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을 같이 하는 사람들
돌아오는 차 안, 창밖의 하늘은 시시각각 구름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가슴 한구석이 따뜻하면서도 아련한 온기로 가득 차 있었다.
지난 주말, 우리는 대전으로 향했다. 빽빽한 온라인 게임 울타리 안에서 처음 만났던 우리가, 같은 과 바카라상에 머리를 맞대고 서류 더미와 싸우던 것이 어느덧 20년 전 일이다. 그 긴 시간 서로의 삶을 지켜봐 온 귀한 인연 중 한 사람, 옛 동료였던 딸 결혼식이 있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르고, 또 무심하게 변한다. 우리 모임 사람들은 이제 모두 정년퇴직이든 희망퇴직이든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 치열했던 온라인 게임 생활을 마쳤다.
한때는 매일 아침 얼굴을 마주하며 희로애락을 같이 하던 이들이었지만, 이제는 계급장도, 직함도 내려놓은 완벽한 야인이 되었다. 세월의 무게만큼 눈가와 얼굴에는 주름이 잡혔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만은 20년 전 그 시절에 머물러 있었다.
이번 1박 2일 대전 여정은 거대한 이동 극장 같았다. 한 명은 남편 근무지인 부산에서 출발해 현재 거주 중인 충주를 거쳐 대전으로 올라왔고, 나를 포함한 네 명은 광주에서 차 한 대에 몸을 실어 대전으로 향했다.
멀리서 달려오는 마음과 광주에서 출발하는 마음이 약속 장소인 대전에서 만나 반가움이라는 파도를 만들어냈다.
특히 차 안에서 보낸 시간은 그 자체로 거대한 추억의 장이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내내 수다는 끊이지 않았다. 남들이 들었다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냐"며 고개를 갸웃거렸을지도 모른다. 이야기에는 맥락도 없었고, 거창한 주제도 없었다.
두서없고 산만한 대화가 이어졌지만, 희한하게도 우리 중 누구 하나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람이 없었다. 말의 앞뒤가 맞지 않아도, 맥락을 한참 벗어나도, 우리는 서로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그 단어 뒤에 어떤 마음이 숨어 있는지 완벽하게 이해했다.
그것은 많게는 30년, 적게는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같은 공기를 마시고, 같은 희로애락을 견뎌내며 쌓아 올린 '공유된 추억'이 있기에 가능한 마법이었다.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찰나의 눈빛과 단어 하나로 통하는 사이. 그 시절의 고단함도, 청춘의 열정도, 함께 울고 웃었던 순간들도 모두 그 대화 속에 녹아 있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다음 행선지로 이동을 했다. 간식을 앞에 두고 밤새도록 이어진 수다는 끝나질 않았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은 점점 더 조심스럽고, 안에 들이기가 쉽지 않지만 이들과 함께 있을 때만큼은 아무런 가면도, 어떤 방어기제도 필요 없었다. 나를 가장 나답게 내려놓을 수 있는 공간, 언제나 편안하게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바로 이들이었다.
여행이 끝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오는 길, 아쉬움이 채 가시기 전에 누군가 먼저 입을 뗐다. "우리 다음 여행은 어디로 할까?"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리는 이미 다음 만남 약속을 잡고 있었다. 이 끈끈함과 익숙함이 참으로 고마웠다.
삶이라는 긴 여행길에서 이런 사람들을 곁에 두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내 인생은 헛되지 않았다. 치열했던 온라인 게임 생활이 나에게 남긴 것은 그 시절의 성과도, 통장에 찍힌 퇴직금도 아니었다. 바로 이 '사람들'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삶의 형태는 변해도, 언제나 그 자리에서 서로를 온전히 이해해 주는 편안한 사람들과 함께 돌아오는 길. 가슴속에 차오른 이 따스한 온기를 품고, 나는 벌써 우리들의 다음 여행을 손꼽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