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의 시대 삶을 껴안는 새벽

찰스 디킨스, 두 도시이야기

by담서제미

새벽 다섯 시, 도시의 소음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는 시간. 베란다 폴딩도어를 열었다. 찬 공기가 훅 밀려들었다. 놀이터라 부르는 그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열다 말고, 옆에 놓인 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에 눈이 머물렀다. 바카라갈피는 84쪽에 꽂혀 있었다. 이어 읽을까 하다가 첫 문장으로 되돌아갔다.


"최고의 시대이자 최악의 시대요. 지혜의 시절이자 어리석음의 시절이 있었으며, 믿음의 세월이자 회의의 세월이요,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고, 희망의 봄이자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모든 것이 있으면서 아무것도 없었고, 우리는 모두 곧장 천국을 향해 가고 있으면서도 곧장 지옥으로 가고 있었다."


18세기 프랑스를 통과하던 그 문장이, 21세기 새벽 여명 속에서 다시 살아났다. 디킨스는 옛 시대의 혼란을 기록한 게 아니었다. 인간이 존재하는 모든 순간에 깃든 모순을 붙잡아둔 것이었다.


삶을 선형의 궤적으로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어두운 밤이 지나면 찬란한 아침이 오고, 시련을 견디면 명확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믿고 싶은 마음. 그러나 하루는 단 한순간도 하나의 색으로만 채워지지 않는다. 최고의 순간 속에도 몰락의 씨앗이 조용히 움트고, 최악의 절망 한가운데서도 구원의 싹이 튼다.


새벽마다 나는 믿음과 회의 사이를 휘청거리며 걷는다. 내일에 대한 희망을 품었다가도 불쑥 찾아오는 불안에 무릎이 꺾인다. 나를 영원히 이끌어갈 것 같던 열정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어 갈팡질팡하기도 한다.


이 양극단 사이에서 삶을 어떻게 견뎌내야 할까. 답은 하나로 융합되지 않는다. 삶이란 본래 거대한 모순의 두 축 사이에서 팽팽하게 당겨진 현악기의 줄과 같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 깊이는 시작된다.


희망의 봄만 탐하는 이는 계절의 순환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둠의 계절에 압도당하는 이는 땅속에서 숨 쉬는 뿌리의 힘을 잊는다. 최고의 시대라는 자만도, 최악의 시대라는 비관도 삶의 절반만 바라보는 조급 함일 뿐이다.


지혜와 어리석음, 빛과 어둠, 천국과 지옥은 따로 떨어진 별개의 세계가 아니다. 동전 하나가 굴러갈 때 앞면과 뒷면이 찰나마다 번갈아 햇빛을 받는 모양과 같다.


새벽의 어둠이 가장 짙어지는 이 순간, 창밖의 고요는 역설적으로 곧 찾아올 아침의 분주함을 증명한다. 나의 어제는 회의와 불안이 가득한 겨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디킨스의 문장이 건네는 위로는, 지옥으로 향하는 듯한 순간에도 동시에 천국을 향한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 그 자체다. 삶의 비극은 어둠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빛이 올 거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데 있다.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가 짙어진다. 내 삶의 어둠이 짙다는 것은, 그만큼 가까운 곳에 거대한 빛이 있다는 역설적인 증거일 것이다.


창문 틈새로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스며든다. 최고의 시대도, 최악의 시대도 아닌 그저 견디고 살아내야 할 '나의 시대'가 다시 시작되고 있다. 이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나는 다시 한번 소용돌이치는 하루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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