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by서화

퇴근길의 마을버스가 유난히 덜컹거리며 고단한 날이었다. 작은 버스는 언덕을 숨차했고 지팡이에 의지한 노인의 걸음처럼 더뎠다. 젖 먹던 힘까지 써가며 출발하지만 이내 다시 멈추어 사람들을 삼키고 토해내고 속이 거북한 거북이 같다. 그날은 내 육신도 버스처럼 늘어져 있었다. 의자에 앉았지만 기댈 곳도 필요했다. 덜컹거릴 때마다 창문에 머리를 찧었지만 떼지 않고 기대고 있었다. 아침부터 비가 올 듯 시커먼 하늘 탓을 하며 즐거울 거리를 찾아 헤맨 하루의 끝이었다. 그런 날이 있다. 잘 살고 있다고 스스로 다독이지 않아도 무의식처럼 장착하고 있던 씩씩한 마음을 아무리 헤집어도 찾을 수 없는 그런 맥 빠지는 날 말이다.


소형의 마을버스는 정류장 사이의 거리가 짧은 만큼 타고 내리는 사람들 수의 변화가 순식간이다. 탈 때는 천장 쪽 손잡이를 잡은 손 하나에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고 버티며 서 있어야 할 만큼 복잡하다가도 서너 코스 사이에 빈 공간이 커져 자리를 잡고 앉을 수도 있다. 이제는 여유 있게 가겠구나 싶다가도 두어 코스를 가면 또다시 각자의 방향으로 손잡이를 잡고 있는 이들로 반대편 풍경이 가려지며 그득하게 채워지곤 한다. 보통의 나의 퇴근길은 오늘 같지 않다. 퇴근길 버스 안에서는 이어폰을 꺼내 음악을 듣곤 했다. 눈을 감곤 했다. 그 음악으로 흔들리는 나의 퇴근길이 신나고 평화로워 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분위기를 만들기도 했었다.






그날은 이어폰을 챙겨 오지 못했다.

‘환승입니다’ ‘하차입니다’ 그 소리가 더 크게 들렸고 나는 내 옆에 서 있던 아주머니의 전화통화를 직관하고 있었다. 들고 있던 가방을 아예 바닥에 놓아 다리 사이에 끼우더니 그녀는 서너 코스를 지나치는 동안 친구와의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다 같이 모일 수 있으면 그때로 하자”

‘모임날짜를 정하나 보네’

“나는 괜찮아. 사는 게 그렇지 뭐. 걱정하지 마”

‘걱정거리가 있구나. 아이고 세상은 온통 걱정거리구만’

목소리가 크지도 거칠지도 않아 불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갈라진 그녀의 목소리가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메말라 쪼그라들고 있는 우리 집 베란다의 문주란의 겉잎처럼 서걱서걱 부서지는 소리였다.

올려다보면 실례일 것 같아 등을 세우고 좌석 손잡이에 올린 왼손을 무릎 위 가방 위로 조심스레 가져왔다. 그녀가 손잡이에 다리를 기댈 수 있도록.


마을버스는 종점이 가까워지고 있다. 사람이 급속하게 줄어든다. 통화를 하던 아주머니는 내 앞 좌석에 앉아 있다. 나는 고개를 왼쪽으로 천천히 돌리며 버스 안을 둘러보았다. 좌석이 많지 않은 버스라서 붐비지는 않지만 서 있는 이도 몇 있다. 버스 안은 조용했다. 사람들이 내는 소음은 없지만 과속 방지턱을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리는 버스는 자꾸만 몸전체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떨어지며 내 던져지듯 흔들리고 있었다.

10여 명 정도가 있었다. 앉은 이들 대부분 핸드폰을 보고 있었고 서 있는 이들 중에도 그러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가 노인이었다. 더 정확히는 머리가 희끗희끗했고 목에 주름이 많았으며 꾸부정한 자세로 앉거나 서있었다. 하나같이 나를 닮아 있었다.






한 손에 가방을 들고 손잡이를 붙잡고 있던 다른 손으로 바지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드는 아저씨의 몸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핸드백과 장바구니를 허벅지 위에 얹고 눈을 감고 앉아 있는 왼편의 아주머니는 나보다 한참 언니 같아 보였다. 퇴근시간 버스 안의 평균 연령이 높았다. 나도 일조하고 있었지만 마치 비슷한 연령들만 골라 태운 듯했다. 별생각 다한다 싶어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노인은 아니지만 노인이 되고 있는 이들도 여전히 잘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 연대의식이 느껴졌다고 한다면 내가 너무 감성적인 것일까. 버스는 여전히 흔들리며 가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내 옆을 스쳐 걸어가는 이들을 눈으로 좇으며 나는 인사를 전했다.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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