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처음 만나는 누구든 나의 단점 하나는 오분 안에 단박에 알게 만들고 싶었다. 스스로 속을 내보이는 세상 쉬운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바랐다. 평범하게 무른 사람이라서 내가 하겠다는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성질로 푸근하게 살 수 있다고 믿고 지냈다.
이런 기습적인 커밍 아웃은 첫인상으로 만들어야 한다. 상대가 어떤 성향인지, 그 집의 경제력이 어떤지, 그 집 아이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 엄마가 어느 정도의 학력인지 일반적으로 상대의 프레임을 만들 기회를 주지 않은 상태에서 공격하듯 보여주어야 한다. 견고해진 인상을 다시 부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보통은 부부싸움의 일화부터 털어놓는다. “도대체 너는 여태껏 뭘 배우고 살았냐?” 아이에게 올바른 훈육을 하지 못한다고 남편에게 들은 말이었다 한탄하며 그 엄마는 “함부로 말하는 애들을 어떻게 다루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타인의 조언을 구하고 있었다.
‘이런 속얘기를 여기서 해?’
‘이거 남편에게 무시당하고 있다는 거잖아’
‘자기 아이의 그릇된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서 말한다고?’
충격이었다. 아무 말 없이 내내 그녀의 표정만 읽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 이어지던 상황에 나는 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지영엄마, 우리 남편은 나한테 뭐라고 한 줄 알아요? 밥만 축내지 말고 공부 좀 하래요”
“아빠들이 그런 말 하면 애들도 따라 하는데 어떻게 올바른 훈육이 되겠어요. 안 그래요?”
다들 웃었다. 맞장구치듯 한 마디씩 거들며 그날의 식사자리는 시끌벅적하고 화기애애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나만 걸음이 무거웠다.
어떻게 저런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지? 집에서 남편에게 험한 소리를 듣는 여자로 남들에게 보이는 게 신경이 안 쓰이나? 내 시각으로는 그녀는 안쓰러웠다. 남편에게 자존심 상하는 핀잔을 듣고 아이에게 영향력 없는 엄마취급을 받는 가여운 여자였다. 절대 하면 안 되는 치부를 꺼낸 탓에 두고두고 그날을 후회하게 될 것 같아 그다음이 걱정스럽기까지 했다. 내게 그녀의 첫인상은 가엽고 안타까운 착한 여자였다.
다음 모임부터는 부끄러워서 못 나올지도 모른다는 나의 예측과 달리 그녀는 착실하게 참석했고 변함없이 비슷한 이야기로 남편흉을 봤고 사람들의 위로를 받으며 많이 웃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가 아니라 내가 그 모임이 불편하기 시작했다. 그녀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나 스스로의 마음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둘째 셋째도 학원 때문에 바빠지며 참석할 시간이 없다는 대외적인 이유가 아니라 점점 그 모임에서 말이 없어지고 있는 나 자신 때문이었다. 나는 솔직하지 않았다. 아니 솔직해지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를 놓친 것이다. 다른 이들의 화기애애에 내 자리가 없는 듯 언짢아지고 말았다.
이미 그들에게 나는 자신들보다 나이도 많고, 아이가 넷인 슈퍼 우먼이었고, 무엇보다 과묵하고 매사에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할 말만 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언니였다. 남편의 험담을 하지도 못했고 아이 교육에 실패한 후일담을 털어놓지도 못했고 허무하게 느껴지는 현실의 무게에 대해 진솔하게 위로받지도 못했다.
그렇게 마지막참여를 하고 돌아온 날. 나는 혼자 울었었다.
뭐가 이리 힘든지, 나는 왜 매사에 쉬운 게 없는지, 잃을 것이 별반 없으면서 무얼 지키겠다고 이렇게 날 세우고 사는지…
첫 모임에서 자신을 내려놓았던 그 엄마가, 그녀의 지략이 화가 날 정도로 부러웠다.
평균대는 보기에는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길이가 길지 않은 것 같고, 무심하게 터덜터덜 바른 자세로만 한다면 거뜬하게 건너갈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막상 올라서면 급변한다. 높이가 심상치 않고, 내 발은 바른 자세에서 자꾸 틀어진다. 조급하면 다리보다 몸이 앞서고 균형은 흔들린다. 꼿꼿이 서서 걸음에 맞추어 몸과 머리도 같이 움직여야 한다. 적당해야 한다. 과하게 나아가지도 그렇다고 제자리에 머무르면 또 두려움으로 다리도 몸도 흔들린다. 그 중간에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발만 보아서도 앞만 보아서도 안된다.
내게 중간은 평균대위의 걸음 같은 것이었다. 속도도 적당히 균형도 시선도 모든 것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적당히..
‘중간’을 배운 건 감정이 시작이었다.
엄마는 과한 오보액션의 감정은 상대에게 잡히는 약점이라고 일러주셨다. 좋은 일에 너무 흥분하여 행복함을 드러내면 ‘좋아할 일이 이것밖에 없나 보다’라고 얕잡아 볼 거라고 하셨다. 슬픔에 오열하듯 빠지면 ‘이런 감정하나 제어 못하는 이성적이지 못한 사람이구나’ 평가에서 밀려날 거라고도 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것도 적당히 싫은 것도 적당히 그렇게 중간을 걸어라 하셨다.
하지만 내게 감정은 곧 사람들과의 관계를 만드는 도구였다.
내 행복을 많이 드러내서 그걸 같이했던 이들에게 전파할 수 있기를 바랐었다. 그래서 그 기쁨이 두 배 세배로 커진다면 그것이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하며 즐기고 싶었다.
슬픔도 그랬다. 이별이 슬프면 나는 그 이별에 슬픔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빠져야 한다고 믿었다. 눈물이 나면 울고, 웃고 싶지 않은 우울이면 웃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어떤 사람으로 비치는지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감정에 충실했던 나는 일 년에 반 이상을 감정을 드러내며 살았던 것 같다.
행복하던 시기의 나를 본 친구는 “너는 걱정 없이 사는 사람 같구나. 어떻게 그렇게 항상 웃을 수 있지?”라고 했고 우울하던 시간 속 나를 지켜본 친구는 “우리가 그냥 지켜만 봐야 하는 거지? 걱정된다” 했었다.
엄마는 그런 나를 싫어하셨다. 가벼운 사람이라고 대놓고 핀잔을 주셨다. 자랑거리를 들고 와 밝은 목소리로 그 소식을 전하려고 하던 순간, “너는 언니가 지금 기분 안 좋은 거 안 보이니? 다른 사람 기분도 좀 살피고 살아. 뭐 그리 대단한 걸 해냈다고 시끄럽게”
엄마는 나의 자랑거리가 무언지 여태껏 모르신다. 안 궁금하다 하셨다. ‘그냥 너 혼자 알고 기뻐해’ 하셨다.
친구의 죽음에 오열했던 중학생에게 “네 엄마가 죽었니? 남들이 보면 엄마가 죽은 줄 알겠다”
과하지 말라고 했지만 과하지 않은 감정은 없다. 그래서 나의 중간은 적당히가 아니라 아예 갖지 않는 것이어야만 했다.
대학 동아리 친구들과 20년 가까이 모임을 이어오고 있다.
남녀 비율이 비슷하지만 대부분의 여사친들은 경상도 지역에, 대부분의 남사친들은 서울 경기지역에 거주한다. 그래서 나는 서울 경기권에 있는 유일한 여자회원이다.
대구에서 출발하는 친구들은 한차로 움직이든, 대중교통을 이용하든 재잘재잘 담소를 나눌 시간이 많아 중부권 친구들을 만났을 땐 이미 많은 정보들을 공유한 이후였다. 그래서 나는 매번 비밀에 싸인 사람이 되고 만다. 이런 모양이 싫은데 여전히 이런 입장에 놓인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나는 오직 현재, 바로 지금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친구들의 생활을 자세히 알지 못하니 질문은 맨 처음 것부터 끄집어내야 할 듯싶어 삼키고, 다른 이들의 대화를 통해 그 변화를 예측할 뿐이었다. 그러니 그날의 날씨, 그날의 음식, 그날의 기분에 오롯이 감정을 담을 수밖에 없다.
그것도 열명이 넘는 회원 중 나란히 걸을 기회가 생긴 친구와만 대화했다. 몇 마디 인사만으로 만나고 헤어진 친구도 있을 정도로 바쁘고 어수선한 모임이다.
이번 환갑기념 일본여행에서는 여행사의 도움을 받았다. 그래서 지정 버스도 그 버스 안에서 지정 짝꿍도 있었다. 물론 같은 방을 쓰는 친구까지…
버스에서 옆에 앉은 친구가 조심스레 말을 시작했다.
“나는 우리 모임이 이래서 좋아. 자세한 건 서로 묻지 않고 일 년에 두 번 이렇게 만나 예전 젊었을 때처럼 이름 부르며 놀고, '다음에 만나' 하면서 헤어지는 게 너무 좋아. 시시콜콜 궁금해하지 않아서 진짜 좋은 것 같아”
“그래?”
놀라웠다. 그 친구는 나의 가정사를 살 붙여 다른 이야기로 바꾸어 옮기기를 즐겨했던 친구였기 때문이다. 아니다. 이것도 지금껏 내가 오해했을 수도 있겠다. 몇 마디 전해 들은 내용으로 내가 단정적으로 왜곡했을 수도 있겠다는 기분이 들면서 반가웠다. 스무 살 친구가 돌아온 듯 강한 동질감에 나는 주절주절 아픈 곳은 어떤지 운동은 꾸준히 하고 있는지 아이들과는 잘 지내는지 궁금했던 이야기를 먼저 던졌고, 이동하는 내내 우리는 나이에 걸맞게 약해진 체력과 소심해지는 마음이 싫다는 푸념을 공유하며 오랜만에 철없고 걱정 없던 시절의 서로를 보았다.
앞서 걸어가는 친구를 보며 나는 변하지 못한 나를 알아챘다. 중대한 삶의 변화는 여전히 비밀로 하고 숨겼기 때문이다. 적당한 중간은 싫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가운데서 떨어지지 않고 헛발질도 하지 않고 허우적거리지도 않으려고 죽어라 버티고 있는 나 자신을 확인했다.
그런데 말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던 것 같다. 내 뒤를 따라오는 친구들도, 빨리 와서 사진 찍자고 손짓으로 나를 부르는 친구도 모두 넓이와 길이와 높이가 다른 각자의 평균대를 걷고 있는 중일 수도 있겠다 싶다. 깊이 알려고 하는 상대가 불편한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모두 나 같을 수도 있다.
우린 친구다.
있는 그대로가 좋은 친구다.
어쩌면 나만큼 나의 친구들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찾고 싶어서 서로가 필요한 것일수도 있다.
평균대에서 좀 내려온다고 자바카라하지 말자.
느닷없는 사고처럼 헛발질하다 바닥으로 내려온다고 실망하지 말자.
내가 부러워했던 그녀는 그 실수를 실수로 받아들여 웃을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