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움으로 더러움이 씻기는 마법
손이 더러우면 비누로 씻는다. 발이 더러워도 비누로 씻는다. 그러면 손도 깨끗해지고, 발도 깨끗해진다는 건 너무 당연해서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는 일이다. 비누는 내 몸을 깨끗하게 한다.
그런데 비누가 깨끗해서 나를 깨끗하게 하는 걸까.
현미경을 들이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화장실 문을 여닫고, 흙을 퍼 나르고, 온종일 무언가를 만진 내 손이 아니라, 욕실 한쪽에 가만히 놓인 비누 쪽에 균이 더 많다. 비록 모든 균이 사람에게 병을 일으키는 병원균은 아니지만, 적어도 비누는, 일반적으로 자주 씻어야 한다는, 그 더럽다는 사람의 손보다 더한 균의 온상이라는 것을 많은 대학생들이 미생물학 실험 시간에 배운다.
그러니 그 더러운 비누가 과연 나를 깨끗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연구자들이 실험을 했다. 비누에 일부러 사람에게 병을 일으키는 대장균과 녹농균을 발랐는데, 보통 쓰던 비누에서 발견되는 양보다 70배나 많은 균을 묻혀 두었다. 그리고 실험 참가자들에게 그 비누로 평소처럼 손을 씻게 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손을 씻고 난 뒤, 열여섯 명 누구의 손에서도 대장균과 녹농균은 검출되지 않았다.
1965년에도, 1988년에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균에 오염된 비누로 손을 씻어도, 그 균이 손으로 옮겨 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손은 씻기 전보다 더 깨끗해졌다.
이상한 일이다. 균이 가득한 그 더러운 몸으로, 비누는 도리어 내 손의 먼지와 균을 씻어낸다. 자기보다 깨끗한 손을 깨끗하게 만든다. 그리고 나를 씻어 주는 동안, 비누도 제 몸을 함께 씻는다. 거품을 내고 물에 헹궈지는 사이, 비누 표면의 균도 같이 떠내려간다. 씻어 주는 일과 씻기는 일이 동시에 일어난다.
비누가 더럽다고 물로만 씻으려 하면 어떻게 될까. 비누도, 손도, 계속 더러운 것으로 남는다. 서로 닿지 않으면 둘 다 그대로다. 깨끗함은 깨끗한 것에서 오는 게 아니라, 더러워도 서로 맞닿고 부대끼는 그 마찰에서 온다.
사람도 그런 듯 하다. 우리는 자꾸 깨끗한 사람에게서 무언가를 찾으려 한다. 흠 없는 사람, 빈틈 없는 사람, 나보다 나은 사람을 기다린다. 그런 사람이 곁에 있어야 내가 정돈될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나보다 부족해 보이는 사람에게는 다가가지 않고, 모자라 보이는 관계는 피해 버린다.
하지만 나를 닦아 준 건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다.
자기도 휘청거리면서 내 곁에 있어준 사람들, 제 삶도 버거우면서 손을 내밀어 준 사람들. 그들도 균을 잔뜩 지닌 비누였지만, 그 더러움으로도 내 더러움을 모두 닦아냈다. 그리고 나를 닦아주는 동안, 그 사람도 조금은 깨끗해졌을 것이다.
깨끗하지 않은 것끼리라도, 부족한 것끼리라도 좋다. 쳐다보고만 있지 말고, 피하지만 말고, 서로 씻어줄 일이다. 그러면 서로 깨끗해지고, 서로 채워진다.
비누가 그렇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