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마을버스 안이었다.
내가 타는 마을버스는 유독 다른 번호의 버스들에 비해 크기가 작고 노후된 것 같다. 이용인구도 많지 않지만 꼬불꼬불 좁은 길에는 큰 버스는 무리일 수도 있겠다 싶어 체념 같은 이해를 하기도 한다. 경사가 심한 골목에서 숨차하는 버스에 앉아있으면 나라도 숨을 참아 무게를 좀 덜어야 하는 것 아닐까 긴장하기도 했었다. 길 한가운데서 멈춰서는 것이 피곤한 하루의 마무리로 가장 최악이니까.
정류장 간의 거리가 유독 짧은 것이 마을버스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걸음이 힘든 이에게는 정류장이 많은 것이 유리하겠다 싶다가도 부릉부릉 몇 번 하다가 다시 서고 또 힘들게 출발했다가 금세 서버리니 쾌적한 승차감을 위해서는 최신 신형버스로 교체하는 방법밖에 없을 듯 보였다.
마을버스는 유독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타는 정류장이 있다. 지하철 역 근처의 정류장에서 퇴근시간이면 승차하는 사람이 많고, 대중교통 요지에서 벗어난 아파트 대 단지 정류장에서는 대다수의 인원이 하차한다. 버스 안이 꽉 찼다는 답답함이 있다가도 십여 명 정도가 하차하고 나면 마을버스는 홀연 텅 빈 듯한 기분이 든다. 밀물처럼 찼다가 썰물처럼 비어버리는 기분 때문에 마을버스는 더 작게 느껴진다.
그리고 마을버스는 앉을 수 있는 좌석 자체가 많지 않다. 더군다나 운전석 바로 뒷자리나 그 옆자리처럼 앉았다 일어서기도 불편하고 하차벨도 근처에 없어 평소에 비어있더라도 선뜻 앉게 되지 않는 자리까지 제하면 편하게 앉을자리는 체 열 자리도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지켜본 결과로는 운전석 뒤의 불편한 두 자리에는 주로 젊은 학생들이나 청년들이 앉는다. 쪼그리고 앉는 자세가 되는 것도 불편하고, 하자벨을 누르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뒷사람에 부탁하거나 미리 일어나서 움직여야만 하니 나이 든 사람들은 좌석이 비어도 피하게 된다.
그날도 교복 입은 여학생이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버스 운전기사는 내가 타고난 후 이미 여러 번의 짜증을 숨기지 않고 뱉고 있었다. 대단지 아파트 사이 도로를 지나는 중이었고 왕복 2차선 도로에서 자꾸만 좌회전하는 승용차가 앞을 막고 있었다. 원래 그런 길이었다. 좌회전을 기다리는 승용차는 맞은편에서 오는 차들이 지나가길 기다릴 수밖에 없는 길었다.
“아이씨. 재수 없게 왜 빨리 안 들어가”
‘빵빵’ 클락션을 울린다고 막힌 길이 갑자기 뚫릴 리가 없다. 버스에 날개가 달려 하늘로 날아갈 수는 더더욱 불가능했다. 그런데도 기사아저씨는 계속해서 욕을 얹어 클락션을 눌러댔다.
승용차가 좌회전을 하고 나니 그 뒤에 서 있는 또 다른 승용차가 빨리 출발 안 한다고 또다시 “아이씨”를 멈추지 않았다.
그때 그 여학생이 자리에서 일어난 것이다.
여학생은 핸드폰을 보며 뒷문 앞에 섰고 기사는 차를 세웠다.
하지만 학생은 내리지 않았다.
기사의 상대를 바꾸었다. “내리지도 않을 거면서 왜 서있냐?” 앞을 보고 있는데도 뒤에서 다 들리도록 소리치더니 차를 거칠게 출발시켰다.
다음 정거장까지 그는 입을 다물지 않았다. “바빠죽겠는데… 어쩌고저쩌고.. 중얼중얼”
하차벨이 울렸고 학생은 다음 정거장에 내렸다.
버스에서 내려 걷고 있는 학생을 보고 있는 내 귀에 선명한 말이 들렸다.
“저런 것도 자식이라고 낳고 부모가 좋아했겠지? 자식을 보면 부모를 안다고 가정교육시킨 것 보면 그 부모도 어떨지 보인다 보여”
점점 그의 언사는 도를 넘고 있었다. 중얼거리는 것 같지만 삼키지 않아서 분명한 발음으로 들렸다.
버스 안에서 내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때 내 뒤편에서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씨 진짜 듣기 싫네”
말소리를 듣는 동시에 내 눈에 기사가 보였다. 그는 흠칫했다. 돌아볼 것처럼 오른쪽으로 고개를 움찔하더니 다시 앞을 보았다.
싸움이 될 거라 예상했다. 아주머니는 바로 하차벨을 눌렀다. 뒤를 돌아보니 버스 안에는 그 아주머니와 나밖에 없었다.
욕을 먹었던 학생은 하차벨을 누르지 않고 미리 일어섰었다. 기사가 앞에서 달리던 승용차에 집중하느라 하자벨을 확인하지 않았던 것이고 학생이 일어선 것만 보고 하차해서 물을 열었던 것이다. 기사 자신의 착각이었다. 그걸 지켜봤던 나는 운전기사가 거친 말로 욕을 하면 참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의외였다. 그는 입을 다물었다. 다음 정거장에서 아주머니가 내리고 대여섯 명의 손님들이 승차했다. 그리고 그는 아무 말 없이 운전만 했다. 아슬아슬하게 신호등에 걸려 서게 되어도 앞선 승용차가 어정쩡하게 느릿느릿 우회전을 해도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내가 내리는 순간까지도.
둘째와 막내와 함께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이야기를 꺼냈다.
둘째는 절대 그런 일에 대응하지 마라고 당부했다. 세상에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이상한 사람이 너무 많다고 말하며 “엄마. 진짜 재수 없었다고 그냥 잊어버리세요. 절대 대응하면 안 돼요. 알았죠?”
그는 어떤 사람일까?
상상을 초월하는 사이코패스 같은 사람일까?
막내가 중학생 때였다.
학생들의 등교를 돕고 학교 안의 질서를 위해 부모들이 전담을 짜서 활동하던 시기였다. 그날 나는 교문에서 선생님을 도와 아이들과 인사를 주고받았고 수업시작을 알리는 종소리를 듣고 마무리를 하던 중이었다.
그때 터덜터덜 교문으로 들어서는 남학생이 있었다. 교문에서 엄마들과 점심시간 전까지 휴식시간에 학교 건물 어느 곳을 순찰할지 정하고 있던 학생주임선생님이 그 학생을 불러 세웠다.
단박에 이름을 부르시는 것으로 보아 이런 일이 잦았던 것 같았다.
‘아, 왜요?’ 짜증을 내며 학생이 다가왔고 선생님은 아이를 덥석 안았다. 아이는 몸을 빼려고 몇 번 움찔거렸지만 선생님은 꽈악 더 세차게 끌어안았다. 꿈틀대던 아이는 몸에서 힘을 빼고 가만히 있었다. 그제야 선생님도 팔에서 힘을 풀고 손바닥으로 등을 몇 번 토닥이셨다. “잘 왔다. 잘 왔어”
멋쩍어하는 아이를 교실로 올려 보내고 선생님은 우리 쪽으로 걸어오셨다.
“왜 안으셨어요?” 내가 물었었다.
“저렇게 풀어주지 않으면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다른 애들에게 막 화풀이할 거예요. 뭔지도 모를 화지만 풀고 나면 걱정 안 해도 되거든요”
버스 안에서의 해프닝이 있었던 날 교문 앞에서 학생을 안아주던 선생님 생각이 났다.
우리는 비슷하다. 아니 사람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날 그 기사분은 아주머니의 한마디에 정신을 차리신 것 아닐까.
올바르게 사는 길을 알고, 그렇게 살고자 노력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아 속상해하던 어른이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수치심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주머니의 한마디에 대꾸 없이 입을 다문 것이리라.
앞으로도 나는 그 기사아저씨를 자주 접하게 될 것이다. 퇴근시간이 일정하니 가능성이 크다. 더는 타인에게 화를 내는 아저씨를 만나지 않길 바란다. 용기 있는 아주머니의 대응에 그가 제발 올바른 선택을 하길 진심으로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