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매번 기대하게 된다

by서화

아이 넷을 임신하고 낳기까지 지루한 시간이었다. 불어나는 몸무게, 쉽지 않은 움직임, 게다가 결코 멋스럽지 않은 임부복. 그중에서도 입덧이 최악이었다. 맛난 식당거리는 어이없이 참을 수 없는 냄새로 가득한 장소가 되어버렸고 이름만 들어도 입에 침을 고이게 만들던 메뉴들이 한순간에 생각만으로도 변기통을 붙잡고 앉아있게 만들었다.


첫 아이 때부터였는데 그걸 겪고도 세 번을 더 하다니 왜 그랬냐며 나답지 않다고 쯧쯧 혀를 차던 친구도 있었다. 평소의 나답지 않은 것은 맞다. 경험한 후 맞지 않다고 판단한 상황은 결코 반복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뭐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아들을 낳기 위해 딸 셋을 낳은 결과는 표면적인 이유였다. 만약 내가 중간에 더는 낳지 않겠다고 결정했었다면 나는 그렇게 했을 것이고 남편도 시어머니도 그 결정을 번복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남편은 처음부터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결정권을 넘겨주었던 사람이라서 당연히 나를 지지했을 것이고 시어머니는 드러내놓고 언짢은 표현은 대외적 이미지 때문에 못하더라도 한 번씩 나의 심기를 건드는 말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마도 나는 흔들리지 않고 내 인생에만 집중했을 것이리라.






나는 둘째를 낳은 후 임신을 두 번이나 겪었으면서도 태몽을 한 번도 꾸지 못한 것이 내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분명한 차이가 있다. 안 꾼 것이 아니라 못 꾼 것이다.


시어머니가 꾸고, 친정 언니가 꾸고, 시아버지가 꾸고, 친정엄마가 꾸셨다. 나는 없었다. 낳기 전 한 번은 꾸는 날이 오겠지 그저 기다렸었다. 깨고 나면 지우개로 깨끗하게 지운다고 빡빡 문지르고도 드문드문 남은 연필자국처럼 흔적은 있는데 명확하지 않고 흐릿한 보통의 꿈들과는 다르게 천연의 선명한 색과 특별함으로 기억된다는 태몽을 나는 매번 기다리기만 하다가 끝났었다.


셋째 임신 소식을 확인했을 때 처음으로 든 생각은 태몽이었다.

‘이번에는 꿀 수 있겠지? 그래도 엄만데’

10달 동안 매일매일 빌었다. 순산을 기원하고 자손의 번영을 빌 것이라고 사람들은 예상하지만 나는 먼저 태몽을 꾸고 싶다고 서원했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아직도 무경험자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시댁식구들, 친정식구들 게다가 멀지 않은 외가 친척까지 여러 사람들이 내 아이들의 태몽을 꾸었다고 나에게서 꿈값을 받아갔지만 정작 나는 슬프게도 제외였다.





그렇다고 내가 예사롭지 않은 꿈의 경험이 전무한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예지몽 같은 꿈을 여러 번 꾼 경험이 있었다.


친구의 출산을 도와 병원까지 동행해서 딸아이의 출산을 간호사에게서 처음 듣는 사람이 나인 꿈을 꾸었다. 평소 연락이 없던 친구였는데 내가 그 친구의 셋째 딸 꿈을 꾼 것이었다. 전화통화로 확인했었다. 아직 본인과 남편만 알고 있던 임신을 내가 물었을 때 전화기에 입을 바짝 갖다 대며 속삭이던 친구는 내가 꿈을 꾸었다고 하니 한동안 말을 잃었다.


친하지 않던 친구의 꿈은 꾸면서 정작 내 아이들의 태몽은 그토록 원했었는데 왜 경험하지 못했는지 여태까지도 내가 임신한 기간 중 가장 아쉬운 점으로 꼽는다. 남들은 남편이 먹고 싶은 걸 안 사다 줬다, 가족들이 말을 곱게 안 해줬다가 불만사항인데 나는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 몰라서 불만이 없다고 했었다.

내가 꿔야 하는 내 꿈은 맞지만 그렇다고 그게 내 탓일까? 제일 억울한 사람은 바로 난데 말이다.


비슷한 꿈을 두어 달 차이를 두고 연속해서 꾼 적도 있었다.

미국에서 힘든 시험을 앞둔 친구의 부고소식을 접한 꿈. 꿈속에서도 깨고 나서도 한참을 엉엉 울었었다.

기분 나쁜 꿈이었지만 인터넷에서 확인해 보니 친구가 바라던 것을 이룰 것이라는 길몽이었다. 정확히 일주일 후 친구의 합격 메일을 받았었다.


친구의 꿈을 꾸고 두 달 뒤, 둘째의 죽음. 장례를 모두 치른 후의 나를 내 눈으로 지켜보는 꿈을 꾸기도 했었다. 출근하는 인파 속에 드라마 속 한 장면처럼 둘째가 보였다 사라져 가슴을 쥐어뜯으며 주저앉아 우는 나를 꿈속의 내가 눈물을 흘리면서 바라보고 있었다.

축축한 얼굴로 잠에서 깬 순간 나는 시험으로 고생하고 있는 둘째가 합격할 것이라는 확신에 오히려 꿈이 고마웠다. 가슴 졸이며 결과를 기다리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셋째는 친구들이랑 ‘사주카페’라는 곳을 자주 들르는 것 같아 보인다. 즉각적으로 뭔가를 듣고 왔다고 전하지는 않았지만 후일에 다른 이야기에 덧붙여 갔다 왔다고 그 내용까지 털어놓고는 한다.


셋째를 제외하면 다른 아이들은 ‘사주팔자’를 듣는 것에 흥미는 있지만 제 발로 찾아가지는 않는 것 같다. 심지어 그런 카페에 들르게 된 큰 애가 가족톡에 의견을 올린 적이 있었다.

“나 지금 사주카페에 왔는데 자신의 사주가 궁금한 사람 알려줘”

다들 괜찮다고 답을 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큰 아이도 하지 않았단다.


물론 나도 관심이 없는 편이다.

“엄마는 안 궁금하세요?”

“60 정도 살면 알게 돼. 인생은 언제나 기복이 있어. 미리 알아도 건너뛸 수 없는데 뭘 미리 알고 싶겠어? 엄마는 모르는 게 좋아”

내 운명을 미리 훔쳐보는 것은 왠지 하면 안 되는 것을 몰래 하는 난감함과 답답한 근심을 한꺼번에 받아 안고 있는 것 같아서 싫다.

사주를 보는 것은 싫은데 그래도 꿈은 싫지 않다.


꿈은 예측불가능해서 좋다. 꿈이 현실을 반영한다고는 하지만 원하는 꿈을 꾸는 사람은 없다.

주는 대로 꾼다. 그래서 꿈은 매번 기대하게 된다.

오늘은 기억날 만한 꿈을 꿀지.. 아니면 그저 번잡하고 어수선한 느낌만 남을지…


뭐가 되었든 잠들기 전에 또 바란다.

‘오늘은 형형색색의 꿈을 주세요’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인생은 각자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