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탓으로 돌리면 내가 생각이란 걸 좀 버릴 수 있을까

by서화

대상포진이란다.


짐작해서 통증의학과를 찾아갔으면서도 의사의 말에 다리에 힘이 풀렸다. 의자에 앉아있는데도 주저앉는 기분이었다.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나의 뇌는 예상 못한 돌부리에 걸려 와르르 쏟아지고 대상포진이라는 단어 하나만 남은 듯 머릿속이 텅텅 울렸다.

“수포 말고 통증은 없으세요?”

“수포가 올라오기 전에 두통이 심했는데 저는 몸살 감기준 알아서…”

“아픈지는 얼마나 되었나요?”

“지금은 통증이 어떠세요?”

‘무관한 병이라 단단히 자신했는데….’

계속되는 의사의 질문이 흩날리고 있었다.






‘올 것이 왔구나’


한 달쯤 전이었다. 필라테스 회원이 예방주사를 맞았는데도 대상포진에 걸려 2주간 운동을 쉬었다고 강사와 나누는 대화를 우연히 들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런가 보다 흘려들었을 이야기가 하루 종일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결국 늦은 시간 인터넷에서 대상포진 예방주사를 알아보고 가능한 근처 병원까지 지도에 표시해 두고서야 잠들 수 있었다. 그 회원보다 내가 다섯 살은 많다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나는 관심이 가는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 당시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행동은 무의식에서 만들어진 욕구가 발현된 것이고 그래서 나의 몸과 정신의 건강을 위해 그 욕구는 채워야 한다고 믿는다.


그동안 한 번도 관심 가지지 않았던 ‘대상포진’이라는 병명에 내 무의식이 답한 것은 나와 관련이 생길 거라는 신호지 않았을까 싶다. 조용히 앉아 두 사람의 대화에 집중했었던 건 온전히 내 의식의 흐름이었다. 평소 타인의 대화에는 그다지 관심 없던 내가 그랬으니. 그런 이유로 나는 유난히 일정이 빡빡한 6월을 보내면 7월에 예방주사 접종날을 예약해 둔 상황이었다. 예약만으로도 위험에서 벗어난 듯 든든했었다. 예방주사보다는 관심 가진 바로 그 시점에 내 몸부터 챙겼다면 대상포진을 진짜 예방했을 텐데.








나는 몸이 아프면 버릇처럼 지난 석 달 동안 내가 행한 생활패턴 중에서 넘치듯 과한 일정부터 되짚어 보곤 한다. 무리하게 강행한 일정을 반성하면서 무엇이 내 몸에 과부하가 오게 만들었을까 곱씹고 또 곱씹는다. 그렇게 어리석은 욕심과 절제 못한 태도를 찾아내어 앞으로의 실천을 계획하며 이렇게 차근차근 모자란 것을 채워가면 아프지 않고 건강하리라 감히 장담까지 했다. 그 계획이라는 것이 함정이라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아플 것을 불안하게 느끼고 있었다.

병원에서 따지듯 억울함을 한의사 선생님께 쏟아냈다.

“저는 제가 왜 잠을 못 자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운동도 하고, 일도 하면서 육체적으로 제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고 걱정이나 불안을 가질 이유도 없는데요. 그냥 잠이 안 와요”

“생각이 너무 많아요. 내일 일정도 미리 동선체크하고, 글쓰기 소재도 그림수업 숙제도 몇 시간 정도면 가능할지 따져보고…”

“그래도 그건 걱정거리는 아니잖아요”


의사는 웃었다. 내가 찡그리며 억울하다 말하는 내내 웃으며 나를 보고만 있었다.

“부정적인 생각도 있지만 긍정적인 생각도 생각입니다”


생각과 불안을 같이 두고 있던 나에게 내일의 내 계획조차 생각이라고 한다.

고집 센 바보인 나는 자잘한 생각 더미에 파묻혀 한 달 넘게 잠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나의 상황을 이성적으로 분석까지 하면서 말이다.

‘내가 잠을 못 잘 이유가 없는데…’

‘내가 불면증일 수가 없는데…’


골똘히 집요하게 머릿속을 헤매는 그 계획이라는 것이 매번 내 잠을 방해해서 수면의 질을 턱없이 낮추고 있다는 것을 찰나에라도 의심하지 않았다. 머릿속은 어떤 노력으로도 비워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을 수는 있는데 머릿속은 전쟁 중이었다. 아군과 적군이 뒤섞여 3차 세계대전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나는 한의사 선생님 앞에서 어이없어 미간만 찡그렸지만 현재의 몸 상태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 약을 먹으면 잠자는 게 수월해질까요? 푹 잘 수 있을까요?”

선생님은 또 웃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잠을 방해하는 것들을 없애고 약 먹으면서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려고 노력해 보세요”


나는 많은 문제를 가진 환자였다.

잠시 내 모든 일상을 멈추었다.

글쓰기도 그림도 일도 그리고 운동도.

계획을 모조리 지워버렸다.

‘과연 나는 내 뇌 속의 번잡을 비워낼 수 있을까…’

이딴 고민을 또 하고 있다.


나는 아이들에게 의사와의 면담을 전하며 바카라임을 떠넘겼다.

나의 치밀한 계획 탓으로 만들면 ‘세상을 좀 여유롭게 바라보라’고 했던 내 조언에 반하니 말 못 하겠고, 육체적으로 지쳐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졌다 알리면 당장 내가 하고 있던 여러 가지를 기약 없이 멈추라 할 것 같아 망설였다.

“의사가 너무 걱정 말래. 갱년기에 흔히 나타나는 불면증이래. 약 먹으면 좋아진다니까 너희들도 크게 걱정하지 마.”






미안하다 나이야.

나이를 만병의 근원으로 만들어 버렸구나.

네 탓으로 돌리면 내가 생각이란 걸 좀 버릴 수 있을까?

얄미워도 어쩔 수 없어. 나는 계속해서 니 탓을 하며 버틸 거야.


‘갱년기’

네가 문제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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