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맞아"

81년을 버티게 한 맞장구의 힘

by신광훈

내 아내가 나에게 자주 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내가 무슨 말만 하면 틀렸대"


그럴 때 마다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아닌데. 내가 말할 때 마다 틀렸다고 하는 건 당신인데’


하지만 소리내어 말하지는 않는다. 그냥 억울한 감정을 안고 가는 게 낫지, 억울함을 해소한답시고 아내가 나를 틀렸다고 한 사례를 들기 시작하면 오히려 더 피곤하다는 것을 이미 여러 번 학습했다.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아 폰을 들여다보다가 흥미로운 기사를 하나 발견했다. 기네스 세계기록에 등재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 결혼 생활을 유지한 부부' 이야기였다. 영국의 플로렌스와 허버트 피셔 부부는 결혼 81주년을 맞았다. 두 사람의 나이를 합치면 205세.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이 두 사람은 매일 같은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같은 침대에서 잠들었다는 뜻이다.


기자가 물었다.

"비결이 뭔가요?"


부부의 대답은 세 가지였다.

첫째, 건강할 것 - 두 사람은 점심과 저녁에 와인 한 잔씩을 즐겼다고 한다. 둘째, 다툰 채로 잠자리에 들지 않을 것 - 그날의 갈등은 그날 안에 "미안해"로 마무리한다고 했다. 그리고 세 번째, 이 세 번째에 많은 사람들이 무릎을 쳤다고 한다.


"Yes, Dear."


우리말로 하면 "그래, 맞아." 정도가 아닐까. 딱 두 단어. 이 부부는 80년 넘게 이 말을 습관처럼 주고 받았다고 한다.


처음엔 웃겼다. '그래 맞아'가 비결이라니, 너무 단순한 거 아닌가. 그런데 기사를 더 읽다가 존 가트만 박사의 연구를 접하고는 생각이 달라졌다. 워싱턴 대학교의 심리학자 존 가트만은 40년간 3,000쌍 이상의 부부를 관찰하며, 이혼할 부부와 오래갈 부부를 94%의 정확도로 예측해낸 사람이다. 그가 발견한 핵심은 의외로 단순했다. 행복한 부부는 상대가 던지는 작은 신호에 '돌아서는 (turning toward)' 빈도가 높고, 불행한 부부는 그 신호를 무시하거나 '돌아서 버리는 (turning away)' 빈도가 높다는 것이다.


"오늘 하늘 진짜 예쁘다." 라는 말에 "응, 그러네" 하고 고개를 돌려 함께 하늘을 보는 것. 그것이 turning toward다. 반면 "어, 그래?" 하면서 폰을 계속 보는 것은 turning away다. 가트만의 연구에 따르면, 행복한 부부는 상대의 신호에 86%의 비율로 turning toward했다. 결혼 생활의 성패를 가르는 건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라, 이런 미세한 반응의 축적이었다.


그 연구를 읽고나니, "Yes, Dear"가 다르게 들렸다. 그건 단순한 두 마디가 아니었다. 상대가 던지는 모든 작은 신호에 '돌아서는(turning toward)' 습관을 두 단어로 압축한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우리말에도 이미 이 지혜가 담겨 있었다. '맞장구'라는 단어가 그것이다. 이 말은 풍물놀이에서 왔다고 하는데, 두 사람이 마주 서서 장구를 치면서 한쪽이 '덩' 하면 다른 쪽이 '덩덩' 받아주고, 한쪽이 리듬을 바꾸면 다른 쪽도 귀를 기울여 따라가는 것이다. 맞장구는 그냥 박자를 맞추는 게 아니라, 상대의 소리를 온전히 들어야만 가능한 호흡이다.


결국 오래 사랑한다는 건, 거창한 고백도, 깜짝 이벤트도 아니라 매일 상대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선택을 반복한다는 뜻일지 모른다. 상대가 "오늘 피곤해"라고 말했을 때 "왜, 무슨 일 있었어?"라고 묻는 것. "이거 맛있다" 했을 때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한 수저 더 뜨는 것.


이건 부부 사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온라인 게임에서, 친구 사이에서,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 때, 그 사람은 정보를 전달하려는 게 아니라 연결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 시도에 돌아서느냐, 돌아서 버리느냐. 관계의 온도는 거기서 갈린다.


그 기사를 읽은 다음 날 아침, 아내가 출근 준비를 하며 말했다.

"오늘 날씨 좀 춥겠다, 그치?"


나는 폰을 내려놓고 아내를 봤다. 그리고 다시 폰을 들어 날씨를 확인했다. 그다지 추울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야, 안 추울 것 같아…. 라는 말이 반사적으로 나오는 걸 의지력으로 억눌렀다.

"응, 그러네. 코트로 갈아 입을께."

81년까지는 모르겠지만, 하루는 그렇게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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