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달력은 달력이다

by서화

달력은 소유의 목적과 제작의 의도가 백 프로 일치하지 않아도 된다. 사람들은 1년짜리 시간과 날짜의 관리를 위해 달력이 필요했다. 해마다 여러 종류의 달력을 미리 준비한 주된 이유였다. 하지만 달력을 만든 이들은 시각을 조금 틀었다. 매일 확인하는 날짜들의 위에 멋진 그림, 사진, 심오한 글귀 한 줄 얹어 차별화를 두었다. 자신들의 달력이 선택될 이유를 덧붙였던 것이다. 이렇듯 중심점이 묘하게 기울어도 괜찮다. 달력은 용도가 분명하고 명백하기 때문이다.


달력의 시작은 시간관리였다. 시간이 모여 만든 날짜 관리였다. 날짜들이 모여 만든 한 달 두 달. 그렇게 쌓인 1년의 활동이었다. 90년이 훌쩍 넘은 달력의 역사. 첫 시작부터 지금껏 달력은 자신의 의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아라비아 숫자보다 두드러진 상호와 뻑적지근하게 요란한 사진이 등장하며 화려한 외형적 변화를 겪었을 뿐이다.


개인 상호와 기업 홍보용 사진, 정부의 홍보도 있었다. 국토를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를 항공샷으로 찍은 사진과 건설된 공장과 건물, 정비된 마을사진등 요즘 홍보실에서 하던 업적 알리는 방법으로 달력만 한 것이 없었던 것 같다. 그 시절 극장에서 무조건 울리던 애국가와 “대한 늬우스” 못지않게 말이다. 정부가 이렇듯 적극적이었으니 사기업도 예외일 리가 없었다. 심지어 동네 치킨집 상호가 박힌 달력도 있었다. 달력이 사람들의 생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건이었다는 증거다.






곱게 한복을 입고 계절 풍경사진 옆에 다소곳이 서 있던 여자배우들 달력은 나의 외할머니 집에 있었다. 할아버지가 받아오신 것이리라. 할머니가 여배우 사진을 가까이 두고 싶지는 않았을 것 같았고 근엄한 척 헛기침을 하던 할아버지의 방에 걸려있던 그 달력은 노인냄새가 풍기던 그 방에서 가장 이질적인 물건이었다.


대학가나 시내 뒷골목 선술집에서도 배우들 달력은 매력적인 인테리어 소품이었다. 할아버지 방에 있던 한복 입은 사진은 아니었다. 원색의 비키니를 입고 무릎 꿇은 다리를 물속에 담근 채 초점 없는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던 어느 여배우의 사진은 불편해서 신경 쓰였었다. 분명 텔레비전에서 봤던 여잔데 왜 술 취한 사람이 많은 이런 곳에 꼭 저런 사진으로 박제되다시피 있어야 하는지 화가 났었다. 여름이 훌쩍 지난 11월인데 8월의 날짜였다. “아주머니 이 달력 훨씬 지난 건데 뜯어야 하는데 잊으신 거예요?” 나는 호기롭게 소리쳤고 아주머리는 귀찮다는 듯이 빠르게 답했었다. “사람들이 그 사진을 엄청 좋아해서 그냥 둬요”


어느 인터뷰에서 배우의 매니저로 활동했던 사람이 이런 달력의 제작에 대해 답한 적이 있다. 배우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배우를 알릴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았다고. 그 가운데 가장 선호한 것이 달력이었다고. 게다가 여배우는 가장 젊고 아름다울 때 수영복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이다. 선술집에서 사람들 -대체로 남자들- 에게 인기가 높았던 여배우의 수영복 달력은 가정집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나의 할아버지처럼 당당히 한복 입은 여배우, 수영복 입은 여배우 가리지 않고 걸 수 있었던 사람은 많지 않았다.


사계절의 멋진 풍경사진, 조선시대 화가의 수묵화나 서체의 달력에서는 날짜가 몇 발자국 밀리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흔하게 접할 수 없던 그림이나 서체는 깔끔하게 잘라 액자에 넣어 나의 아버지는 서재의 한쪽 벽에 걸어두었다. 아버지만의 즐거움이셨다. 나도 중학교 시절 불국사의 가을 단풍 사진을 오려서 벽에 붙여둔 적이 있었다. 어릴 적 부모님과 갔었던 불국사와 석굴암의 풍경은 어린 내 눈에도 쉬이 잊히지 않는 절경이었다. 하지만 우리 집 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누가 봐도 방문 증거용이었지 그 풍경의 웅장함을 보여주진 못했다. 달력에 있던 불국사의 사진은 그 후로도 몇 해 동안 내 바카라상 위에 붙어 있었다. 이런 달력은 명백히 선택받은 이유가 날짜보다 사진이었고 나에게도 아버지에게도 단순한 달력이상의 쓸모였다.






나의 첫째와 둘째가 초등학교 1, 2학년이었을 때였다. 외할머니로부터 선물 받은 침대는 서랍처럼 아래에서 침대프레임이 나오던 이 층침대였다. 아이들은 더위를 유난히 탔고 차가운 벽에 붙어 창문에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차지하고 싶은 욕심에 자꾸만 한 자리를 두고 다툼이 생겼었다. 어쩔 수가 없었다.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숫자만 커다란 달력을 거실 한편에 걸고 나는 아이들의 이름을 날짜 아래에 적었다. 하루 건너 하루씩 창문아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도록 했다. 며칠 집을 비울 경우를 대비해 달력에 표를 했어야만 했다. 사람의 기억은 필요에 따라 굴절되거나 변질될 수도 있는 것이니까.


두 딸들에게 달력은 그렇게 다가갔었다. 각자의 침대가 생긴 후에도 딸들은 사진이 없는 큰 숫자의 달력을 자신들의 방에 걸고 싶어 했다. 그리고 날짜아래 많은 메모를 남겼다. 친구와의 약속, 시험기간, 엄마인 내가 구두로 한 약속도 마치 증거가 필요한 듯 메모했다. 그리고 잊지 말라고 반복해서 상기시켰다. 처음부터 그 아이들에게 달력은 그런 용도였고 그래서 그런 용도로 사용할 달력이 매번 필요했던 것 같다.


나의 할머니는 누구보다 달력에 진심이셨다. 월력이 아닌 일력을 내내 고집하셨다, 매일 한 장씩 찢어내야 하는 얇은 종이의 365장의 달력말이다. 다이어리 같은 달력은 생각보다 쉽게 손 이 가지 않는다. 그래서 한 번에 밀린 달력을 뜯기도 한다. 다이어리를 매일 적고 관리하는 것이 힘들듯이 말이다. 그런데 할머니는 그런 일력이 좋다고 하셨다. 큼지막한 글자가 멀리서도 확인하기 쉽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셨지만 내가 생각하는 진짜 이유는 이어지는 뒷말 같았다. “그 두텁던 달력이 점점 없어지잖아. 그러면 세월 가는 게 보여” 나이만큼의 속도로 내달리는 빠른 세월을 눈으로라도 쫒고 싶으시다는 하소연. 울컥 올라오는 연민에 나는 그 이후 일력을 쓰지 않았다.






내가 눈으로 보고 사용했던 달력만 해도 그 형태와 크기가 아주 다양했다. 세로가 길쭉한 모양, 일 년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새겨 넣은 한 장짜리 달력, 꼬박꼬박 확인해야 하는 하루 달력, 그리고 개인 만을 위한 탁상 달력까지. 하지만 그래도 달력은 달력이다. 무엇이 먼저 눈에 들어오든 궁극적으로는 숫자를 찾는다. 숫자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이달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오늘은 당신에게 특별한 날임을 잊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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