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내 애착 겨울 롱코트를 찾았다. 수영장에서 집으로 오는 길, 나는 주문을 외우듯 같은 말을 되뇌었다. 수영장 갔다 오는 길에 세탁소 들르기. 잊지 말고 꼭 찾아오기.
계절이 두 번 바뀌고서야 찾아가는 겨울옷이다. 세탁소 문을 열며 "늦게 와서 미안해요" 하고 멋쩍게 인사를 건넸다. 주인은 늘 있는 일이라는 듯 웃었다.
"겨울옷은 원래 천천히 찾아가세요."
그 한마디에 송구함이 눈 녹듯 풀렸다. 주인은 비닐을 씌운 옷들 사이에서 내 롱코트를 쓱 뽑아 건네주었다. 아이보리빛 누비가 비닐 안에서 묵직하게 출렁였다.
오른쪽 어깨에는 젖은 수영복과 수건이 든 가방을 메고, 왼손으로는 코트를 받쳐 들었다. 옷자락이 길바닥에 끌릴까 봐 손목을 한껏 올려 걸었다. 비닐 스치는 소리가 걸음마다 따라왔다. 그러다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 엄마였다.
어릴 적 엄마의 옷장에는 계절마다 정리해 둔 새 옷이 줄지어 있었다. 그런데도 엄마는 날마다 손때 묻은 그 옷만 입고 나가셨다. 어린 마음에 그게 속상해서 한 번은 투정을 부렸다.
"엄마, 옷장에 새 옷 많잖아요. 왜 맨날 같은 옷만 입어?" 엄마는 나를 보며 환하게 웃으셨다.
"나는 이 옷이 편하고 좋다."
그때는 그 말이 아끼느라 하는 말인 줄 알았다. 자식들 입히고 먹이느라 당신 몫은 늘 뒤로 미루는 사람의 말이려니 했다. 비닐에 싸인 코트를 들고 걷는 길, 엄마의 그 웃음 속에 숨어 있는 의미가 다르게 다가왔다.
엄마에게 그 옷은 편한 옷 한 벌이 아니었을 것이다. 여러 해를 함께 건너는 동안 몸에 익은 감촉, 소매에 배어든 시간, 입고 나서면 왠지 편안하게 느껴지는 든든함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엄마의 옷은 가장 작고 따뜻한 집이었다.
내게는 이 코트가 그렇다. 2024년 1월, 정년퇴직하고 이틀 뒤에 나는 이탈리아행 비행기를 탔다. 서른 해 가까이 짊어졌던 직함과 바카라임을 내려놓고, 이름 석 자만 남은 채 낯선 땅에 섰다. 그 겨울 내내 이 코트가 나를 감싸고 있었다.
로마의 돌길을 걸을 때도, 피렌체의 붉은 지붕 위로 찬바람이 불어올 때도 그랬다. 쓸쓸함과 설렘이 한꺼번에 밀려와 가슴이 떨리던 날에는 옷깃을 여미며 걸었다. 누비 사이사이로 그 겨울의 바람이 스며들었다.
두 번째 계절이 막 시작되던 때였다. 공허하면서도 가벼웠던 그 겨울, 코트는 한 번도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옷깃을 올릴 때마다 손끝에 닿던 촉감 속에는 낯선 도시의 냄새와, 다시 길로 나서던 내 작은 용기들이 함께 들어 있었다.
남들 눈에는 철 지난 묵직한 롱코트일뿐이겠지만, 나는 이 옷을 입고 가장 낯선 곳에서 가장 나다운 걸음을 걸었다.
집 앞에 들어서며 왼손에 힘을 한 번 더 주었다. 비닐 소리 너머에서 엄마의 웃음이 들리는 듯했다. 나는 혼잣말처럼 대꾸했다.
"엄마, 나도 이 옷이 편하고 좋아."
올겨울에도 나는 이 코트를 꺼내 입을 것이다. 소매 끝에 남은 이탈리아의 바람을 한 번 쓸어 보고, 엄마가 그러셨듯 환하게 웃으며 문을 나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