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갱년기, 방전이 아니라 '절전모드'

나를 제대로 이해하기

by김성수

핸드폰을 2년쯤 쓰다 보면 배터리가 눈에 띄게 빨리 닳기 시작한다. 분명 어제 자정까지 꽉 채워 완충해 두었는데, 출근길 지하철에서 뉴스 몇 개 읽다 보면 어느새 숫자의 앞자리가 바뀌어 있다. 사용 연수가 길어질수록 소모 속도에는 가속이 붙고, 결국 우리는 무거워진 본체를 대신할 새 기기를 찾게 된다. 그것이 기계의 숙명이다.

요즘 나는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보며, 사용 기한이 다 되어가는 오래된 배터리 같다는 생각을 한다. 마음은 최신형 핸드폰처럼 생생하게 돌아가는데, 몸이라는 하드웨어가 도무지 받쳐주질 않는다. 인간에게도 정해진 수명이 있다는 사실이, '영원한 충전'이란 없다는 당연한 진리가 이제야 피부로 느껴진다. 이른바 갱년기라는 이름의 방전 주의보가 내 삶에도 찾아온 것이다.


어린 시절, 엄마가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들이 환청처럼 들려온다. "에고, 그거 있잖아, 그거 이름이 뭐더라." "너도 내 나이 돼봐라, 무릎이 예전 같지 않다." 그때는 차마 이해하지 못했던 엄마의 탄식들이 어느덧 내 입술 끝에 매달려 있다. 단어는 입안에서만 맴돌다 사라지고, 작년의 나보다 올해의 내 배터리 수명이 훨씬 짧아진 것 같아 못내 서글프다. 몸도, 마음도 예전보다 자주 앓는다.


인생 100년 중 이제 막 오십 줄을 넘겼다. 누군가는 '아직 반이나 남았다'며 희망을 말하지만, 체감상 '반밖에 안 남았구나' 하는 아쉬움이 앞선다. 푸석해진 머리카락, 자꾸만 부러지는 손톱, 조금만 무리해도 자석에 이끌리듯 눕고만 싶은 몸을 대면할 때면 내가 참 짠해진다.


주변의 반응도 무심하기는 마찬가지다. 아들은 "엄마, 왜 이렇게 총명함이 없어졌어?"라며 짓궂은 농담을 던지고, 남편은 눈치 없이 늘어난 뱃살을 타박한다. 서운함이 욱하고 올라오다가도, 이내 생각한다. 저들도 결국 이 노후화된 기계에 여전히 의지하고 있는 '사용자'들임을.


친구들을 만나면 상황은 더 웃퍼진다. 누가 더 관절이 아픈지, 어느 병원이 주사를 잘 놓는지를 두고 '질병 자랑 대회'가 열린다. 대중교통을 타면 우아함을 유지하려 애쓰면서도, 눈은 이미 빈자리를 향해 레이더를 맹렬히 돌리는 나를 발견하며 헛웃음을 짓는다.


하지만 배터리가 닳아간다는 것이 꼭 슬픈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최근에 깨달았다. 배터리 잔량이 15% 정도 남았을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가장 중요한 일을 처리하기 시작한다. 평소라면 의미 없이 띄워두었을 수많은 창을 닫고, 꼭 필요한 연락처를 찾거나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에너지가 한정되어 있다는 자각이 우리를 본질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다.


나의 갱년기도 그렇다. 이제 나는 남은 에너지를 쓸데없는 곳에 낭비하지 않기로 했다. 남의 시선에 일일이 반응하며 소모되던 감정의 창을 닫고, 나를 진심으로 아껴주는 사람들과의 대화에 더 많은 용량을 할당한다. 억지로 젊음을 흉내 내기보다는, 조금 천천히 걷더라도 내 발밑에 핀 작은 꽃들을 눈에 담는 시간을 늘린다. 온라인 게임에서도 '꼰대 상사'가 되지 않기 위해 말을 아끼는 대신, 후배들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고개를 끄덕여주는 여유를 배터리 속에 채워 넣는다.


비록 배터리 성능 최대치는 떨어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남은 20%의 전력으로 비추는 오늘의 풍경은 이전보다 훨씬 따스하고 선명하다. 손톱이 좀 부러지고 무릎이 삐걱대면 어떠랴. 나는 여전히 작동 중이고, 내 곁에는 내가 비춰야 할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 오늘도 나는 나 자신을 다독이며 조용히 하루를 마무리한다. 내일 아침, 다시 힘겹게나마 채워질 그 한 칸의 에너지를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