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이 주는 기쁨

by담서제미

딸의 친구에게 꽃 선물을 받았다. "이거요" 하며 내미는 손끝에 수줍음이 묻어 있었다. 꽃다발은 크지 않았다. 노란 튤립 몇 송이에 분홍빛과 붉은빛 장미, 보랏빛 리모니움, 분홍으로 물든 안개꽃이 소박하게 묶여 있었다.


마침 화병이 비어 있었다. 연분홍과 연둣빛 꽃무늬가 빛바랜 채 금 간 유약 아래로 스며 있는 꽃병이다. 여행길에 "여기에 꽃을 꽂아야지" 하며 사 둔 것이었다. 물을 채우고 꽃을 한 송이씩 꽂았다. 줄기를 어슷하게 자르고 웃자란 잎을 떼어 냈다. 천천히, 천천히.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다 꽂고 한 걸음 물러나 바라보았다. 옆에는 벽에 기대어 세워 둔 그림이 있다. 푸른 하늘 아래 청록빛 들판에 작은 사람들이 점점이 흩어진 그림이다. 그 곁에는 늘 그 자리를 지키는 하얀 아기 조각과 검은 목마가 있다. 오래도록 변함없던 것들 사이로 노란 튤립이 들어서자 봄이 되었다. 거실이 환해졌다.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는데 어디선가 달큼하고 향긋한 냄새가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장미의 향이었을까, 튤립의 향이었을까. 하나를 집어낼 수 없었다. 여러 꽃의 숨이 섞여 방 안 공기를 천천히 물들이고 있었다. 눈으로 보는 기쁨이 잠깐이라면 향기의 기쁨은 머무는 것이었다. 보지 않아도 곁에 있었고, 다른 일을 하는 중에도 함께 있었다.


직업상 오랫동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삶이 크게 흔들린 사람들은 대개 큰 것에서 답을 찾으려 했다. 큰 결심과 큰 변화, 한 번에 모든 것을 바꿀 결정적인 계기 같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상담실을 나서며 표정에 변화가 생긴 순간은 의외로 작은 데서 왔다. 누군가 건넨 따뜻한 물 한 잔, 잘하고 있다는 짧은 한마디 같은 것이었다. 삶은 큰 사건보다 작은 온기의 총합으로 굴러간다는 것을 나는 그때 이미 배웠다. 그런데도 정작 내 일상에서는 자주 잊고 지냈다.


어둠이 내리고 불을 켜자 꽃은 또 다른 얼굴이 되었다. 낮에 선명하던 노랑은 한 톤 가라앉고, 안개꽃의 분홍이 은은한 안개처럼 번졌다. 벽에 드리운 꽃 그림자가 조금씩 흔들렸다. 나는 한참을 그 앞에 서 있었다.


꽃은 일주일쯤 가겠지만, 물을 갈아 주고 줄기를 다시 잘라 주면 며칠은 더 곁에 있어 줄 것이다. 그 며칠 동안 나는 아침마다 거실에 나와 꽃에게 먼저 인사를 건넬 것이다. 하루의 첫 장면이 꽃이라니, 이 얼마나 근사한가.


기쁨은 멀리 있지 않았다. 딸의 친구가 건넨 작은 다발이 온 집 안을 향기로 채우고 있다. 소소한 즐거움이 이렇게 오래 남을 줄 몰랐다. 오늘 내 거실에는 작은 기쁨이 별처럼 피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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