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이후에 멀리해야 할 사람유형 3가지.’
시선을 단숨에 끌어당기는 제목이다. 아마 ‘30대에 꼭 읽어야 할 바카라’이라는 제목이었다면 관심이 갔을까? 제목들에서 나이를 거론하면 가볍게 넘길 수가 없다.
내가 그렇다.
60에 접어들면서 더욱더 바삐 종종걸음으로 하루를 다그치게 된다. 나이만큼의 속도로 화살같이 지나간다는 시간이 무서워서 현재를 분단위로 잘게 나눠 아껴 써야만 할 것 같은 기분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그대로 행하지 않으면 절망적인 후회를 또 하게 될 것 같은 경고 같달까.
무언가를 하라는 조언과 무언가를 하지 마라는 조언에서 나는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내가 나의 늙음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40대의 끝을 지나 막 50대로 접어들던 때였다. 안경을 쓰고 있는데 보이는 것이 없었다. 핸드폰 배터리에 적힌 숫자를 불러달라는데 숫자 자체가 안보였다. 이해할 수 없어 당황스러웠는데 놀라운 건 그다음이었다. 안경을 벗어던지며 “도대체 무슨 숫자를 불러달라는 거지?” 하는 순간 배터리 한쪽 바코드 아래에 나란히 적힌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안경을 다시 썼다. 숫자가 없어졌다.
안경을 벗었다. 숫자가 다시 나타났다.
‘아, 내 눈이 늙었구나’
아직 40대라는 숫자는 의미 없는 향변이다. 평범하고 안전하게 나이 들어간다는 것이 아니라 방향의 끝이 명확하게 아래를 향하고 있음을 체감했다. 나의 늙어감이 가시적으로 나타났고 내 몸뚱이는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 선 기분이었다. 돌아서 나갈 계단은 없었다. ‘이제부터는 아래만 보고 조심조심 걸어내려 가세요’ 친절한 안내방송이 들리는 것 같았다.
지하는 처음부터 비어있는 것 같다. 서늘한 공기 때문일 것이다. 예외 없이 어둡고 축축하고 따뜻하지 않다. 내려가며 느끼는 기분과 달리 어느 집이든 볕이 들지 않는 지하실은 잡동사니를 쌓아두는 창고다. 미래에 어느 날 필요를 위해 넣어두곤 잊어 비린 물건들로 그득한 창고.
그래서 몇 년에 한 번씩 대대적인 청소를 한다. 정리가 아니라 비움이다.
정리든 비움이든 만만치 않다. 지루한 시간과 만만치 않은 체력을 들여 많은 것을 버린다. 이웃들에게 보낸다. 남주기 아까워서 내내 보관했던 것인데 주저 없이 건넨다. ‘고마워요. 잘 쓸게요’ 이런 인사를 받으며 나는 다시 확인받는다. ‘내가 늙었나 보다’
갖겠다는 욕망도 같이 비워지는 것이 나이 든 나의 비움이었다.
텅 빈다. 텅 비었는데 아쉽지가 않다.
10년 전만 해도 그렇게 만든 빈자리는 새로운 사람, 새로운 도전, 새로운 물건으로 채우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제는 빈 것 자체가 마음에 든다. 바카라상, 바카라장, 소파, TV. 모든 것을 치운 거실은 내 말소리가 울린다. 이사 들어오기 전 어떤 위치에 가구를 배치할까 고심하느라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텅 빈 공간의 소리였다.
유심히 돌아보니 알게 되었고 그것이 나에게 안성맞춤이라고 인정했다.
부엌의 그릇도 크게 필요하지 않았다. 자주 쓰는 그릇만 계속 썼다. 나의 하루를 채워줄 정도만 남기고 치웠다.
옷장 하나에 충분하게 채워지는 양의 옷과, 신발장 두 칸으로 충분한 신발들.
그렇게 최소한으로 남겼고 더는 채우지 말자 마음먹었다.
나이가 들면 활동 반경도 좁아진다. 다니던 시장만 찾게 되고 집 근처 커피숍, 빵집, 목욕탕만 간다. 새로운 것이 싫은 것이 아니다. 익숙한 것이 편하다. 편한 것은 일상을 크게 흔들지 않는다. 그렇게 단순한 일상이 반복되는 것이다. 사람도 물건도 만나는 사람만 만나고 쓰던 물건만 쓴다. 그래서 그다지 많은 수의 사람과 물건이 없어도 아쉽지 않은 것이 아닌가 싶다.
‘멀리해야 할 사람 유형 3가지’ 이런 조언은 불편하다.
‘자식에게 하면 안 되는 조언’. ‘손절해야 할 사람 유형’. 등등
이렇게 구분 지어진 인간 유형은 친절한 조언이 아니라 조심하라는 경고 같아서 억울하고 짜증이 난다.
노년에는 불필요한 넓은 관계를 정리하고 좁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글을 보면 묻고 싶다. 나는 친구가 몇이 없다. 다행스럽게도 서너 명의 친구는 온전히 내편인 찐친이다. 하지만 나는 젊은 시절에는 그 서넛의 친구도 없었다. 오히려 자식들 키우고 시간 여유가 생기면서 다시 교류하기 시작한 관계일 뿐이다. 그럼 나는 잘 살아온 사람인가.
젊을 때 있었어야 할 넓은 인맥은 결코 만들지 못했고, 그래서 정리하고 손절해야 할 관계도 없다.
오히려 다양한 모임을 갖고 있던 주변인들이 부러워 우울했고, 그럼에도 나의 삶에 충실하려 노력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다독여왔을 뿐이었다. 인맥이랄 것이 없기에 줄일 것도 없는데 온통 하지 마라, 손절해라, 조심해라, 이런 글들이 자꾸 보인다. 나이 든 사람들이 해야 한다는 전제까지 붙어서.
인생은 각자 사는 것이다. 인간관계도 각자의 선택이고. 40에 50에 꼭 읽어야 하는 바카라을 못 읽었다고 무너질 인생은 없다. 나이 들었다고 손절해야 할 관계가 많은 것은 아니다. 가까이 두지 말아야 할 사람은 나이에 상관없이 곁을 내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나이를 들먹이는 조언은 정말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