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지쳤다면, 좋은 일이다
쥐를 두 무리로 나누어 실험을 했단다. 한쪽은 좁은 우리 안에 여럿을 함께 넣어 부대끼며 살게 하고, 다른 한쪽은 한 마리씩 따로 떼어 가두었다. 그러고는 양쪽 모두에게 모르핀을 탄 설탕물을 내어 주고, 마시고 싶은 만큼 마음껏 마시게 두었다. 결과는 한쪽으로 분명하게 기울었다.
서로 으르렁대며 싸우기도 하고, 등을 비비며 교미도 하던, 종일 복닥거리던 무리가 약물에 훨씬 덜 빠졌다. 외따로 둔 쪽이 단물 든 약에 더 깊이 잠겼다.
곁에 아무도 없는 몸이 약을 더 탐했다는 이야기다.
살아 있다면 모름지기 어울림을 좇을 일이다. 고립은 살아 있는 것에게 좋았던 적이 없다. 부딪치고 시끄럽고 때로 상처를 주고받더라도, 곁에 누군가 있다는 사실이 약보다 먼저 몸을 붙든다. 어울림은 본래 매끄럽지 않다. 싸우고 화해하고 다시 등을 돌리는 그 번거로움이 실은 살아 있다는 증거다.
그 쥐들이 일러 준 것은 의외로 단순했다. 외로운 몸이 약을 부른다는 것.
사람에게 지쳤다는 고객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 조금 안심한다. 지치게 하는 것이 사람이라면, 적어도 약은 아니지 않은가. 대면이든 SNS든 밤새 손을 붙드는 인터넷 오락이든, 다른 이들과 얽혀 드는 일에 빠지는 편이 약물에 잠기는 것보다는 낫다. 중독에도 급이 있다면, 사람에게 중독되는 쪽은 그래도 살아 있는 중독이다. 사람에게 데어 본 사람만이 사람에게 지칠 수 있는 법 아닌가.
낱낱으로 흩어지는 것은 사람을 비뚤어지게 만들기 쉽다. 그런데 이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땅이 끊겨 지리적으로 고립되는 것 또한 병을 부른다. 갈라파고스에 유독 별난 생명들이 많은 까닭도, 따지고 보면 바깥과의 소통이 모자랐던 탓이다. 갈라파고스 섬은 끝끝내 저 혼자 독특해져서 유명세를 타지만, 그 독특함이 늘 축복인 것은 아니다. 닫힌 곳에서는 무엇이든 제 방식대로만 자라, 끝내 바깥을 잃는다.
지금도 그대로인지는 모르겠다. 오래전 어느 호텔 — 조선호텔이었던가 — 한편에 페닌슐라라는 이름의 카페가 있었다. 건물 모서리에서 길 쪽으로 툭 튀어나와, 입구를 제외한 삼면이 도로를 마주 보던 자리였다. 반도. 사방이 트인 듯 보여도 결국 한쪽 등으로만 뭍에 붙어 있는 구조다. 유리창마다 바깥의 소란이 고스란히 비쳐 들던 그 이름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트여 있으면서 이어져 있는 자리란, 생각해 보면 흔치 않다.
내 나라 대한민국도 반도다. 비록 위로 길이 끊겨 있어도, 섬이 아니라 반도라는 사실이 나는 새삼 다행스럽다. 한쪽 등이라도 뭍에 닿아 있으니, 영영 혼자인 것은 아니다. 끊긴 그 위쪽으로도 언젠가 잘 닦인 길 하나 이어진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싸우고 부대끼더라도 끝내 이어져 있는 편이 단물 든 약에 홀로 잠기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그 작은 쥐들도 진작에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