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네는 작은 오지랖
어떤 건물 앞에서 핸드폰을 들고 서성이는 사람들.
나의 시선이 그들에게 머물렀다.
시선만 머물렀는데 입이 움직여 버렸다.
"입구 못 찾으시는 거예요? 뒤로 돌아가면 입구 나와요."
"아... 네, 감사합니다."
뻘쭘하게 감사의 표시를 하는 사람들.
뭔가 착한 일을 한 것 같았지만, 요새 젊은 친구들은 물어보지 않은 행동에 불편함을 느낀다고 하니, 한편으로는 잘한 건가 싶다.
그래서 지금은 조금, 오지랖이 소심하게 작동하고 있다. 눈치를 보는 오지랖.
이놈의 오지랖은 아들 녀석이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나를 부끄러워한다.
"엄마, 누가 물어보기 전까진 먼저 나서지 마."
"왜?"
"요새는 핸드폰으로 다 확인하는데 굳이 먼저 알려주면, 요새 사람들은 먼저 말 거는 거 불편하게 생각해."
아들의 당부를 듣고, 사실 예전처럼 선뜻 나서지는 않는다.
아무튼,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상대 쪽에서 뭔가 요청이나 도움을 청하지 않으면 먼저 나서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극외향인도 아닌데 뭔가 또 입과 시선이 근질거린다.
얼마 전, 카페에서 너무나 예쁜 기계식 키보드로 작업하는 여성분이 옆에 앉아 있었다.
또 궁금해져서 자꾸 시선이 갔다.
"키보드가 너무 앤티크 하네요. 마치 옛날 타자기 같아요."
"아, 이거요? 예쁘죠? 저도 옛날 타자기 느낌이라 한눈에 마음에 들어서 구입했어요."
그분은 흔쾌히 정보를 알려 주었고, 우리는 잠시 대화를 나눴다. 취향이 비슷해서 그런가, 이런저런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렇게 한참 스몰토크를 나누는데, 옆에 돌 정도 되는 아기와 엄마가 또 시선에 들어왔다.
욤욤거리며 간식을 먹는 아이가 귀여웠다. 나만 그 아이를 쳐다본 게 아니었다. 나와 스몰토크를 나누던 여성분도 같이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물어봤다.
"몇 개월이에요?"
"11개월이에요."
"아가가 순딩이네요."
이렇게 시작된 또 다른 스몰토크.
우리 세 사람은 카페에서 처음 봤는데, 같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이 엄마는 30대 후반에 아이를 낳고 양육 중인데, 아이가 너무 예쁘지만 체력이 안 된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그때 키보드의 주인이, 자기도 아이를 늦게 낳아 키워봐서 새댁의 마음이 이해된다고 공감을 표해 주었다.
"나는 아이 낳고 일을 해서, 아이를 너무 일찍 어린이집에 보냈지 뭐예요. 지금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인데, 더 늦기 전에 휴직하고 아이랑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어느새 키보드 이야기에서 아이의 양육 이야기로 주제가 옮겨갔다.
그렇게 그날, 서로 처음 본 사람들이 양육의 어려움과 고민을 공유했다.
나 역시 자녀 양육 선배(?)로서 경험과 양육 정보를 나눴다.
한 30분 정도의 스몰토크.
아기 엄마는 덕분에 도움이 되었다며, 한결 편안한 얼굴로 아이를 안고 자리를 떴다.
우리의 만남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우리는 각자 섬처럼 산다. 한 카페에 앉아 있어도 이어폰을 끼고, 핸드폰을 보며, 서로의 바다를 건너가지 않는다.
그날 우리 세 사람은 30분짜리 다리를 놓았다 걷었다.
키보드에서 시작해 아이의 낮잠까지 건너간, 짧고 튼튼한 다리였다.
떠나던 아기 엄마의 편안해진 얼굴이 자꾸 생각난다.
잘한 건가 싶은 마음이 또 불쑥 고개를 들었다.
뭐, 결과가 즐거웠으니 그걸로 만족.
아들아, 미안하다.
엄마는 아무래도, 다리 놓는 일을 그만두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