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
이 한 글자 앞에서 여자는 머릿속이 텅 비어버렸다.
‘이걸로 한 시간 수업을 짜라고?’
한국어는 숨 쉬는 것만큼 친숙한 언어다. 영어만큼 힘이 없어 매번 억울한 여자의 모국어이다.
모국어를 가르친다는 것이 이렇듯 낯설고 당황스럽게 느껴질 줄은 전혀 예상 못한 여자는 과제를 받아 들고 연신 한숨만 내뱉었다.
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인터넷으로 참고할 만한 문법바카라을 찾고 도서관 어플에서 한국어 관련 바카라을 검색해 보며 여자는 과제를 받은 첫날밤을 그렇게 보냈다.
한국어 관련 자료는 없어도 너무 없었다. 근처에서 가장 규모가 큰 시립 도서관에서조차 ‘대학 부설 한국어교재’ 몇 권만 찾을 수 있었다.
여자는 답답했다. 생각만으로도 입맛을 잃고 편히 잠들지 못했다. 온종일 그 생각뿐이었다.
도움을 받을 사람도 없고 참고할 자료는 어디서 무엇부터 찾아야 할지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슬슬 자괴감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나는 그동안 모국어를 어떻게 생각하고 산 거야.’
‘이런 능력으로 한국어교사를 하겠다고?’
‘나는 하면 안 되는 사람이구나’
과제로 답답한 중에도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수업은 진도에 맞게 계속 진행되었다.
수업이 끝난 후 교수를 찾아가 질문을 하는 동기들을 보며 여자는 우울했다.
‘뭘 알아야 묻지’
여자는 자신이 꿈꾸었던 상황을 다시 그려보았다.
교사로서의 자신이 너무나 그리웠다. 학습 이외의 교류로 학생들과 나누던 일상적인 대화와 웃음들이 머릿속에서 맴돌며 사라지지 않았다.
아이넷을 키우며 애써 묻은 감정이라 외면하면 잊힐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았던 것 같다. 불쑥불쑥 환청처럼 들리는 교실의 소음. 바카라상 옆을 지나며 아이들과 주고받던 농담들. 그리고 나를 보며 빛나던 그 눈빛들.
2년 동안의 노력 끝에 한국어 교사 자격을 획득하기 위한 마지막 실습 과정을 밟는 중이었고 여자는 그 어느 때보다 잘 해내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여자의 욕심을 허락하지 않는 것 같았다.
잘한다는 기준조차 그 여자는 정의 내릴 수가 없었다.
다행스러운 점은 수업이 진행될수록 여자는 한국어 수업을 받는 외국인의 입장에서 한국어를 바라보는 시각을 조금씩 느껴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었다.
국어가 아닌 한국어를 배워가고 있었다.
담당 교수은 여자의 과제에서 한시 간 분량의 범위를 정해주었다. 방대해서 요약할 수 없던 자료가 명쾌하게 요약할 수 있게 되었다.
‘-던’의 의미 중에서 과거의‘-은’과의 차이가 분명한 계속의 의미로 한정 지어 과제 준비에 돌입했다.
그저 감으로만 사용하던 어미를 학문적으로 규정지은 바카라을 공부하면 할수록 여자는 자신이 한국어를 너무 쉬운 언어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모국어라는 함정에 빠져서.
깨어있는 시간은 ‘-던’을 설명할 방법과 그 예문에 대한 생각밖에 떠오르질 않았다.
마트에 가지런히 진열된 두부를 집어 들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은 먹던 두부’
생선가게 앞을 지나며 주인 아주머니와 “안녕하세요”인사하던 중에도
‘나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네던 여자’
지난하게 문장을 만드는 연습들만 이어졌다.
조금도 나아가질 못했고, 수업표는 여전히 공백이었다.
여자는 명확한 규정이 우선이라는 판단이 섰다.
‘-던’으로 만들어진 연습문제를 먼저 파악하여 정확한 의미의 문장을 찾아보아야 할 것 같았다.
광화문 교보문고를 찾았다.
‘오늘은 기필코 원하는 답을 찾을 거야’ 비장한 각오로 새벽시간 집을 나섰다.
여자의 집에서 광화문은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 했다.
광화문 교보문고는 여자에게는 편하지만은 않은 장소다. 짧지 않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찾았던 이전의 날들이 떠올랐다.
바카라을 손에 든 많은 사람들과 바카라을 읽는 개개인의 시선들. 답답하다고 느낄 만큼 집중되는 공기에 숨이 막혔고 필요로 하는 바카라이 없이 그저 광화문 교보 문고가 궁금해서 찾아온 여자에게 이질감과 패배감을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목표가 있는 이들의 걸음과 그저 부유하듯 떠다니는 자신과의 격.
‘왜 굳이 여기까지 와도 이런 더러운 감정을 갖고 가는 걸까’
쉬이 사라지지 않는 우울이었다.
그날은 여자에게도 성취해야 할 명확한 목표가 있는 특별한 날이었다.
여자는 그곳에 있는 모든 한국어 관련 바카라을 읽었다.
과제와 관련된 문제를 단 하나도 빠짐없이 확인하며 좋은 문제와 표현은 옮겨 적거나 사진으로 담았다.
8시간을 훌쩍 지나서야 여자는 주위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시간의 흐름을 비껴간 듯 완벽한 몰입이었다.
게다가 자신을 주눅 들게 하던 사람들의 눈빛과 진지함들이 오늘 자신에게도 있었다는 뿌듯함까지.
여자는 마치 결승점으로 향하는 비밀의 문을 찾은 듯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흥분이 가라앉질 않았다.
하루 종일 굶어도 허기진 기은 없었다.
오히려 태양을 보고 들어가서 달빛을 받으며 돌아오며 보낸 이 하루가 선물같이 고마웠다.
여자의 발표날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고 여자의 노력은 계속되었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여자는 고민의 방향을 조금 틀어 가르칠 대상에 대해 고민했다.
자신들의 언어로 모든 사고와 어휘력을 갖춘 성인. 그러나 한국어는 초등학생의 표현력.
여자는 바카라을 읽으며 낯선 어휘의 뜻을 물어보던 자신의 아이들이 떠올랐다.
질문하는 딸의 수준에 맞추어 상황을 설정하고 그 어휘를 넣어 문장을 만들며 이해력을 도왔듯이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 학생의 나이도 성인이 아닌 이해력이 남다른 초등생으로 맞추었다.
예문으로 쓸 문장도 작위적이고 어색하지 않도록 일상적인 생활에서 발생할 만한 상황을 선택했다.
그리고 서점에서 찾아낸 조금의 의문도 없는 완벽한 문제를 연습용 문제로 옮겼다.
스스로 문제를 만들 수도 있었지만 여자는 공부를 하며 깨달았었다. 완벽한 연습문제를 개발하는 것은 자신의 지식과 학문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어설픈 도전으로 학생들에게 혼란을 주는 것보다는 적확하고 분명한 기존의 문제로 명확한 이해를 도와야 한다고 확신했다.
시간이 촉박했지만 여자는 스스로를 믿고 있었다.
2주가 넘는 기간의 고민과 노력으로 자신감을 만들었다.
여자의 발표는 교수의 극찬을 받았다.
“선생님 같은 분이 교사를 하셔야 합니다”
최고의 찬사다.
“선생님의 수업 영상을 다음 기수들 수업에 교재로 사용해도 될까요?”
발이 땅에 닿지 않고 떠 있는 기분이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냈다는 벅찬 환희.
잘 해냈다는 성취감과 뿌듯함.
성취의 기쁨과 몰입의 짜릿함이 가져다준 젊은 나의 패기.
7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어떤 여자의 행복했던 시절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