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부드럽게 하지 못한 말
"제 전공이 회계라서요. 지금 회계 쪽 일자리를 찾고 있어요."
토론토의 한 카페에서 멘티가 말했다. 갓 대학을 졸업한 한인 청년이었다. 이력서도 깔끔했고, 목표도 분명했다. 성실한 대답이었다. 어디 하나 흠잡을 데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오늘도 같은 이야기를 해야겠구나 싶었다.
나는 토론토에서 여러 멘토링 조직을 통해 젊은 한인들을 만난다. 대부분 대학생이거나 갓 졸업한 슬롯 초년생이다. 그리고 그중 대부분은 캐나다에 남고 싶어 하는 유학생이거나 working holiday 체류자들이다. 문제는 영주권이다. 유학생 혹은 working holidy 신분으로 주어지는 시간은 길어야 4년에서 8년. 그 안에 영주권을 받지 못하면 선택지는 둘뿐이다.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불법체류자로 남거나.
이 조건 앞에서는 전공이 무엇인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는 뒤로 밀린다.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그것이 순서다. 독거노인 돌보미로 영주권이 나온다면 그 일을 해야 한다. 식당 주방에서 일해서 영주권이 나온다면 오늘 식당에 원서를 넣어야 한다. 영주권은 캐나다에서 무언가를 꿈꾸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주권도 없이 회계 쪽 길을 찾고, 마케팅 업무를 할 기회를 노리는 멘티들이 많다. 이유를 물으면 대답은 한결같다. 전공이 그쪽이고, 그 분야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좋아하는 공부를 했고, 배운 것을 쓰고 싶은 마음을 누가 탓하겠는가. 하지만 나는 그날도 준비해 둔 말을 꺼냈다.
"영주권 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건 꿈을 좇는 게 아니에요. 캐나다에서 잠시 쾌락을 즐기는 겁니다."
멘티의 표정이 굳었다. 쾌락이라는 단어가 지나치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나는 그 단어를 바꾸지 않는다. 그보다 정확한 단어를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 꿈을 좇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중 적지 않은 사람이 꿈과 쾌락을 구분하지 못한다. 쾌락은 지금 좋아하는 일을 지금 하게 한다. 꿈은 다르다. 꿈은 그 일을 계속하기 위한 조건부터 치르게 한다. 그래서 꿈은 자주 우회로를 요구한다. 그 우회로는 대개 전공과 무관하고, 폼이 나지 않으며, 이력서에 쓰기 애매하다.
영주권 없이 회계 사무실에 앉아 있는 청년을 생각해 본다. 그는 분명 회계를 하고 있다. 하지만 비자 시계는 매일 줄어들고, 그 일자리는 영주권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는 회계를 하면서도 회계라는 꿈에서 매일 멀어지는 중이다. 반대로 회계가 꿈인 청년이 주방에서 접시를 닦고 있다면 어떤가. 그는 지금 회계와 상관없는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접시 하나하나가 영주권으로, 영주권이 캐나다에서의 삼십 년으로 이어진다면, 그는 접시를 닦으면서 회계를 향해 가는 중이다.
이것이 이민자만의 이야기일까.
누구에게나 자기 꿈의 영주권이 있다. 어떤 이에게는 자격증이고, 어떤 이에게는 버텨야 할 수련 기간이다. 꿈꾸던 일에 당장 발을 담그는 것이 꿈을 좇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건 유효기간이 정해진 쾌락일지도 모른다. 꿈을 좇는다고 하면서 쾌락을 좇는다.
꿈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뿐.
무엇을 하고 있느냐가 꿈을 결정하지 않는다. 지금 하는 일이 그 꿈을 지탱할 토대로 이어지느냐가 결정한다.
몇 달 뒤, 그 멘티에게서 연락이 왔다. 온타리오 주를 떠나 영주권이 나올 수 있다는 다른 주로 옮겨, 노인 요양 기관에서 일하기로 했다는 소식이었다. 한국인이 거의 없는 시골이라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회계 장부 대신 어르신들의 하루를 돌보는 일. 나는 이렇게 답해 주었다.
"꿈의 크기만큼 버틸 수 있을 거예요."
빈말은 아니었다. 나는 그 친구의 꿈의 크기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