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의 속도

수영을 통해 배운

by담서제미

수영을 시작한 지 일 년이 넘었다. 처음 물가에 섰을 때, 물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얼굴을 담그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코로 물이 들어올까 숨을 참고 온몸에 힘을 주었으니, 몸은 가라앉기도 전에 먼저 굳어 버렸다.


물과 친해지기는커녕 떠 있는 것만으로도 신경이 곤두섰다. 레인 끝에서 물을 헤치고 나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도 언젠가 저렇게 될 수 있을까, 막연히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조금씩 달라졌다. 물에 들어서는 걸음이 가벼워졌고, 몸을 맡기면 마음이 먼저 편안해졌다. 물이 나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받쳐 준다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물공포증에서 벗어나 자유형과 배영, 평영을 지나 지금은 접영을 연습하고 있다.


물론 일 년이 넘었다고 실력이 남보다 뛰어난 것은 아니다. 옆 레인에서 물살을 가르는 사람들을 보면 여전히 부럽다. 팔을 뻗고 발을 차는 모습이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물 다루는 법이 처음부터 몸에 새겨져 있었던 것만 같다.


하지만 비교대상을 바꾸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남과 나를 비교하면 부족하지만,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견주면 변화가 또렷하다. 얼굴을 담그기도 두려워하던 사람이 물속에서 숨을 고르고, 영법을 하나씩 익히고, 접영 앞에 서 있다. 예전의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한 일이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기쁘다.


수영장에서 보니 사람마다 배우는 속도가 달랐다. 나처럼 일 년이 넘어서야 접영을 연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 달 만에 자유형과 배영, 평영을 마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이는 몇 번 해 보고 동작을 척척 해내고, 어떤 이는 같은 동작을 수십 번 되풀이해도 몸이 따라 주지 않는다. 같은 물에서 같은 강사의 말을 듣는데도 결과는 제각각이다. 몸의 조건도, 두려움의 크기도, 익숙해지는 방식도 저마다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에는 더딘 내가 마음에 걸렸다. 다들 저만큼 나아가는데 나는 왜 아직 이럴까. 남들은 쉽게 하는 일을 나는 왜 이리 어렵게 배울까. 잘하는 사람을 보면 조급해졌다. 수영 실력보다 남들만큼 하지 못한다는 마음이 나를 더 불안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물은 누구에게나 같은 속도로 길을 내어 주지 않았다. 누구는 물살을 가르며 앞서가고, 누구는 뜨는 법을 익히며 천천히 나아간다. 뒤처졌다고 그 자리에 영영 머무는 것은 아니다. 오늘 뜨는 법을 익힌 사람은 내일 한 팔을 뻗고, 그다음 날 한 번 더 발을 찬다.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은 변화가 쌓여, 어느 날 물속에서 어제와 다른 나를 만난다.


생각해 보면 삶도 그렇다. 이른 나이에 제 길을 찾는 사람이 있고, 오랜 방황 끝에 원하는 삶에 닿는 사람이 있다. 일찍 성공을 맛보는 사람이 있고, 실패와 좌절을 거듭한 뒤에야 자기 열매를 맺는 사람이 있다. 남이 앞서가는 모습에 마음이 급해지는 것도 수영장과 다르지 않다.


세상은 늘 속도를 묻는다. 얼마나 빨리 배웠는지, 얼마나 일찍 올랐는지. 그 물음 앞에서 우리는 남의 시간을 잣대 삼아 제 삶을 잰다. 늦으면 불안하고 모자라면 초라해져서, 정작 내가 이룬 작은 변화는 보지 못한다.


그런데 얼마나 빨리 도착했느냐보다, 두려워하던 자리에서 얼마나 멀리 걸어 나왔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수영은 내게 그것을 가르쳐 주었다. 물이 무섭던 내가 물속에서 편안해지기까지, 자유형에서 접영에 이르기까지, 그 시간은 남에게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별것 아닌 일이 내게는 큰 용기가 필요했고, 누군가에게 쉬운 동작이 내게는 수없이 되풀이해야 할 숙제였다. 그래도 느린 시간이 헛된 것은 아니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사이 몸은 물을 조금씩 기억했고, 두려움은 옅어졌으며, 못 한다고 여긴 일이 하나둘 해 볼 만한 일로 바뀌었다.


그러니 조금 느려도 괜찮다고 말해 주고 싶다. 접영이 서툴러도, 옆 레인 사람이 나보다 훨씬 잘해도 괜찮다. 나는 내 속도로 배우고 있으니까.


오늘도 수영장에 간다. 덜 익은 동작을 연습하고, 뜻대로 되지 않는 순간을 지나 다시 물속으로 들어간다. 내일도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어제보다 조금 더 편안히 물속에 머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모든 사람이 같은 속도로 헤엄칠 필요는 없다. 누구는 빠르게, 누구는 천천히 나아간다. 남을 앞서는 일보다 어제의 나를 넘어서는 일이 내게는 더 값지다.


인생이라는 긴 수영장에서, 이제는 남의 속도 대신 내 호흡에 마음을 두고 싶다. 도착할 곳을 서두르기보다 지금 건너는 물결을 온전히 느끼며, 내게 주어진 속도로, 내게 허락된 힘만큼, 오래도록 나답게 나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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