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릴 줄 아는 사람

by담서제미

오전 7시, KBS FM 92.3을 틀었다. 눈을 뜨면 클래식이 흘러나오는 이 방송을 켜는 게 습관이 되었다. 오늘은 다른 때보다 늦은 시간에 전원 버튼을 눌렀다.


거기서 나오는 시작을 알리는 멘트는 오노레 드 발자크의 말이었다. "기다릴 줄 아는 사람에게는 모든 기회가 때에 맞춰서 온다"는 그 말이 귀를 파고들었다.


기회는 그냥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준비하고 오랜 기다림을 거친 후에 찾아온 선물과 같은 것이었다.


삼십 년 가까이 상담실에 앉아 있었다. 맞은편 의자에는 늘 누군가가 있었다. 일자리를 찾는 사람, 방향을 잃은 사람, 기회를 잡기 위해 초조해 하는 사람.


그들은 대부분 조급했다. 이력서를 백 통 넣고도 답이 없다고, 면접을 열 번 보고도 떨어졌다고 토로했다. 나는 그때마다 같은 말을 반복했다. 서두르지 말라고, 지금 하는 일이 헛되지 않다고.


글을 쓰기 시작한 건 1998년이었다. 아니, 그 보다 더 이른 대학생 때였다. 글을 쓰면 바로 대단한 작품이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단지 내 상상 속에만 있었다. 내 글은 여전히 머릿속에서만 발광을 하다 멈추길 반복했다.


그 사이 세상은 바쁘게 흘러갔다. 글을 떠나 있었으나 완전히 떠나지 못한 시간들이 늘 마음 한구석에 저릿하게 남아 있었다. 나는 왜 여기 머물러 있나, 시시때때로 물었다. 바카라상에 앉아 글을 쓰지는 않았지만 항상 머릿속에서는 문장을 고치고 지우길 반복했다.


퇴직을 하고서야 시간이 온전히 내 것이 되었다. 그제야 미뤄두었던 원고들을 꺼냈다. 『내 인생 쨍하고 해 뜰 날』을 출간한 후, 거의 이십 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후 『60년생이 온다』『설명서 없이 살아보기로 했다』를 냈다.


계속 글을 품고 살지 않았다면 그 바카라들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발자크의 말대로, 기다릴 줄 아는 사람에게 기회가 온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동안 준비된 사람에게 기회가 자리를 내준 것이었다.


지금은 또 다른 글을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써 놓은 단편소설들을 다듬고 또 다듬어 소설집을 낼 예정이다. 올해가 아닌 내년 어느 쯤에.


상담실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늘 해주던 말이 있다. 씨앗은 심자마자 열매를 맺지 않는다고. 뿌리를 내리는 시간,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시간을 견뎌야 줄기가 올라온다고. 나는 그 말을 남에게 건네면서 나를 다독이며 살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첫 곡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멘트 하나가 아침 내내 마음에 남았다. 기다림은 멈춰 있는 시간이 아니라 조용히 움직이는 시간이었다. 겉으로는 정지된 듯 보여도 그 안에서 무언가는 계속 자라고 있었다.


오늘도 바카라상 앞에 앉는다. 새 원고의 문장을 고친다. 언제 세상에 나갈지 알 수 없는 이 글도, 언젠가는 제 몫의 아침을 만날 것이다. 발자크의 말처럼, 나는 여전히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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