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별일 없어. 그게 제일 좋아

멈춰있다는 것과 평안하다는 것

by신광훈

오랜만에 대학 동기를 만났다. 언제 퇴직할 지는 모르지만, 아직 회사 돈으로 출장 다닐 수 있을 때 얼굴이나 한 번 보자고 연락이 왔다. 한 회사에서 스무 해 넘게 일한 친구다. 이런 날은 고기 와 수주다. 고기가 익어 가는 동안 근황을 물었더니, 그는 소주잔을 내려놓고 웃었다.


"요즘 별일 없어. 그게 제일 좋아."


나도 따라 웃었다. 이 나이에 별일이 없다는 건 복이다. 아픈 데 없고, 회사에서 밀려나지 않았고, 아이들도 제 앞가림을 한다. 그런데 집으로 오는 길에 그 말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친구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 이야기도 평이했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언가 우리를 크게 웃지는 못하게 하는 것이 있었다.


나도 그 말을 입에 달고 산 적이 있다. 마흔을 몇 년 앞두고였다. 누구보다 일찍 출근해서 업무 준비를 마치고 기본 업무를 해 놓고, 예정된 회의에 들어가고, 마케팅 계획을 점검하고 또 수정하고, 다음 달 보고서를 혹은 세미나 자료를 고쳐가며 영업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미 오랫동안 손에 익은 일이었고, 잘 해 왔고, 이제와서 크게 틀릴 일도 없었다.


새로운 일을 나오면 침묵을 지켰다. 그럼, 보통은 말단들이 일을 시작했다. 말단들이 어느 정도 해 보다가 안 되면 나에게 올 터이니, 미루는 건 아니라 자위했다. TV는 보지 않았지만 저녁이면 늘 술 약속이 있었고, 아내에게 미안할 때면 외식으로 때워도 되었다.


평안하다고 생각했다. 힘든 일이 없고 고민이 없으니 그게 평안인 줄 알았다. 마흔에 승진에서 떨어지고 나서야 알았다.


나는 평안했던 게 아니라 멈춰 있었다. 이듬해 나는 마흔의 나이로 캐나다의 로스쿨에 들어갔다.


사람은 멈춰 있는 쪽을 더 편하게 느끼도록 만들어졌다지 않은가. 1988년 미국의 경제학자 윌리엄 새뮤얼슨과 리처드 제크하우저는 사람들이 더 나은 선택지가 있어도 지금 상태를 그대로 두는 쪽을 고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이것을 '현상 유지 편향'이라고 불렀다.


멈춰 있음과 평안함은 겉으로는 구별하기 어렵다. 둘 다 조용하고, 둘 다 별일이 없다.


바꾸지 않으면 실패할 일도 없다. 그 안도감이 평안의 얼굴을 하고 우리를 찾아온다.


그 차이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 주는 것은 심장이다.


병원 드라마에 종종 나오는 심전도 모니터를 떠올려 보라.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장면은 그 선이 평평해지는 순간이다. 평평함은 고요가 아니라 끝이다. 살아 있는 심장도 우리 생각만큼 규칙적이지 않다. 오래전 사람들은 심장이 메트로놈처럼 일정하게 뛴다고 믿었지만, 실제로 건강한 심장은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박동 간격이 조금씩 달라진다고 한다. 여러 연구에서 이 변이도가 낮은 사람일수록 질병과 사망의 위험이 높게 나타났다.


살아있는 심장은 흔들릴 줄 알아야 건강하다.


옛사람들도 같은 것을 알았다. 『여씨춘추』에는 "흐르는 물은 썩지 않고, 자주 움직이는 문축은 좀먹지 않는다(流水不腐 戶樞不蠹)"는 구절이 있다. 고인 물은 겉이 맑아 보여도 속에서 썩는다. 날마다 여닫는 문은 삐걱거려도 벌레가 먹지 않는다.


2007년 스위스의 경영 컨설턴트 페터 베르더와 필리프 로틀린은 '보어아웃(boreout)'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일에 지쳐 타 버리는 번아웃의 반대편이다. 두 사람은 보어아웃의 요소로 지루함, 도전의 부재, 흥미의 상실을 꼽았다.


나실 나쁘지 않아 보인다. 온라인 게임에서 지루하고, 도전할 일 없고, 흥미있는 일 없는데도 월급이 꼬박꼬박 나온다면, 남들 눈에는 부러운 자리임에 분명하다.


능력에 비해 일은 적고 받는 월급에 비해 바카라임은 가볍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사람은 서서히 닳는다. 할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의미가 없어서다. 동기와 내가 나누었던 별일 없음도 혹시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아인슈타인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힘들어하던 열아홉 살 둘째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구절이 있다고 한다.


"사람은 자전거와 같다. 달릴 때에만 편안하게 균형을 잡을 수 있다."


자전거 페달을 밟는 노력을 해야 하는 상황을 '편안하게'라고 불렀다는 점이 눈에 들어온다. 편안함은 멈춰 서야 오는 것이 아니라 달리는 동안에 온다는 뜻이다. 멈춘 자전거는 넘어진다. 세워 두려면 받침대가 필요하다. 우리가 평안이라고 부르는 것 가운데 적지 않은 것이 실은 그 받침대가 없으면 유지되지 않는 것들일지도 모른다.


평안은 흔들림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흔들려도 다시 중심으로 돌아올 수 있는 상태다. 달리는 자전거는 쉬지 않고 좌우로 기울지만 넘어지지 않는다. 핸들을 조금씩 틀고, 페달을 계속 밟기 때문이다.


평안한 사람의 하루에는 별일이 있다. 다만 그 별일이 그를 쓰러뜨리지 못할 뿐이다.


쉬는 것은 멈추는 것이 아니다. 지친 몸을 눕히고 일부러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쉼과 멈춤을 가르는 기준은 하나다. 다시 달리기 위해 서 있는가, 달리기 싫어서 서 있는가. 쉼은 내가 고른 고요이고, 멈춤은 피하다 보니 남은 고요다.


지난 일 년 동안 처음 해 본 일이 있었나. 내 생각을 바꿔 놓은 사람을 만났나. 두렵지만 해 보고 싶은 일이 아직 남아 있나. 세 질문 앞에서 모두 고개를 젓게 된다면, 그 고요는 평안보다, 쉼보다, 멈춤에 가깝다.


얼마 전 로스쿨 후배 하나가 안부를 물었다.


"선배님, 요즘 어떠세요?"


하마터면 별일 없다고 할 뻔했다. 간신히 머리로 입을 틀어막고 말했다.


"요즘 별일 많아. 그래서 좋아."


별일 많다. 원고는 마감에 쫓기고, 그 놈의 ai 열풍 때문에 배울 것도 많지만 아직 서툴고, 운동은 꾸준히 하고 싶지만 의욕이 안 생기고, 서예 선생님께는 숙제를 안 해 온다고 매번 혼난다.


별일 많다고 얘기해 놓고 보니 그게 내 평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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