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은 나에게도 아픈 손가락이다

by서화

몇 년 전 대학 동아리 친구들과의 모임이었다. 식당에서 주문 후 테이블에 마주 앉아 기다리던 중 맞은편에 앉아 있던 여사친 하나가 내 왼손을 덥석 잡았다. 느닷없는 행동에 나는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 친구는 다른 친구들을 한 바퀴 휘 둘러보더니 내 손을 더 높이 들며 힘주어 말했다. “일 많이 한 손” 그리고는 자신의 다른 손을 들어 보였다. “일 많이 안 한 손”


나는 탁자 위로 다시 내려진 팔을 당겨 나의 손등을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혼잣말을 했다. “그래. 참 일 많이 했지” 내 시선은 아래를 향했지만 다른 눈들은 나를 향하고 있었다.

주인아저씨가 음식을 들고 들어왔고 우린 왁자지껄 식사를 마쳤다.


식당을 나서 숙소로 향한 길이었다. 갑자기 남사친 둘이 내 옆으로 와서 나란히 걸었다. 머뭇대던 친구들이 말을 꺼냈다.

“괜찮아?”

무슨 말인지 몰라 다시 묻는 나에게 한 친구가 멋쩍게 웃었다.

“아까 은아가 했던 말. 니 손말이야” 그들도 적잖이 당황했던 모양이다.

무례한 친구였다. 상식 없는 친구의 본데없는 행동이었다. 겉으로든 속으로든 교양 있고 아름다운 친구가 아니어서 나는 그냥 묻었다.






나의 손은 열개의 손가락이 있다. 그 손가락 끝에는 손톱도 열개 있다. 게다가 손톱모양이 평균이상의 아름다운 형태와 색을 지녔다. 썩 괜찮은 손톱임에도 내 손은 예쁘지 않다. 아니 조금 더 낮추어야 한다. 내 굵고 짧은 손가락을 보며 나의 엄마는 무의식으로 흘리셨다. “일 많을 손이네”


통통한 손바닥에 통나무처럼 굵은 손가락들. 손끝조차 살이 올라 작은 휴대용 자판은 오타가 잦다. 뽀얗고 통통해서 만지면 말캉말캉 조몰락조몰락 나름의 쿠션감까지 갖추었던 과거가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젊은 시절이야기다. 나이에 걸맞은 윤기 나는 피부가 모든 결점을 덮어줄 수 있던 그때는 작지만 야무진 손끝을 가진 존재였다.


세월은 참 야속하고 잔인할 만큼 솔직하다.

현재 나의 손등은 거뭇거뭇한 사마귀 같은 점들이 많다. 헤어보지 않아서 몇 개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적지 않다. 의사는 유전적인 요인 때문이란다. 가장 힘 빠지는 답변이었다. 게다가 최근엔 하얀 점들도 몇 개 생겼다. 주름 생긴 피부에 검고 흰 점들이 섞여 분포하니 섬섬옥수는 결코 아니다. 내가 봐도 그런데 남들 눈에는 더 측은해 보였나 보다.


엄마의 분석처럼 나의 손은 고달픈 경험을 많이 많이 했다. 아이 넷을 남의 손 빌리지 않고 오롯이 키웠다. 먹이고 입힌 의식주는 고생의 범주에 넣고 싶지 않다. 넷 낳은 건 부모의 욕심이었으니 그 고생은 기본적인 의무라고 보기 때문에 생략한다. 적지 않은 공치사를 생략하고도 내 손은 참 부지런했다.






큰아이는 초등 5학년에 영어마을 지원에 당첨되어 한 달간의 이국생활을 했었다. 결코 쉽지 않을 것을 예상했지만 나는 의도를 가지고, 큰 아이는 잘 몰라서 그렇게 성사된 도전이었다. 보내놓고 근심을 갖게 된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편지를 썼다. 집안일을 끝내고 늦은 시간에 A4용지 두장 분량의 이야기를 매일 보냈고 딸아이는 출소 전날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프린터 된 나의 편지를 받았다.


엄마의 응원이었고 엄마의 애정이었다. 힘들고 지친 날이어도 나는 편지를 썼다. 그 편지는 마음이 동의했지만 내 손이 나서서 성사된 작업이었다. 종이에 쓴 편지든 자판으로 만든 글이든 내 못난 손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버티며 이룬 기록이다. 큰아이는 그 편지를 여태껏 모아두었다. 이삿짐 정리할 때 보니 차곡자곡 서류철에 정리되어 있었다. 다시 봐도 흐뭇했다.


둘째가 다닌 고등학교의 기숙사는 학교 교문 옆 수위실 방송을 통해 본인이 직접 받아가게 했다. 내가 보낸 편지는 자주 둘째의 이름을 호명하게 했고, 택배가 아닌 편지를 받아 들어 우쭐했고 빼곡하게 적힌 엄마의 글씨가 눈물 나게 반가웠다는 둘째에게는 가장 힘찬 격려였다.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을 이야기한 내용들이었지만 떨어져 지내는 아이에게는 배제된 듯 섭섭했던 기분을 순식간에 사라지게 만들어주었다. 그 대단한 것을 또 나의 이 손이 했다.


물론 스마트폰이 나온 후부터는 장문의 카톡문자로 대체했다. 셋째가 특히 좋아했던 깻잎김치를 담근 날, 사진 한 장 첨부하여 ‘주말에 다니러 올 너를 위해 만들었다. 어서 와라’ 셋째는 집으로 오는 길이 그렇게 설렜다고 전하며 “엄마가 나의 엄마라서 정말 감사해요” 고백했었다. ‘엄마의 아들인 게 제가 받은 가장 큰 행운입니다’ 수능을 재도전하던 시기의 아들은 본인의 힘듦을 감사로 이겨내며 이렇게 마음을 보여주었다.


내 손의 최고 업적이다. 입이 아니라 손을 써서 달래고 다독이고 사랑을 전했다. 내가 누구보다 잘한 일이라 느낀다. 손은 말보다 느리지만 그래서 더 녹진하고 훨씬 오래간다.






나이 들수록 외모는 가꾸어야 한다고 다들 시끄럽게 조언한다. 타인에게 보이는 나의 얼굴에 살아온 인생의 족적과 신념이 숨길 수 없게 드러난다고 그래서 가꾸란다. 가꾸어야 할 외모는 어디까지 인가. 잡티 없이 관리받은 맑은 피부?, 주름을 최대한 지우고자 노력한 목? 아니면 햇빛을 최대한 가려 노화를 늦춘 팔과 손?

누구보다 기능과 용도에 충실했던 내 손은 가꾸어야 할 외모에 속할까 아니면 관리되어야 할 신체의 일부분일까.

다른 이들은 어떤지 몰라도 나의 손은 마지막까지 아끼고 다듬어야 할 외모는 확실히 아니다. 분명한 용도로 그 쓰임에 충실해왔던 나의 손이 사랑스러운 이유고 상식을 벗어난 친구의 언사에도 굳건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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