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와 다름없이 잠자리에 누웠다. 아무 생각 없는 가벼운 잠이었다. 눈을 뜨니 오전 한 시 이십사 분, 잠이 한꺼번에 달아나버린 말짱한 상태였다. 다시 눈을 감아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 반쯤 읽다 둔 은희경의 『시간의 감촉』을 챙겨 소파 구석에 몸을 실었다.
바카라장을 넘기는 중간중간 어둠을 응시했고, 어떤 문장 앞에서는 한참을 머물렀다.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바카라을 덮었을 때는 오전 세 시 삼십육 분이었다. 두 시간 남짓, 그 새벽을 나는 오롯이 문장 속에서 보낸 셈이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나의 모든 감각을 동원해 시간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감촉이었다. 문장을 좇는 시각, 종이를 넘기는 손끝의 촉각, 입 안에 남아 있던 밤의 미각, 어둠 속 방 안을 채운 낯선 후각, 초침 소리를 대신하던 고요한 청각. 거기에 어디선가 스며드는 영감까지 더해져, 그 새벽은 하나의 온전한 감촉으로 완성되었다.
이상하게도 그 새벽, 나는 모파상을 떠올렸다. 『시간의 감촉』과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은 결이 전혀 다른 소설이다. 한 여자의 생애를 처음부터 끝까지 담담히 그려내던 그 오래된 문장들과, 은희경이 촘촘히 엮어낸 지금의 문장들 사이에는 백 년이 넘는 거리가 있다.
그런데도 어떤 연상 작용이 나를 그리로 데려갔다. 이어서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속 니나 붓슈만이 스치듯 지나갔다. 격정적으로 삶을 밀고 나가던 그 여자의 얼굴이, 잠들지 못한 새벽 소파 구석에 웅크린 나에게로 잠시 건너왔다가 사라졌다.
왜 하필 그 두 사람이었을까. 생각해 보면 세 권의 소설 모두, 여자가 시간을 통과하는 이야기다. 순응하며 통과하는 여자, 저항하며 통과하는 여자, 그리고 지금 이 새벽 문장 하나하나를 손끝으로 짚어가며 통과하는 나. 그 셋이 어느 지점에서 겹쳐졌던 모양이다.
새벽 세 시 반, 창밖은 아직 어두웠다. 하지만 나는 그 어둠이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온전히 나 혼자, 나의 감각만으로 채워진 시간이었다. 잠들지 못한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 불면이 나에게 준 두 시간을, 나는 감촉으로 오래 기억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