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정권(參政權)
6월 3일 선거일.
사전투표를 하고 싶었으나 시간이 여의치 않아 당일 투표를 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투표소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 '다들 사전투표를 했구나.' 그렇게 짐작하며 홀가분한 마음으로 신나게 바다도 보고 맛난 것도 먹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뉴스를 보다 눈을 의심했다. 투표용지가 부족했다는 소식이었다.
'어? 투표용지가 왜 부족하지?'
2026년 대한민국에서 있을 수 있는 이야기인가. 도대체 왜?
참정권(參政權)이란 무엇인가.
국민이 국가의 정치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권리다. 선거권, 피선거권, 국민투표권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는 단순히 '투표장에 갈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선언을 현실로 만드는 유일한 수단이다. 투표는 그 수단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다.
헌법 제24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라고 명시한다. 이 선거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의무는 국가, 구체적으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있다. 투표용지를 충분히 준비하는 일은 선관위의 가장 기초적인 바카라무다.
그 기초가 무너졌다.
단순한 기우나 과장이 아니다. 이번 선거 당일, 실제 투표 현장에서 일어난 참담한 현실이다.
송파구의 경우, 사전투표율이 높았다는 이유로 본투표 당일 유권자의 50% 분량만 투표용지를 준비했다고 한다. 낮부터 투표용지 부족에 대한 우려가 현장에서 전달됐음에도 신속한 조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에서는 투표 마감 시각인 오후 6시를 넘겨 밤 10시까지 투표가 이어졌고, 불안감과 불만이 뒤섞인 현장에서는 선관위 직원과 유권자, 경찰 간의 충돌까지 벌어졌다.
만약 기다림에 지쳐 발길을 돌린 시민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그것은 단순한 '행정 실수'가 아니다. 명백한 '참정권 박탈'이다.
투표용지 한 장의 무게를 생각해 보라.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거리로 나섰는가. 4·19, 5·18, 6·10.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는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이들의 피와 구금과 죽음으로 쟁취한 것이었다. 그 모든 싸움의 끝에서 국민의 손에 쥐어진 것이 바로 이 '한 표'였다.
그런데 그 소중한 한 표를, 국가가 앞장서서 막아 세운 꼴이 되었다.
얼마 전, 모 커피 프랜차이즈의 5·18 관련 이슈에 온 여론이 들끓었던 적이 있다. 커피 컵 문구 하나에 5·18의 정신이 훼손되었다며 많은 이들이 분노했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5·18의 핵심 정신은 민주주의다. 민주주의의 근간은 주권재민(主權在民)이다. 주권재민의 가장 직접적인 표현이 선거권, 즉 참정권이다. 그 참정권이 투표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박탈되었다. 커피 컵보다 훨씬 더 본질적인 곳에서, 훨씬 더 직접적인 방식으로 말이다.
커피 컵 하나에 담긴 역사적 무게를 알아채던 그 예리한 시민 의식과 뜨거운 분노가, 왜 이 더 본질적이고 거대한 결함 앞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가. 왜 우리 슬롯는 이토록 엄중한 참정권 박탈 사태 앞에 이리도 고요한가. 미디어와 여론은 왜 이 거대한 민주주의의 빈틈을 정면으로 응시하지 않는가.
시민단체들은 중앙선관위원장과 사무총장 등을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하며 "선거관리 바카라임자로서 의무를 현저히 소홀히 했다"라고 비판했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선거소청이 청구되고, 훗날 선거무효 소송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법적 절차는 어떻게든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법이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있다. 현장의 혼란 속에서 이미 발길을 돌려버린 그 시민의 잃어버린 한 표는, 세상의 어떤 판결로도 되돌릴 수 없다.
이번 사태는 좌와 우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 어디냐를 따질 일도 아니다. 국민이 스스로 주권자임을 확인하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를, 국가 시스템이 가로막은 중대한 사건이다. 그것이 의도된 고의였든 안일한 태만이었든 결과는 같다. 시민의 참정권이 박탈되었다는 사실이다.
민주주의는 투표함의 뚜껑이 닫히고 당선자가 확정된다고 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단 한 명의 시민도 소외되지 않고 온전히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선거를 만드는 것. 그것이 국가의 의무이자 민주주의가 져야 할 무거운 바카라임이다.
제발, 제대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