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 나는 웃고 있을 것이다

by서화

환갑이다. 벌써 내 나이가 환갑이다. 믿을 수 없다고 하고 싶지만 솔직히 알고 있다. 아니 느끼고 있었다. 내가 많이 늙었다는 것을 말이다.

욕실에 큰 거울, 현관옆 거울. 화장대 거울. 그리고 아이들 방에 있는 다양한 전신거울.

절대 모를 수 없다. 눈동자를 돌려가며 피해 다녀야 할 판인데 어찌 모르겠는가. 나도 안다. 나의 현실을.

쌍꺼풀은 탄력을 잃어 언젠가는 내 시야를 가릴지도 모른다. 그리 멀지 않은 어느 날부터. 눈꼬리 부근에도 눈아래에서부터 내려오는 볼록한 눈두덩이에도 주름이 자글자글하다.

내가 이 주름이 보이냐고 둘째한테 물었더니 보지도 않고 손사래를 친다.

“아이고 엄마. 그런 주름은 나도 많아요. 보실래요?”

‘누가 젊은 지들하고 비교하재? 그저 몇 년 전의 내 사진과 비교해서 어떻냐는 거지.’


친구들 얼굴을 마주 보고 싶지 않다. 걔들 얼굴이 내 얼굴일 텐데 뭐 그리 자세히 뜯어보고 싶을까. 솔직히 친구얼굴을 보면서 나는 저만큼은 아니라고 착각할까 그게 더 무섭다. 도찐개찐 일건대… 나와 친구들은 선글라스 없으면 사진도 안 찍는다. 눈가 주름만 가려도 봐줄 만할 텐데 실질적 증거로 박제되고 싶지 않다고 한 친구가 거절한 적이 있다. 듣고 나니 맞는 말 같아 다들 그냥 돌아섰었다.


가끔은 피부과의 도움을 받는다. 나도 친구들도 굳이 티 내지 않아도 암묵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매번 거금을 소비하고 나서 후회한다. 무슨 효과를 봤는지 알 수가 없었다. 더위에 약한 나는 태양이 작열하는 여름에는 화장 없이 잡티를 꾸준히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태양을 녹여버리면 모를까 나의 피부는 죽는 날까지 지금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결국 병원에서 새로 나온 고가의 기계의 도움을 받는다고 나의 노화는 결코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러고 나서 작은 것부터 시작했다. 단기의 다이어트가 아니라 건강한 노년을 위해 20년 전에 시작했던 요가처럼 나만의 작은 습관에 변화를 주었다.






팔자주름. 미간의 골 깊은 선. 그리고 눈가의 탄력 잃은 주름. 그 모든 현실을 무시하고 웃는다. 활짝 웃는다. 웃음소리가 아니라 표정으로 웃는다. 앞이 안 보일 만큼 눈을 찡그리며 입꼬리를 올려 웃는다. 광대가 위로 움직이고 올라간 입꼬리를 따라 팔자 주름은 반대방향으로 펴진다. 눈가의 주름은 사라지지는 않지만 눈웃음 뒤로 묻힌다. 자연스럽게 물결친다. 얼굴 근육에 경련이 생길 만큼 입꼬리를 내리지 말고 버틴다. 붙잡고 있는 만큼 더 즐겁고 더 감사하고 더 행복하다.


사람이 그냥 이유 없이 웃기는 어렵다. 내가 히죽히죽 최선을 다해 웃으며 걸어간다면 사람들은 내가 미친 줄 알 거다. 그리고 억지로 입꼬리 당기면 그게 오래 버티기 힘들다. 입은 웃는데 눈은 알 수 없다는 듯 동그랗게 커져 있는 얼굴을 한번 상상해 보라. 그 표정은 누가 봐도 완전히 사이코패스다. 무조건 하루에 세 번은 웃자고 결심을 한 나도 이유 없이 혼자서 웃기는 어려웠다. 나를 웃겨줄 무언가를 찾아야 했다.


그렇게 찾은 방법이 아이 돌보는 시터일이다. 나는 아기들을 아주 좋아한다. 무지 사랑한다. 내 자식을 넷이나 낳은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더 있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고 했더니 친구들이 욕했다. 욕심이 과하다고.





나는 매일매일 소리 높여 웃고 있다. 나를 보며 침 흘리며 달려와주는 꼬맹이랑 그저 웃는 시간을 보낸다. 내가 불러주는 노래에 보이는 율동에 웃고, 놀이터에서 내 다리 위에 앉아 그네를 타며 힐끗 뒤돌아 웃어주는 아이가 사랑스러워 또 웃는다. 오물오물 잘 받아먹는 입이 어쩌면 그렇게 귀엽고 신기한지 예전 내 딸들과 아들을 키우던 기억과 겹쳐지며 나는 퇴근 후 추억을 소환하여 가족들과 다 같이 웃었다.


퇴근길 버스 안에서도 나는 자꾸만 웃는다. 나의 눈가 주름도 미간주름도 팔자주름도 굳이 찾아보지 않고 있다. 보지 않아도 알고 있다. 주름이 진짜로 없어질 리는 없다는 것을 말이다. 어쩌면 피곤한 상태가 눈아래 더 짙은 그림자를 만들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것도 확신할 수 있다. 거울 속 나는 자꾸만 웃고 있을 것이다. 아이의 웃음이 내게로 와 나의 표정을 바꾸었을 것이다. 불안은 인간의 기본값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고민과 불안을 여전히 기본값으로 갖고도 나는 매일 웃는다.


심지어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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