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야, 김치통 가져와라.”
핸드폰이 울려서 받으니 친정엄마다.
“김치통은 뭐 하게요?”
“우리 손자며느리도 온디 새 김치 담아서 우리도 먹고, 보내기도 하게야.”
나는 부랴부랴 엘리베이터를 타고 엄마 곁으로 갔다.
“엄마, 힘들잖아. 이제 하지 마. 자식들이 하면 되지.”
몇 번을 말해도 소용이 없었다. 엄마는 이미 절인 배추를 앞에 놓고 양념을 버무리고 있었다. 붉은 고춧가루 양념이 엄마의 손등이며 손가락 사이사이에 묻어났다.
얼마 전에는 파김치를 담갔다. 어제는 갈비를 했다. 그리고 오늘은 기어이 배추김치까지 담근다.
“엄마, 이제 우리한테 맡겨. 힘들어서 안 돼.”
그러자 엄마가 한마디 하신다.
“내가 할 수 있을 때 내 손으로 하나라도 해서 어디들에게 먹이고 싶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먹먹해졌다.
엄마에게 음식은 음식이 아니었다. 김치 한 통은 자식에게 보내는 마음이었고, 갈비 한 냄비는 손주에게 건네는 사랑이었다. 파김치 한 봉지는 “잘 먹고 다녀라” 하는 말 대신 건네는 엄마의 마음이었다.
나는 엄마 옆에 앉았다.
“엄마, 나랑 같이 비비면 빨리 끝나니 같이 해요.”
절인 배추 한 포기를 들어 양념을 골고루 발랐다. 엄마와 내가 나란히 앉아 김치를 버무렸다.
어릴 때 나는 엄마가 해주는 음식이 당연한 줄 알았다. 김치가 떨어지면 엄마가 담그는 것이 당연했고, 명절이면 갈비며 전이며 잡채가 식탁에 올라오는 것이 당연했다. 김치통이 비면 채워졌고, 냉장고에 먹을 것이 떨어질 즈음이면 어김없이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이 엄마의 사랑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엄마가 허리가 아픈지, 손목이 쑤시는지, 무릎이 성한 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엄마는 늘 그 자리에 있었고, 엄마가 해주는 음식은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세월은 누구도 기다려주지 않았다. 예전에는 무심하게 지나쳤던 엄마의 손을 한참 바라보았다.
굵어진 손마디, 깊어진 손등의 주름, 양념에 붉게 물든 손톱. 그 손이 평생 우리를 먹여 살렸다.
밥을 지어 먹이고, 옷을 입히고, 아픈 날이면 약을 챙겨주고, 좋은 것이 생기면 자식부터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는 몸이 예전 같지 않은데도 여전히 자식에게 무엇인가를 해주려고 한다.
왜일까. 아마 부모의 사랑에는 ‘이제 그만’이라는 말이 잘 통하지 않는 모양이다. 자식이 다 컸어도 자식이고, 자식이 가정을 꾸려도 자식이고, 손자며느리가 생겨도 여전히 걱정되는 자식이다.
내가 받은 사랑도 그렇게 흘러왔을 것이다. 그저 엄마니까, 부모니까 해야 하는 일이라고만 여겼던 것. 부모의 사랑은 대부분 ‘해야 할 일’이라는 이름을 하고 우리 곁에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너무 늦게 알아차린다.
엄마가 버무린 김치를 김치통에 차곡차곡 담았다. 엄마는 통에 가득 김치를 담으며 환하게 웃으셨다. 그 웃음 앞에서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 김치를 우리가 몇 번이나 더 먹을 수 있을까. 엄마가 담근 김치를 앞으로 몇 번이나 받을 수 있을까. 요즘은 그런 생각이 순간순간 떠오른다.
그래서 이제는 엄마가 해주는 음식 하나도 예전처럼 먹을 수가 없다. 김치 한 조각에서도 엄마의 손이 먼저 만져지고, 갈비 한 점에서도 그것을 준비했을 시간이 먼저 느껴진다.
부모님의 사랑은 김치와도 닮았다. 곁에 있을 때는 몰랐던 맛이, 멀어지고 나서야 오래도록 입안에 남는다.
김치 한 통을 받아 들고 돌아오는 길, 김치통보다 더 무거운 것을 들고 온 것 같았다. 평생 자식에게 퍼주고도 모자라, 아직도 줄 것이 남았다고 생각하는 마음.
그 마음을 다 갚을 수 있을까. 아마 갚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저 엄마가 살아 계실 때 더 많이 옆에 앉고, 엄마의 손을 한 번이라도 더 잡고, “엄마, 맛있어”라는 말을 한 번이라도 더 해드리는 것. 그리고 엄마가 마지막까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조금은 기다려주는 것.
오늘 나는 엄마 옆에 앉아 김치를 버무렸다. 붉은 양념이 손에 묻었다. 씻으면 사라질 양념 밑에, 평생 씻어도 씻기지 않는 것 하나가 남아 있었다. 그것은 평생 내게 건네준 엄마의 사랑이었다.
ps) 행복 가득한 명절 보내세요. 명절 끝나고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