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의 춤과 가족의 향기

극립극장 더블빌 시나위 공연을 보고

by담서제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으로 들어서는 발걸음에는 유독 경쾌한 울림이 있었다. 공연 시작 40분 전, 비교적 여유 있게 도착한 로비는 다가올 무대의 열기를 미리 머금은 듯 은은한 설렘으로 차오르고 있었다.


극장에 오기 전 점심을 먹었던 DDP 근처의 작은 꽃집이 떠올랐다. 알록달록 계절의 빛깔을 품은 꽃 한 다발을 품에 안았을 때부터 이미 오늘의 여정은 기분 좋은 기대감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해오름극장에서의 공연 관람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웅장하면서도 포근하게 방문객을 감싸 안는 공간의 기운 속에 설렘과 기대는 더욱 커져만 갔다.


예매해 둔 티켓을 찾아 손에 쥐고, 오늘의 기억을 예쁘게 남기고자 홍보부스 앞으로 향했다. 카메라 렌즈를 향해 포즈를 취하며 한창 사진을 찍고 있던 그때, 곁에 있던 아들이 나지막이 내 팔을 건드렸다.


"엄마, 저기 선생님이신데요."

아들의 손짓을 따라 시선을 돌린 순간, 그곳에는 한국무용의 거장, 배정혜 선생님이 계셨다. 반가운 마음이 앞서 나도 모르게 선생님을 와락 껴안고 말았다. 품 안에 전해지는 따스한 온기와 함께 반가운 웃음꽃이 피어났다.


선생님에게 나의 가족들을 소개했다. 든든한 남편과 아들, 예쁜 며느리와 딸까지. 가족 하나하나를 다정하게 바라봐 주시는 선생님의 눈빛 속에 감사함이 가득 고였다. 다 함께 카메라를 향해 웃음을 지으며 찍은 한 장의 사진은, 공연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오늘 하루를 가장 찬란한 기억으로 기록해 주었다.


이날의 공연은 국립무용단의 〈더블빌·시나위〉였다. '더블빌'이라는 이름처럼 한 무대에 서로 다른 두 작품이 나란히 오르는 구성으로 1부는 젊은 안무가 배진호가 2부는 한국무용의 거장 배정혜 안무가가 맡았다. 세대가 다른 두 안무가가 같은 시나위를 어떻게 풀어낼지, 그 대비를 지켜보는 일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곧이어 객석의 조명이 어두워지고 무대의 막이 올랐다. 내 생애 처음으로 직면하는 한국무용의 세계였다. 사실 그동안 한국무용이라 하면 정적이고 아득한 옛것이라는 막연한 편견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대 위에 펼쳐진 1부는 나의 그런 어설픈 선입견을 한순간에 산산조각 내었다. 젊은 안무가 배진호의 무대는 전통의 가락 위에 올라앉은 몸짓은 낯설면서도 신선했고, 오래된 것을 오늘의 감각으로 다시 쓰는 젊은 시선이 객석을 팽팽하게 당기고 있었다. 한국무용이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지금도 자라고 있는 예술이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알게 해준 시간이었다.


짧은 휴식 시간, 로비에서 가족들과 1부의 여운을 나누었다. 같은 무대를 보고 나온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장면을 이야기하는 풍경이 새삼 정겨웠다.


그리고 2부, 배정혜 선생님의 무대가 열렸다. 무대 위에서 흘러나오는 시나위 음악은 살아 숨 쉬는 생명체처럼 자유롭게 요동쳤다. 정해진 틀에 얽매이지 않고 연주자들의 호흡에 따라 번져가는 가락 위에, 무용수들의 몸짓이 하나의 시가 되어 얹혀졌다.


1부가 새로운 감각으로 전통을 향해 걸어갔다면, 2부는 수십 년 세월을 한 길로 걸어온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깊이로 전통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춤사위 하나하나에는 한국 고유의 맺고 풀어짐, 이른바 '한(恨)'과 '흥(興)'의 정서가 공존했다.


땅을 굳건히 딛는 발걸음은 절제된 힘을 품고 있었고, 공중을 가르는 팔사위는 마치 바람을 타고 흐르는 비단실처럼 부드럽고 경이로웠다.


배정혜 선생님의 숨결이 녹아있는 무대는 단지 과거의 전통을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지극히 현대적이었으며, 동시에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감정을 두드리는 강렬한 울림이었다.


혼돈 속에서 조화를 찾아가는 시나위의 본질처럼, 무용수들의 격정적인 움직임과 고요한 정적은 무대 위에서 완벽하게 '더불어' 어우러졌다. 숨을 죽이고 무대를 바라보는 동안,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그것은 아름다움이 인간의 영혼에 닿았을 때 비로소 터져 나오는 순수한 감동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객석을 채운 뜨거운 박수갈채 속에서, 나는 문득 오늘 하루 나에게 찾아온 이 기적 같은 시간들을 되짚어보았다. 젊은 안무가의 도전과 거장의 세월이 한 무대에서 만나던 두 시간, 그 사이에 우리 가족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한국무용의 거장이신 배정혜 선생님이 계셨기에 가능했던 하루였다. 선생님의 예술이 불러모은 끌림 덕분에, 각자의 일상으로 바빴던 온 가족이 서울 한복판에서 모일 수 있었다.


함께 따뜻한 점심을 먹고, 정겨운 담소를 나누며 차를 마시고, 마침내 하나의 감동을 공유하며 같은 무대를 바라본 이 모든 순간들. DDP인근에서 사 온 꽃다발의 향기처럼, 오늘 하루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향기롭게 피어났다.


예술은 때로 무대 위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삶의 순간들을 빛나게 만들어주는 선물과도 같다.


생애 첫 한국무용이 남겨준 묵직한 울림, 그리고 배정혜 선생님이라는 거장 덕분에 얻게 된 가족과의 귀한 시간. 국립극장을 나서는 공기는 유난히 달콤했고, 가슴속에는 오래도록 꺼지지 않을 감사함과 고마움의 등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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