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발을 밟고도 사과하지 않는 사람

지옥철에서의 깨달음

by신광훈

한국에서 일하던 시절, 나는 보통 7시 전에는 출근했기 때문에 아침 "지옥철"을 겪는 일이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전날의 술자리로 늦잠을 잔 날은 지옥철을 피할 수 없었다. 다행히 키가 큰 편이라 그나마 위쪽의 다소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었기에 망정이지, 키가 작았다면 다른 사람들이 생산하는 이산화탄소를 감당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니, 조금만 움직일라치면 남의 발을 밟는 일이 예사로 일어난다. 물론 나는 예의 바른 한국인이니 바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를 연발했고, 상대방도 웬만하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눈치였다. 가끔 눈을 흘기며 째려보는 분도 계셨지만.


물론 나만 남의 발을 밟는 건 아니었다. 내 발이 밟히는 경우가 더 많았다. 상대방도 예의 바른 한국인이니 당연히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라고 말했고, 나도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내 발을 밟고도 사과 한마디 없는 분들도 계셨다.


뭐, 꼭 사과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뭔가 찝찝했다. 아니, 남의 발을 밟았으면 사과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말이다. 그 당연한 반응이 나오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사과하지 않는 사람들의 옆모습을 잠시 째려봐 주곤 했다.


그러다 우연히 (절대 고의가 아니었다) 내 발을 밟고도 사과하지 않은 어떤 "인간"의 발을 조금 뒤에 내가 밟게 되었다. 아니, 왜 하필 내 발을 밟고 내 옆에 서 있느냐는 말이다. 습관처럼, 무의식적으로 나오려는 사과를 내 의지로 막았다. 그 "인간"도 사과를 안 했으니 말이다.


째려볼 테면 째려보라지. 그럼 나도 맞째려보기를 시전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그 "인간"은 내가 발을 밟고 사과를 안 하는데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내게서 사과를 받으리라고는 애초에 기대하지 않은 듯했다.


혼잡한 지하철에서 머릿속이 조금 복잡해졌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남의 발을 밟고 사과를 하니, 나도 내 발을 밟은 사람에게 당연하게 사과를 기대하는 것이로구나. 남이 나처럼 행동하기를 기대한 거로구나.


그러니 내가 예의 바를수록, 다른 사람은 내게 예의 없는 "인간"이 될 확률이 높아진다. 나는 내 기준에 맞춘 남의 예의 바름을 기대하는 거다. 내가 남의 발을 밟고 사과를 하니 내 발을 밟은 그 "인간"의 사과를 기대했다. 그 "인간"은 자신이 남의 발을 밟아도 사과하지 않으니, 자기 발을 밟은 내게도 사과를 기대하지 않는 거다.


어쩌면 그 "인간"은 나보다 예의는 바르지 못할지언정, 남의 예의 없음에 대한 포용성은 나보다 더 큰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말이 좀 안 되는 것 같지만, 어찌 보면 서로 사과하지 않는 문화나 슬롯가 오히려 포용성이 높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발이 부러진 것도 아니고, 새 신발이 망가진 것도 아니다. 발 한 번 밟힌 것쯤 그러려니 하고 서로서로 넘어간다면, 사과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꼭 예의 없는 슬롯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동 지방에 선교를 가셨던 한 선교사분이 겪으셨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남의 집에 초대받아 식사를 하러 갔는데, 손님 중 한 명이 그만 접시를 깨뜨렸단다. 그런데 접시를 깬 손님이 "미안하다"고 하는 게 아니라, "괜찮아, 별거 아니야"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아니, 그건 집주인이 하면 몰라도, 접시를 깬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 않은가. 처음에는 남에게 피해를 끼치고도 별일 아니라고 말하는 문화가 너무 예의 없어 보이더란다.


그런데 지내다 보니 점점 편해지셨다고 한다. 선교사님도 본의 아니게 남에게 피해를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많았단다. 살다 보면 서로 피해를 주는 일을 피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고 하셨다. 처음에는 너무 미안해했지만, 나중에는 "괜찮아, 별거 아니야"로 넘길 수 있음에 마음이 편해지시더란다. 피해 주는 일을 피할 수 없다 보니, 서로 간의 포용성을 키우는 쪽으로 문화가 발달한 것이 아닐까.


사람은 자신의 행동에 맞춰 남의 행동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사소한 일에 사과를 하지도, 받지도 않는 슬롯는 어쩌면 우리가 바라는, 포용성이 큰 슬롯인지도 모른다. 포용성이 큰 슬롯가 나쁜 슬롯는 아니지 않나. 예의를 지킨다는 이유로 나쁜 슬롯를 만들 필요는 없다. 그러니, 지하철에 써 붙이자.


"남의 발을 밟고도 사과하지 말고, 발을 밟혀도 사과를 기대하지 맙시다"


오해 마시라. 모든 비매너를 용서하고 포용하자는 건 아니니. 그저 각박한 시대에 약간의 포용성을 더해보려는 의도다.


집에 와서 아내에게 이 대단한 깨달음을 들려주었다. 사과하지 않는 슬롯가 어쩌면 더 포용적인 슬롯일지도 모른다고. 아내가 말했다.


"그래서 당신도 그 사람 발 밟고 사과를 안 했다고? 그건 그냥 유치한 거 아니야?"


포용의 길은 멀고, 지옥철은 오늘도 만원이겠다.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외로운 몸이 약을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