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득 차 있어도 비어 있는 것들에 대하여
갑자기 창피했던 대학교 시절의 일이 떠올랐다.
핸드폰이 없고, 공중전화로 전화를 해야 했던 시절, 나는 회현역 공중전화 부스에서 줄을 서다가 차례가 되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당시에는 사람이 많은 역에는 공중전화기 앞에 여러 명이 줄을 서 있는 것이 예사였다.
하지만, 친구는 집에 없는지 전화를 받지 않았고,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돌아섰다. 그런데, 내 뒤에 어떤 여학생이 줄을 서 있었고, 그 여학생 바로 뒤에 서 있던 어떤 험악하게 생긴 남자가 여학생의 가방에서 지갑을 훔치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 남자는 더 사납게 내게 인상을 썼고, 나는 못 본 척 내 길을 갔다. 결과를 보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그 여학생은 지갑을 도둑맞았을 것이다. 내가 굴복했기 때문에. 내가 침묵했기 때문에.
그날부터 이건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나의 치부가 되었다. 마치 오래되어 굳은 껌딱지처럼 내 마음에 남아서 시도때도 없이 나를 창피하게 했다.
그 부끄러움을 다시 떠올린 건, 지인이 쓴 어느 글 때문이었다. 그 지인이 어느 연구실의 실장을 맡았을 때의 이야기였다. 그는 함께 일할 사람들에게 연구에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물었고, 여러 의견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영하 80도 이하로 유지되는 초저온 냉동고를 추가로 확보해 달라는 것이었다.
초저온 냉동고는 연구에 반드시 필요한 설비였으나, 기존의 냉동고들은 이미 검은 비닐에 덮인 물건들로 가득 차 틈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새 냉동고를 구매할 예산을 짜기 전에 한 연구원에게 다른 일을 맡겼다. 당시 4대였던 초저온 냉동고에 무엇이 들었는지 먼저 파악하고 각 물품의 담당자에게 필요한 것인지 확인하라고.
그 과정에서 담당자가 필요없다고 한 것들을 버리고, 필요하다고 한 것은 종류별로 정리를 하고서 약 일주일 뒤, 연구원이 그에게 보고했다. "신기해요. 초저온 냉동고가 널널해졌어요." 확인해 보니 문이 겨우 닫히던 냉동고의 절반 이상이 비어 있었다고 한다.
냉동고가 부족했던 게 아니었다. 무엇이 들었는지도 모른 채 계속 쌓기만 한 것이 문제였다. 예전 것을 확인하지 않고 자꾸 새로 넣기만 했고, 새로 산 것은 또 그렇게 차례대로 묻혔다.
내 마음에도 냉동실이 있다. 가끔 보면 거기에도 언제 넣어 두었는지 모를 것들이 칸칸이 쌓여 있다. 오래전에 받은 서운함, 끝내지 못한 걱정, 한참 전에 근거없이 정해두고 한 번도 꺼내 쓰지 않은 신념, 그리고 그 역에서 험한 얼굴에 굴복했던 젊은 날의 창피함 같은 것들.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봉투는 냉장고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문제는 늘 같은 방식으로 시작된다. 무엇이 들었는지 모르니, 자꾸 새것을 들인다. 설명하기도 어렵고 버리기도 그렇고 꺼내기도 그래서, 일단 그냥 깊숙이 밀어 둔 것들이다. 처음 보는 듯이 또 거두어들이고, 이미 지나간 것도 새 봉투에 담아 다시 얼린다.
그렇게 가득 차 있지만, 사실은 맘 먹고 들여다 본다면 텅 비어 있을 것이었다.
연구실은 새로운 초저온 냉동고가 필요하지 않았다. 다만 그 안에 무엇을 가졌는지 몰랐을 뿐이다. 마음도 그렇지 않을까. 왜 내 마음이 이리도 좁은지 힘들어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것은, 무엇을 끌어안고 있는지 들여다보는 일이다. 칸을 열고, 봉투를 풀고, 이건 무엇이고 언제부터 여기 있었는지 묻는 일. 그 목록을 만들고 나면, 버릴 것은 의외로 적고 쓸 것은 의외로 많다는 걸 알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목록에 있는 것들 중에는 지니고 있기보다 누군가와 나눌 때 정리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 여기에 나의 부끄러운 기억 하나를 풀어보기로 했다. 내 나약함을 보이기 싫어서, 누군가에게 공개하기는 창피해서 꽁꽁 숨겨두었던, 그 딱딱해진 기억 한 조각.
이걸로 조금 내 마음에 여지가 생길지는 며칠 더 두고 보아야 하겠고, 이 오래된 비밀을 공개한 것에 대한 후회가 더 크게 몰려들어 이미 여유가 없는 내 마음을 더 좁게 만들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이 길이 최선인 듯 싶다.
그냥 계속 가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검은 봉투를 끌어안고 살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