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의 통과의례

계절의 문턱에서 치르는

by담서제미

돌아보면 언제나 그 길목이었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의 찬 기운이 서서히 스며들 때, 혹은 얼었던 땅이 녹고 연두색 싹이 솟아오르는 봄의 초입에 다다를 때면 어김없이 마음 한구석에서 정체 모를 바람이 불어왔다.


딱히 힘든 일이 있는 것도, 사건과 사고가 일어난 것도 아니었다. 그저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이 흐르고 있는데, 내 안에 들어 있는 작은 방 하나가 흔들리며 가라앉았다.


육십 년이라는 긴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나는 많은 계절을 건너왔다. 청춘의 뜨겁던 여름도 있었고, 결실을 맺으며 풍요로웠던 가을도 있었으며, 때로는 매서운 추위 속에 자신을 다잡아야 했던 겨울도 있었다.


그 길고 긴 세월 속에서 나 자신을 가만히 관찰하고 지켜본 결과, 한 가지 분명해진 사실이 있다. 계절과 계절이 서로의 자리를 바꾸는 그 찰나의 문턱마다, 나는 어김없이 마음앓이를 시작한다는 점이다.


젊은 날에는 이 몸살을 두려워했다. "왜 나는 이유도 없이 우울해질까?", "마음 안에 무엇이 들어 있길래 이렇게 파도가 치는 걸까?" 라며 내 안의 장막을 어떻게든 털어내려 애썼다.


괜히 바쁘게 움직여보기도 하고, 사람들을 만나 웃어보기도 했지만, 마음에 내린 안개는 좀처럼 걷히지 않았다. 나이가 들고 삶의 궤적이 겹겹이 쌓이고 나서야 알았다.


이것은 그저 내 몸과 영혼이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감지하고 받아들이며 치르는 무언의 통과의례라는 것을.


나무도 계절을 바꿀 때면 자신만의 통과의례를 거친다. 지난 계절을 지탱해주던 잎을 스스로 떨어뜨려야만 다음 계절을 맞이할 수 있고, 단단한 껍질 속에서 숨을 고르는 시간이 있어야 새순을 틔울 수 있다.


하물며 자연의 일부로 태어나 자연의 순리 속에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이라고 어찌 아무런 흔들림 없이 계절을 맞이할 수 있겠는가.


나에게 있어 계절의 문턱에서 찾아오는 마음앓이는, 지난 시간을 가만히 정리하고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기 위해 치르는 일종의 ‘마음 씻기’다.


여름의 열기가 식어갈 때는 내 안에 차올랐던 과도한 욕망과 열정을 식히느라 아프고, 겨울이 끝나갈 때는 오랫동안 품고 있던 차가움과 미련을 털어내느라 마음이 쓰리다.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마음이 시린 것은, 흘러가는 시간의 무게를 내 영혼이 정직하게 느끼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나는 더 이상 이 계절의 통과의례를 거부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그 시기가 찾아오면 마치 오랜 친구가 불쑥 문을 두드리듯 나를 찾아온 마음앓이를 가만히 맞아들인다.


따뜻한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창밖의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내 안에서 서서히 자리를 바꾸고 있는 시간의 흐름을 가만히 바라본다.


"아, 또 한 계절이 가고 있구나. 또 새로운 계절이 내 삶으로 들어오고 있구나."


마음이 헛헛하고 아릿한 것은 그만큼 내가 살아온 지난 계절을 진심으로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다가올 계절 또한 온전히 살아내기 위해, 내 마음이 잠시 쉼표를 찍고 숨을 고르는 중일 것이다.


오늘도 계절은 문턱을 넘어 부지런히 자리를 바꾸고 있다. 그 문턱 위에서 나는 여전히 마음의 몸살을 앓는다. 하지만 이 앓이가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한층 더 깊어진 마음으로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삶이 주는 이 조용한 통과의례를 딸이 사 온 옥수수를 먹으며 감사히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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