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는 말이야

오늘도 꼰대 소리 안 듣고 무사히

by김성수

요즘 친구들은 참 영리하다."나 때는 말이야"라는 구차한 서두를 꺼내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라떼는 말이야'라는 신조어 방패를 들고 기성세대들을 '꼰대'라는 프레임에 가둘 준비를 마쳤으니까. 커피는 좋아하지만, 내 입에서 나가는 라떼는 극도로 경계해야 하는 시대에 나는 살고 있다.


젊은 시절의 나는 참 순진했다. 나이 들면 백발이 성성해도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는, 영화 속 인턴 같은 '멋진 시니어'가 될 줄 알았다. 후배들이 고민을 들고 찾아오면 인자하게 어깨를 다독여주는, 그런 우아한 선배 말이다.


현실은? 인자함은커녕 인내심 테스트의 연속이다.

MZ 후배들과 회의를 할 때면 가끔 내가 투명 인간이 된 게 아닐까 착각이 든다. "이 문제, 누가 맡아볼래?"라고 묻는 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 모니터 속으로 빨려 들어갈 기세다. 정수리만 보이는 그들 사이에서 침묵은 금이 아니라 '독'이 되어 흐른다.


나 때는? 말해 뭐해. 정답이 아니더라도 일단 손부터 들고 보는 '나대기 끝판왕'들이 넘쳐났는데. 그 시절의 패기를 읊어주고 싶은 욕망이 목구멍까지 차오르지만,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문다. 여기서 "나 때는..."라고 입을 떼는 순간, 나는 그들의 점심시간 안줏거리가 될 테니까.


소통 방식은 또 어떤가. 급한 업무로 전화를 하면 잘 받지 않는다. 카톡 답장은 빛보다 빠른데, 수화기 너머 목소리를 듣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전화 좀 받아!"라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나도 조용히 자판을 두드린다. '바쁘니? 확인하면 톡 줘...^^' (이 망할 놈의 물결과 웃음 이모티콘은 내 마지막 자존심이다.)


그렇게 치이고 치이다 결국 내가 찾아낸 건 '라떼'를 버리고 '물음표'를 잡는 것이었다. "이거 해!" 대신 "이거 어떻게 생각해?" "나 때는 말이야!" 대신 "나는 요런 경험이 있는데, 네 생각은 어때?“

화법을 바꾸자 신기하게도 그들의 정수리 대신 눈동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알고 보면 그 애들도 그냥 눈치 보고 있었던 거다. 나 때랑 방식이 다를 뿐이지.


오늘도 퇴근길,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뜨거운 '라떼'를 몇 사발이나 삼켰는지 모르겠다. 속은 좀 쓰리지만, 그래도 꼰대 소리 안 듣고 무사히 하루를 넘겼으니 됐다.


거울 속의 나는 우아한 선배 대신, '참을 인' 자를 새기며 웃고 있는 조금 안쓰러운 중년이지만... 뭐,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싸움 아닌가? 조만간 진짜 라떼나 한 잔 사 마시며 속을 달래야겠다. 물론, 혼자 마셔야지. 후배들 데려가면 또 기습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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