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만이 좋은 건 아닌데...

by서화

지금은 사라진 ‘비둘기호’ 기차는 갖추어진 좌석보다 바닥에 퍼질러 앉을 공간이 훨씬 많은 이해 안 가는 교통수단이다. 그 의자라는 것도 순방향 역방향이라는 것이 아예 없다. 앉아보면 안다. 마주 보고 있을 테니.

좌석이 별로 없는데 그럼 왜 타지 싶을 테지만 그건 이 기차의 용도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이 기차는 안 서는 곳이 없이 다 선다.


역이라고 이름 붙여진 곳은 무조건 선다. 그러니 오일장이 열리는 시끌벅적한 읍내부터 타고 내리는 사람이 있으려나 싶은 휑한 역조차 선다. 쾌적하고 한적한 그리고 잔잔한 평온을 기대하면 망한다. 자신보다 두 배는 무거워 보이는 짐을 이고 지며 올라탄 할머니의 보따리에서 고개만 내밀고 얌전히 있던 닭이 갑자기 탈출을 시도하기도 했고, 장에 가서 팔려고 챙겨 온 깨와 콩을 기차 안에서 쿨하게 거래하기도 했다.






우리들은 또 어땠나. 대학생이었던 우리들은 이 기차를 사랑했다. 싼 가격에 부담 없고,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발산할 수 있는 열기와 흥겨움에 거리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행사를 위해 바리바리 싸 온 술과 안주거리. 그 모든 짐들을 구석에 몰아두고 열차칸 바닥에 둘러앉았다. 공공칠빵! 삼육구. 인디언밥. 기억도 가물가물한 게임들을 눈치 안 보고 놀 수 있었다. 기타 하나에 그곳이 노래방이 되어버렸지만 누구도 젊은 우리의 들뜸을 눈살 찌푸리고 보는 이가 없이 같이 즐겼었다. 엄마랑 나란히 앉아 있는 꼬마에게 준비해 온 새우깡을 나누어 주고, 우리 노래를 따라 부르시던 어르신의 최애곡을 다 같이 떼창 하기도 했었다. 대학시절 우리가 계획했던 ‘야유회’와 ‘단합대회’의 이동은 비둘기호가 있어 긴 시간 동안 즐겁고 유쾌했다.


며칠 전 유튜브에서 어느 외국인의 한국체험기란 쇼츠를 무심코 넘기다가 나는 박장대소했다. 그냥 미소가 아니라 아주 깔깔깔 웃었다. 정말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내가 어떤 기차를 타고 다녔었는지. 우리가 어떻게 젊음을 티 내고 다녔었는지.


그 외국인은 서울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부산으로 가는 기차에 올랐고, 속삭이는 말로 영상을 찍으며 정말 믿을 수 없는 경험이라고 무음으로 입만 크게 벌려 놀라움을 표현했다. 단 한 번도 큰소리가 없었다는 것이 경이롭단다. 자신처럼 활달한 성격의 사람들에게는 고문이었다는 자막을 보는 순간 내 웃음은 터졌다.






대학 동아리 친구들은 일 년에 두 번 있는 정기 모임을 위해 대구에서 약속장소까지 자주 기차를 이용한다. 서울에서 출발하는 친구들은 매번 승용차를 준비해서 동행하는 편이지만 대구 친구들은 모처럼 대화의 시간을 갖기 위해 야단스럽게 공들여 나란한 기차좌석을 예매하기 위해 노력하곤 했다. 나는 그런 친구들이 진심 부러웠다.

“좋겠다. 기차 타고 다 같이 오면 옛날 생각도 나고. 먹을 것도 나눠먹고”


그런데 그게 내가 상상하는 여행은 아니었던 것 같다. 게임하고 벌칙을 행하고 먹고 자고 그리고 웃으며 대화했던 예전은 추억일 뿐이라고 말하며 한 친구가 나를 구석으로 끌고 가더니 한숨부터 쉬었다.

“야 누가 시끄럽다고 조용히 시켜달라고 연락했대. 그래서 역무원이 와서 조용히 해달라고 하더라”

“진짜? 어느 정도로 시끄러웠는데?”

“남용이랑 병길이가 오랜만에 만나서 수다가 장난 아니었거든”

“그래서?”

“걔들이 조용하다가 다시 목소리가 커지니까 또 접수가 되었다고 아예 역무원이 우리 옆에서 한참을 서 있었어”


나와 친구는 웃었다. 말하는 친구도 듣는 나도 그려지는 상황이 얼마나 민망했을지 예상되었고 같이 있던 네 명의 여사친들이 아닌 둘 뿐인 남사친들이 주범이었다는 그 사실에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웃는 우리를 향해 당사자 중 한 명이 걸어오며 따지듯 변명했다.

“야, 그렇게 크게 떠들지도 않았는데 진짜 아무 말도 못 하겠더라고”

“이제는 기차 타는 것보다 운전해서 오는 게 더 좋겠어”






우리들의 기차는 그랬다. 떠난 여행의 설렘을 고스란히 드러내도 괜찮았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데려와 빵도 주고 같이 놀아도 주면서 그 공간을 공유했었다.

맞아! 예전같이 않지.


이런 영상을 자주 보게 된다. 예의 바르고 질서 정연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아주 큰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는.

물론 좀 떠든다고 경찰이 잡아가지는 않는다. 법이 아닌 도덕의 문제니까.


나도 기차 안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미리 준비하는 사람이다. 바카라을 갖고 가거나, 노트북을 챙긴다. 하지만 그것은 혼자서 이동할 경우에 해당한다. 친구가 옆에 있는데, 딸 아들과 같이 움직이는데 두어 시간을 눈감고 각자 핸드폰 보면서 이어폰으로 음악 듣는 것 만이 멋지고 예의 바른 대한민국을 만드는 유일하고 마땅한 배려일지 씁쓸하다.


기차가 너무 고급만 있어서 그런 걸까?

속도가 가치 기준이 되고 그 속도에 상응한 가격표까지.

좀 느리게 가도 되는데.

여러 곳을 들러도 괜찮은데.

최선이 아니고 맨 마지막 선택지여도 좋은데.


새벽 첫 버스에서 일터로 가는 고단한 얼굴의 사람들을 보며 자신의 하루를 응원하게 된다는 글처럼 그런 기차도 있으면 좋겠다.

답답하고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일부러 찾아서 타고 싶은 그런 기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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