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사의 사탑 골목길에서
이탈리아에서 신혼여행 중인 아들이 사진을 보내왔다. 2년 전 아들과 같이 갔던 피사의 사탑을 찍은 사진이었다. 그 사진을 본 순간, 가슴 찡했던 기억 하나가 올라왔다.
피사의 사탑 근처, 좁은 골목의 레스토랑이었다. 접시 부딪는 소리와 이탈리아어가 뒤섞인 공간, 그곳에서 나는 BTS를 만났다. 정확히 말하면 방탄소년단 황금 막내 정국의 노래 <세븐>이었다.
낯선 도시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오던 그 순간을 나는 아직도 또렷이 기억한다. 포크를 든 손이 잠시 멈췄고, 가슴 한쪽이 뜨거워졌다. 세상 끝 어느 골목에서도 그들의 노래가 흐른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방탄소년단을 좋아한 지 여러 해가 지났다. 처음엔 노래가 좋아서 듣기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사랑하게 된 것은 노래는 물론이거니와 그들이 걸어온 길이었다.
흙수저라는 말을 스스로 붙이고, 변방에서 시작해 세계의 중심으로 걸어 들어간 이야기. 넘어지고 부딪히면서도 서로를 놓지 않았던 일곱 청년의 시간. 그 서사를 지켜보는 일은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이의 성장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과 비슷했다. 자랑스럽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경이로웠다.
외국에 나가면 그 위력은 더 실감이 난다. 광장에서, 레스토랑에서, 라디오에서 불쑥불쑥 흘러나오는 한국어 가사. 낯선 얼굴들이 따라 부르는 후렴구. 언어가 다른 이들이 같은 멜로디에 몸을 흔드는 풍경을 볼 때마다, 나는 국경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얇은 막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그 막을 뚫고 나간 것이 다른 무엇도 아닌 우리 청년들의 노래와 몸짓이라는 사실이 나를 벅차게 한다. 요즘도 나는 그들이 세계 곳곳에서 공연하는 영상을 챙겨본다.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인파, 형형색색의 응원봉, 여러 언어로 적힌 팻말들. 화면 속 낯선 도시의 밤하늘 아래 그들이 서 있는 것을 볼 때마다 피사에서의 그날이 겹쳐진다.
노래 한 곡이 사람을 이토록 멀리, 이토록 깊이 데려갈 수 있다는 것을. 방탄소년단은 이제 하나의 아이돌 그룹을 넘어, 하나의 아이콘이자 서사가 되었다. 변방에서 태어나 세계의 언어가 된 이야기.
나는 그 서사의 관객이라는 사실이 좋다. 그들이 넘어질 때 마음을 졸이고, 다시 일어설 때 함께 숨을 고르며 여기까지 왔다. 앞으로 그들이 어떤 무대에 서든, 어디에 있든 나는 그 목소리를 만날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다시 포크를 내려놓고 가만히 귀를 기울일 것이다.
전 세계에 울려 퍼진 아리랑. 전 세계인이 방탄소년단 콘서트 현장에서 그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볼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자랑스럽다는 말로도 부족한 나의 BTS.