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침상 옆의 커튼을 열어젖히는 소리가 들렸다. 간호사가 환자 이름을 확인하는데 남자 이름이었다.
“네. 맞아요” 대답은 할머니 목소리다. 남편을 따라오셨나 보다. 아니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모시고 왔겠구나.
할머니는 할아버지 침상옆에 서서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오늘은 어깨도 아프다고 꼭 말해요. 의사 선생님께 어깨도 침을 놔 달라고 꼭이요” 어깨도 아팠는데 이전 방문 때 언급을 안 해서 치료를 받지 못했었나 보다. 못 미더워서 따라오셨구먼. 이번엔 침 맞을 부위까지 다시 짚어주며 다짐을 받는다.
침을 맞기 전 하는 물리치료에도 관여한다.
“간호사님. 어제 다리 했으니까 오늘은 어깨에 물리치료 해 주세요. 어때요? 자세가 불편하지 않아요?”
할머니는 간호사가 온 찜질기를 준비해 오기를 기다리는 그 잠깐 동안에도 연신 누워 있는 할아버지를 살폈다.
엎드린 지금 자세로 십여 분동 안 지속해도 괜찮을지 물어보더니 어제 침을 맞은 다리는 오늘 물리치료 하지 않아도 될지 재차 확인했다.
할아버지는 어깨와 다리 두 군데 다 맞으면 좋겠다고 했고 할머니는 간호사를 붙잡고 두 군데 다 치료받으려면 어떤 자세가 좋을지 의논했다.
나는 어깨와 다리의 따뜻한 온기에 스르르 잠에 빠지고 있었다. 그러다 끙끙 자세를 바로 잡으려는 할아버지의 신음소리에 정신이 들었고 할머니의 쉼 없는 요구와 물음에 남은 졸음조차 밀려나며 사그라들었다.
왜 나이가 들면 저렇듯 할머니들이 할아버지들의 보호자가 되어야 할까.
자신은 수면제 때문에 낮에도 가수면상태에 머물면서도 남편의 간식거리와 “고기가 먹고 싶다”. “떡을 좀 녹여라” , “과일 좀 깎아라” 잦은 요구에 시달렸던 시어머니가 떠올랐다.
파킨슨병이 와서 걸음이 힘들어지고 행동이 느려지기 시작하면서 아버지의 보호자가 되기 시작했던 60대 후반의 엄마도 생각났다.
시어머니는 자신의 신경성 병은 오롯이 시아버지 때문이라고 원망하셨었다.
90이 가까운 나이에도 본인 뜻대로 안 되면 떨어져 죽겠다고 겁을 주며 자신의 아내를 길들이려고 했던 남편이었다.
내가 물었었다.
“왜 그런 협박을 하세요? 정말 떨어져 죽고 싶으신 거예요? 제가 아는 아버님은 겁쟁이라 그런 용기는 없으실 것 같은데요”
힘주어 뜬 눈은 노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잠시 뒤 숨을 내쉬더니 힘을 풀고 답했었다.
“그럴 마음 없다. 그냥 너희 시어머니 겁주려고 했지. 나한테 반항하지 마라고”
거짓말은 내게 소용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화를 내는 것도 방법이 아니라 여겼을 것이고.
의외로 시아버지는 솔직하게 털어놓았었다.
“앞으로 그런 협박하지 마세요. 다시 그런 협박하시면 저는 진짜로 죽고 싶다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리고 제집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니 다른 집으로 가셔야 할 겁니다.”
“제가 빈말 안 하는 사람인 건 아시죠? 지켜주세요”
물론 그 이후도 자잘한 협박은 이어졌었다. 내가 집에 없을 때만. 매번 시어머니 입단속도 잊지 않았단다.
애증의 관계 같다고 나는 이해 못 하겠다고 토로했을 때 시어머니가 한숨을 내쉬며 한마디 했다.
“‘애’는 없었다”
친정 엄마는 아버지가 쓰러지기 이전부터 아버지를 못 미더워했다. 맡은 일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처리하지 못한다고 정년을 끝낸 훨씬 후일까지도 젊은 시절 온라인 게임에서의 태도까지 들추며 못마땅하다는 질타를 뱉었었다. 그런 차에 강제로 보호자가 되어야만 했으니 도움을 주며 더 큰 생색을 내셨다.
궁금하다. 지금까지도.
시어머니와 친정 엄마의 그 긴 세월의 보살핌은 과연 어떤 심정이었을까.
한의원에서 본 그 부부도 비슷한 마음일까.
누워서 찜질을 하던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자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딸에게 전송하라고 부탁했다.
딸이 걱정하고 있을 것이니 그렇게 하라고.
할머니가 답했다.
“지 아버지 뇌경색으로 쓰러져 속상한 딸한테 그런 사진 보내서 뭐해요”
“사진 보면 더 속상할 건데”
급작스레 뇌경색이 왔고, 그래서 걸음이 힘들어졌고, 결국 할머니가 내내 동행하고 있었구나.
30여분 치료받는 동안 커튼 뒤 부부의 대화를 들으며 행복과는 멀어지며 답답하고 우울했던 엄마의 표정이 생각나 명치가 짓눌리며 숨이 잘 안 쉬어졌다. 자신의 현재가 불쌍해서 하루하루가 벌 같다며 소파에 앉아 한숨 쉬던 시어머니의 모습이 사진처럼 선명하게 기억나서 짜증이 났다.
그 노부부는 다를까?
내가 나의 엄마와 시어머니를 오해하고 있는 걸까?
바카라임감 만으로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고단한 여정이었다.
내가 아직은 세상을 덜 살아서 이해를 못 하는 것이면 좋겠다.
한 10년쯤 뒤 혜안을 얻어 문리 또한 훤해지길 욕심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