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은 게 표준이 되는 세상

by담서제미

오전 8시 10분, 볼일이 있어 집을 나섰다.


길 찾기로 장소를 확인했다. 자동차로 20분이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내가 가는 곳은 20층 건물 12층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출근하는 사람들이 밀려들었다. 순식간에 빈틈 하나 없이 찼다. 나는 구석으로 밀려나듯 자리를 잡았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저 안에 있었다. 정해진 시각에 일어나 정해진 문을 열고 정해진 층수 버튼을 누르던 시절이. 이제는 그 흐름에서 벗어나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같은 상자 안에 서 있으면서도 나는 더 이상 그들과 같은 시간표를 살지 않는다.


고개를 들어 사람들을 살폈다. 하나같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손바닥만 한 화면 속으로 저마다 빠져 있었다. 나를 제외한 전부가.


엘리베이터 안은 조용했지만, 그 조용함은 침묵이 아니라 각자의 소음이었다. 화면 속 세상으로 흩어진 얼굴들.


그 순간 머릿속에 이미지 하나가 떠올랐다. 거북목이 되어버린 인류. 세대를 거듭할수록 굽어가는 목과 등. 결국 사람의 체형 자체가 거북이의 등딱지와 목을 닮아가는 모습. 그 상상이 떠오른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굽은 게 표준이 되는 세상


만약 그렇게 된다면, 미의 기준도 바뀔까. 곧게 편 등이 아니라 더 깊이 굽은 등이 아름다움이 될까.


사람들은 서로의 등을 비교하며 누가 더 화면 속에 오래 머물렀는지를 가늠하게 될까. 누가 더 거북목이 되었는지가 어떤 시대의 훈장처럼 여겨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자, 웃어야 할지 서늘해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30년 가까이 사람들의 진로를 상담하며 나는 수없이 물었다. 무엇을 향해 고개를 들고 있는지. 어디를 보며 걷고 있는지. 그런데 정작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은 고개를 들 이유를 잃어버린 듯 보였다.


위를 보지 않아도, 옆을 보지 않아도, 손 안의 화면 하나면 세상 전부와 연결된다고 믿는 사람들. 그 믿음이 몸의 형태까지 바꾸어놓고 있는 건 아닐까.


엘리베이터는 조용히 올라갔다. 3층, 5층, 7층. 사람들은 내리고 또 사람들이 탔지만 자세는 변하지 않았다. 고개 숙인 각도만 조금씩 다를 뿐, 모두가 같은 방향을 향해 굽어 있었다.


나는 문득 내 목뒤를 만져보았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다. 다만 지금 이 순간, 고개를 들고 있을 뿐.


거북이처럼, 그러나 거북이는 아니게


거북이는 위험을 느끼면 목을 움츠려 등딱지 속으로 숨는다. 어쩌면 우리도 그런 것인지 모른다. 감당하기 어려운 세상의 속도와 소음으로부터, 손바닥만 한 화면 속으로 몸을 웅크려 숨는 것. 그 안에서는 안전하다고 믿으면서.


12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흩어졌다. 각자의 화면을 손에 쥔 채, 각자의 굽은 등을 하고. 나는 마지막으로 내렸다. 사무실로 향하는 복도를 걸으며 나는 일부러 고개를 들었다. 천장의 조명을, 창밖의 하늘 한 조각을 눈에 담았다.


거북목이 되어버린 인류라는 상상은 우스갯소리로 지나칠 수도 있는 이미지였다. 그러나 그 이미지가 오래 마음에 남은 건, 그것이 몸의 변화만을 말하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엇을 향해 고개를 두고 사는지, 그 방향이 어느새 굳어버린 습관이 되어 등뼈에 새겨지고 있다는 사실. 진화는 언제나 살아남기 위한 선택의 결과였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선택하고 있는 자세는, 무엇으로부터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인 걸까.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닫히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나는 그 소리를 뒤로하고 12층 복도를 걸었다. 고개를 든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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