 이 구분이 조직보다 개인에게 더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온라인 게임인의 하루도 결국 둘로 나뉜다. 잘하는 일을 하는 시간과, 못하는 일에 서투르게 부딪히는 시간. 문제는 이 경기가 공정하지 않다는 데 있다. 잘하는 일은 이번 분기 고과에 잡힌다. 못하는 일에 쓴 시간은 어디에도 잡히지 않는다. 실패하면 흔적도 없고, 성공해도 몇 년 뒤다.
그래서 내버려두면 사람은 반드시 잘하는 일 쪽으로 기운다.
잘하니까 더 하게 되고, 더 하니까 더 잘하게 된다. 마치는 이것을 성공의 함정이라 불렀다. 사람을 멈추게 하는 것은 실패가 아니다. 어제의 성공이 내일의 배움을 막는 구조다.
이 함정에 빠진 회사의 표본이 코닥이다. 세계 최초의 디지털카메라를 만든 회사가 코닥이었다. 1975년 젊은 엔지니어 스티븐 새슨이 시제품을 경영진 앞에서 시연했을 때 돌아온 말을 그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귀엽네, 그런데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게. 코닥이 디지털을 안 한 것은 아니다. 뒤늦게 수십억 달러를 쏟았다. 다만 코닥의 모든 시도는 필름 다음도 사진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었고, 그 사진 시장 전체가 스마트폰에 삼켜졌다.
같은 파도를 맞은 후지필름은 질문이 달랐다. 사진 시장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가 아니라, 필름에서 쌓은 역량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필름의 콜라겐 화학은 화장품이 됐고, 정밀 도포 기술은 의약품과 소재로 갔다. 두 회사를 가른 것은 노력의 양이 아니라 질문의 울타리였다.
온라인 게임인에게도 코닥형과 후지형이 있다.
코닥형은 내 일은 보고서를 쓰는 것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AI를 쓴다. 보고서가 빨라지면 그 시간에 보고서를 더 쓴다. 후지형은 울타리 밖을 묻는다. 내가 쌓아온 역량으로, 이제 남은 이 시간으로, 아직 해보지 않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
누군가는 물을지도 모른다. AI가 있으니 새로운 시도도 쉬워지지 않았느냐고. 절반만 맞다. AI가 낮춘 것은 실행의 비용이다. 방향은 잡아주지 못한다. AI는 데이터가 있는 질문에 강하고, 탐색은 정의상 데이터가 없는 곳으로 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아직 모르는지, 어디에 실패해도 좋을 시간을 걸지 정하는 일은 기계의 몫이 아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인정해야 한다. 회사는 내 탐색을 설계해주지 않는다. 회사의 평가 체계는 원래 활용에 보상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것이 회사의 잘못이라기보다 회사라는 제도의 생김새다. 그러니 탐색의 예산은 결국 본인이 걸어야 한다. AI가 벌어준 그 시간이 아마 온라인 게임인이 가져본 가장 큰 탐색 예산일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축하 끝에 한마디를 보탠다. 남는 시간에 밀린 일만 하면, AI는 당신을 지금 자리에 더 단단히 묶어두는 도구가 된다고. 그 시간의 절반이라도 아직 못하는 일에 걸어보라고. 말은 그렇게 해놓고, 돌아오는 길에 그 질문은 결국 나를 향한다.
나는 무엇을 아직 모르는가.
이 질문이 불편해지는 순간, 탐색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