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빗금

by담서제미

새벽이 지나간 자리, 고요가 조용히 밀려든다. 바카라상 위에 무심히 놓인 연필 한 자루, 그 곁에 식어가는 찻잔. 사물들은 저마다 완벽한 이름과 쓰임을 품은 채 침묵한다.


변하지도 흔들리지도 않는 그 완결성을, 사르트르는 '즉자존재(In-itself)'라 불렀다. 제 몫을 이미 다 태우고 정지해 있는 사물들의 평온.


그러나 문득 안을 들여다보면 그곳엔 어떤 단어로도 담아낼 수 없는 막막한 여백이 출렁인다. 인간은 설명서도 도안도 쥐지 못한 채 삶이라는 바다 위로 던져진 '대자존재(For-itself)'다.


태어나는 순간 정해진 목적을 부여받지 않는다. 그저 존재한다는 서러운 사실 하나를 끌어안고, 매 순간 자의식의 촛불을 켠 채 스스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되물으며 나아갈 뿐이다.


사물은 이미 완성되어 있기에 고민하지 않는다. 찻잔은 음료를 담는 일로 족하고, 연필은 종이 위를 구르는 일로 충분하다. 그러나 정해진 결말도 본질도 없는 인간의 삶은 언제나 미완성이라는 불안의 그늘을 동반한다.


완전함을 향해 끊임없이 손을 뻗지만, 숨을 쉬고 있는 동안엔 결코 마침표를 찍지 못한다. 삶이 굳어져 하나의 단단한 사물처럼 완결되는 순간은, 역설적이게도 모든 가능성이 닫히는 죽음뿐이다.


그렇기에 살아있음의 증거는, 우리에게 허락된 미완성의 빈자리에 있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 완벽한 틀에 갇히지 않았다는 것은 곧 무한한 선택의 자유와 고결한 바카라임이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뜻이다.


텅 빈 도화지 위에 매일 새로운 색채를 덧칠하는 일이 삶이다. 때로는 슬픔으로 붓자국이 어지러워지고, 야심 차게 그린 소망들이 미완의 숙제로 남아 마음에 잔물결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돌아보면 삶이라는 작품을 눈부시게 채우는 것은 깨끗이 정돈된 완성의 마침표가 아니다. 완전함에 도달하지 못해 삐뚤빼뚤 흔들렸던 그 모든 미완의 빗금과 흔적들이다.


오늘 우리가 겪는 방황과 미숙은 무능함의 표식이 아니다. 고정된 틀을 거부하고 스스로를 피워내려 애쓰는, 대자존재만이 지닌 위대한 특권이다. 완성된 사물의 고요함을 부러워하기보다, 불안하지만 자유롭게 스스로를 재창조해 나가는 이 미완의 삶을 깊이 끌어안는다.


원고지 위에서 마침표를 망설이던 손길을 거두고, 가만히 펜을 내려놓는다. 아직 굳어지지 않은 문장들이 새벽빛을 받아 조용히 숨을 쉰다.


완성이 명확한 선으로 그어진 닫힌 울타리라면, 미완성은 지평선 너머로 열린 무한의 문이다. 삶이 비어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완성되지 않았기에 우리는 내일 또 다른 꿈을 꿀 수 있고, 쓰다 만 생의 페이지 위에 새로운 문장을 얹을 수 있다. 닫히지 않은 이 여백 속에서, 우리의 삶은 오늘도 마침표 없는 시가 되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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